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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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면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시련과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깊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덫에 걸린 듯 느끼며 무력감에 빠지고, 위기 상황으로부터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 좌절한다.

많은 경우에 고통은 상실 체험과 관련된다. 인간관계 차원의 정신적, 사회적 상실이나 경제적 차원의 상실, 혹은 자기 신체와 관련한 물리적, 생물학적 상실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실 체험을 하는 사람은 마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암을 진단받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삶에 대한 비탄과 탄식을 쏟아낸다.

이처럼 심각한 질병의 고통은 환자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서적 위기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통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고 대처할 것인가는 우리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많은 경우에 고통은 ‘왜(why)?’라는 질문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매우 부당하게 발생한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거리를 지나가는 저 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하필이면 내게만 이런 불행이 닥쳐오는가? 온갖 악을 저지르는 자들도 별 탈 없이 잘 살아가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죽어가야 하는가?

이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의미와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된다. 때로는 자신에게 큰 고통을 허락하는 신(神)에 대한 극도의 분노가 표출되기도 한다.

인간은 고통에 마주하여 자신이 살아온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 삶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만일 거기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이는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우울감이나 이탈 현상으로 이끌게 된다.

특히, 심각한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죽음의 위협을 겪는 사람은 무의미함과 무가치함, 또한 외로움이나 공허함 등을 느끼며 자신의 영적인 아픔과 고통을 드러낸다.

인간의 고통은 단순히 이해하거나 합리화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결코 아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실존적으로’ 견디어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고통이 제기하는 수수께끼와 난해함에 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뇌해왔는가? 고통과 악의 문제는 이성적으로 쉽게 답해질 수 없다.

현실에 대해 합리적이고 지적인 해석의 틀만을 가졌던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심각한 정서적, 실존적 압박감에 시달리며, 자신이 갖고 있던 삶과 세상에 대한 해석 틀이 송두리째 무너짐을 체험한다.

그래서 비록 고통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고통을 통해 깊은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마치 외상(trauma) 후에도 성장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철학적 신념과 종교적 신앙이 어떻게 이러한 외상 후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는지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은 이러한 고통의 문제를 심오한 차원에서 성찰하게 해주는 하나의 초대인 것이다.

고통과 아픔을 겪어나가면서 오히려 그것이 인격적 성장을 향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처럼 고통과 악의 체험은 결국 ‘궁극적 의미’ 문제에 도달한다.

정녕 이 세상은 불확실성 속에서 임의적이고 무의미한 우연의 사건들이 축적된 결과물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보다 깊은 차원이 존재하여 그것을 인식하고 성찰함으로써 인간 실존에 관한 문제를 심오하고 예리하게 깨달아갈 수 있는 것인가?

고통의 체험에 대해 어떤 의미나 목적을 찾아내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는 그 상황에 대한 표면적이거나 단지 경험적인 이해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매우 심오한 통찰과 해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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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상가들은 전쟁과도 같은 광적이고 파괴적인 사건을 겪으며, 인간 실존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관점에서 삶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길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찰은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수용소를 체험한 그는 외상을 초래할 만큼이나 충격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생존은 살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 있으며,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와 목적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고통의 체험을 깊은 차원에서 해석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준과 능력의 문제이다.

여러 사건과 상황을 겪으면서도 거기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없는 사람은 고통의 현실에 제대로 대처해나갈 수가 없다.

고통은 불사불멸성(immortality)에 대한 인간의 환상을 깨트려, 인간의 나약함(human weakness)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불교는 인간 존재를 덧없음, 즉 무상(無常)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집착과 애착의 결과로 인한 고통에 대하여 설명한다. 따라서 지나가는 무상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마음 상태를 강조한다.

이처럼 의미 해석의 능력은 질병과 고통에서도 인간의 참된 본질을 깊게 사유하며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따라서 고통은 영성(spirituality)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 영성이란 ‘삶의 초월적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매우 넓은 의미로 정의한다면, 철학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앙은 그러한 영성을 살아가고 표현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영성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게 도와주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성장하게끔 해준다.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연민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치료(cure)가 불가능한 상태일 때 고통은 회피할 수 없이 엄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유(healing)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치유는 인간 존재의 경험적 이해를 넘어서 초월적인 의미와 궁극 목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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