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렸을 때 몸이 아파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아주 오래 전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친한 동네 친구들과 내기를 걸고 달리기 시합을 하게 되었다. 유달리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그 내기에서 꼭 이기고 싶었기에 한참 속력을 내며 길거리를 뛰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길모퉁이에선가 어떤 아이가 갑자기 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아이를 피하지 못하였고, 나보다도 작았던 그 아이 이마에 그만 내 코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이 충돌로 인해 코뼈에 문제가 생긴 나는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 집에 돌아갔고, 그런 나를 보고 몹시 놀란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서 즉시 병원을 찾아갔다.

어린 나는 의사 선생님이 내 코뼈에 대해 응급 처치하는 것을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통증과 불안감 속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내 코뼈 치료와 교정은 몇 달간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함께 계속 병원에 다녀야만 했던, 지루하고 인내를 요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를 인도하던 어머니의 손길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행여 또 뛰어가다가 다시 다칠세라 내 손을 꼭 잡고서 병원으로 향하던 어머니의 손길, 진료에 앞서 미리 통증을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내 손을 잡고 괜찮을 것이라며 위로하던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아파하는 나를 지켜보고 옆에서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아 주던 어머니의 손길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 외에도 또 기억나는 게 있다.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 난 감기를 참 많이도 앓았다. 고열 감기에 시달리며 괴로워할 때 누워 있는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것도 바로 어머니의 손길이었다.

어머니의 한 손은 내 이마 위에 얹고서 열을 재어보면서, 다른 손은 떨고 있는 내 손을 말없이 잡아 주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다.

난 성인이 되면서 사람들을 도우며 돌보는 삶을 살고자 하였다. 그래서 난 어린 시절에 체험했던 어머니의 손길을 떠올려 기억하게 된다. 내가 체험했던 그 어머니의 손길이야말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내밀어야 할 손길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처럼,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손길, 넘어지고 좌절한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격려의 손길, 불안감과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평화와 안식에로 인도하는 손길, 그리고 갈길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손길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난 사람들의 고통스럽고 아픈 이야기를 들으며 심한 무력감을 느꼈던 적이 많다.

난 자비와 사랑과 용서에 대해서 말하지만,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무섭고 냉엄한 현실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많은 좌절감을 느꼈다.

단순히 그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로 그분들을 실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그런 무력감을 느낄 때면 더욱 깊이 고민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고통 받는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자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그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며 진심어린 안타까움을 전해드리고자 하였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어떤 분들은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떤 현실적인 도움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힘든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자신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나의 눈길과 손길이 있었기에 그 혹독했던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나가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아마도 내가 어린 시절에 체험했던 어머니의 손길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실제로 의사처럼 내 아픈 부분을 직접 치료하고 낫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치료 과정 동안 계속 나와 함께해주었다.
 

만일 어머니가 함께해주지 않는 치료 과정이었다면 어린 나에게는 얼마나 두렵고 힘든 시간이었을까?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려움과 두려움 속에 있는 나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던 어머니의 손길, 그 공감과 돌봄의 손길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 사이의 통교를 이끄는 손길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통교가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이겠는가?

특히 어머니의 손길에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따뜻함과 호소력이 있다. 어머니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는 명시적인 언어적 통교 이전에 침묵과 몸짓의 통교가 먼저 존재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 시스틴 성당(Sistine Chapel)에 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천장 중앙 벽화 중 네 번째 그림은 인간에게 다가오는 창조주의 손길을 묘사한다.

이는 창조주가 그 피조물인 인간과 함께 이루는 통교의 손길을 의미한다. 이처럼 창조주와 인간 사이의 만남과 통교는, 인간이 창조주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는 것으로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묘사된다.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는 창조주의 손길,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는 어머니의 손길, 그 돌봄과 치유의 손길을 우리 모두는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시련 속에 아파하며 이러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가? 어머니의 손길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다.

어머니의 손길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내미는 그 따스한 손길 안에서 사람들은 잊어버린 어머니의 손길을 다시 떠올리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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