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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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김민건 기자] 내과, 가정의학과 등 6개 전문의가 진료하는 병원이 개업한다는 얘기를 듣고 약국을 개설했지만 당초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월 임차료를 줄이거나 권리금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최근 이와 관련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17일 팜뉴스 취재 결과 의정부지방법원 제2민사부는 A약사가 B약사를 상대로 제기한 권리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권리금 1억2000만원 중 8000만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2020년 5월 A약사는 B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을 양도받는 조건으로 권리금 1억2000만원, 월 차임료 450만원에  약국 임차권 양도와 권리금 계약을 함께 체결했다. 

그러나 내과와 가정의학과 등 6개 전문의가 진료하는 병원 입점이 지켜지지 않았고 1일 처방전은 평균 3건에 불과했다. 결국 A약사는 개국 2개월 만인 6월 말 운영을 중단하고 폐업을 신고했다.

A약사는 법원에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정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6개 전문의가 진료하는 병원 입점이 확정됐다는 내용을 듣고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며 B약사를 상대로 차임료 감액과 권리금 반환 소송을 각각 제기했다.

임차료 감액과 권리금 반환에서 A약사는 어떻게 승소할 수 있었을까. 먼저 다른 재판부에서 진행한 차임료 감액 소송을 보면 민법 제628조에 따라 '차임증감청구권'을 주장했다. 

차임증감청구권이란 어떤 건물을 임대한 경우 당사자 간 약정한 차임이 상당히 달라 계약 당시와 비교해 공과 부담이 증가하거나 경제사정 변동으로 임대료를 부담하기 어려울 경우 법원이 임대료를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A약사가 부담하는 월차임료는 450만원이었지만 병원이 입점하지 않아 처방전이 정상적으로 발행되지 않았다. A약사는 해당 상가의 월임차료 감정을 받아 79만원대 평가를 받았고 이를 토대로 재판부에 월차임료 감액을 주장했다.

재판부는 임대차 계약서에 6개 과가 명시돼 있지는 않았지만 당사자 간 논의한 내용이 인정된다며 "처방전이 많이 발행되는 내과,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근무하지 않은 사정을 고려해 월차임을 1/3에 해당하는 150만원으로 재량 감액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권리금 반환 소송, 1심 패소 뒤집고 2심 승소

월임차료 감액 결정을 받은 A약사였지만 다른 재판부에서 결정된 권리금 반환 소송에서는 1심 패소했다. 

A약사는 1심에서 4개의 주장을 했다. 먼저, 약정한 6개 병원이 입점하지 않은 채무불이행에 따른 '권리금 계약 법정 해제'와 '권리금 계약에 따른 약정 해제'를 주장했다. 권리금 계약에 따른 약정 해제란 계약서에 병원이 입점하지 않으면 해지된다는 조항이 있을 경우 책임을 물어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이다.

또한, 계약에 따라 병원 입점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조건 불성취'에 따른 무효와 임대차 계약에서 사정변경을 인정해 월차임을 감액한 것처럼 '권리금 수취 권한'을 넘은 것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권리금 계약서 자체에 병원 입점에 대한 명시적 약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권리금 계약 법정 해제, 권리금 계약에 따른 약정 해제, 조건 불성취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정 변경에 의한 권리금 반환도 임대차 계약은 가능하지만 권리금까지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1심에서 패소한 A약사는 항소를 제기하면서 '착오 취소'라는 주장을 추가했다. 착오 취소란, B약사 측 설명에 따라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포함한 6개 전문의가 진료하는 병원이 입점할 것으로 기대하는 착오에 빠져 권리금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내과와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근무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다면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A약사는 신의성실 원칙(민법 제2조)도 주장했다. 병원 입점이 약정된 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B약사가 권리금 1억2000만원을 수령하는 게 공평 원칙, 신의성실 원칙에 비춰볼 때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2심 법원은 착오 취소나 약정해제 등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신의성실 원칙은 인정했다.

법원은 "권리금 계약은 처방전 발행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는 내과, 가정의학과 입점을 고려해 책정한 것으로 보이며, B약사 역시 내과나 가정의학과 입점이 처방전 발행 의무 여부나 빈도에 중요한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런데 사건 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외과 전문의만 있고 내과, 가정의학과는 근무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요양 입원 환자 위주로 영업하면서 1일 평균 처방전 3건 정도로 약국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1심을 뒤집어 B약사가 A약사에게 권리금을 반환하라고 판결한 이유는 또 있다. 법원은 권리금은  영업시설, 비품 등 유형물이나 거래처, 영업 노하우, 점포 위치에 따른 영업상 이점 등 무형의 재산적 가치 대가로 봤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약국은 영업 개시 전 인테리어 공사만 진행한 상태에서 양도돼 권리금이 점포 위치상 이점, 인테리어 공사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고 봤다. 해당 건물 병원이 요양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 권리금 이점을 A약사 약국이 전혀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요양 환자 위주로 운영함으로써 A약사가 건물 내 독점 약국으로서 점포 위치상 이점을 전혀 누리지 못한 것으로 본 바, B약사가 권리금 전액을 가지는 것은 공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

결국 법원은 임차료 소송에서 '경제사정 변동'을 이유로 1/3을 감액한 것처럼 권리금도 1억2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제한하고 그 이상의 8000만원은 반환하라고 했다. 처방전이 많은 내과, 가정의학과 입점을 조건으로 높은 권리금을 책정한 것인데 이를 B약사가 수취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우종식 법무법인 규원 변호사는 "임대차 계약과 권리금 계약은 별개의 계약이지만 불가분 관계에 있다. 그렇더라도 당사자가 다를때 두 계약의 관계를 밝히는 것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권리금 계약이나 임대차 계약에서 병원 입점이나 폐업 등 이전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기재할 수 있다면 분쟁 소지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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