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감기를 일으키는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들 중에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Respiratory Syncytial Virus)가 있다. 올해 5월 GSK가 개발한 최초의 RSV 백신이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고, 한 달이 채 못되어 6월 화이자의 RSV 백신도 승인을 받았다.

RSV는 생소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아주 흔하다. 일상 생활에서 비말이나 접촉을 통해 이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된다. 감기와 관련된 호흡기 증상을 일으킨다. 소아나 노약자 등 면역력이 취약한 사람들에게서 때로는 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면역 체계가 아직 발달 중인 신생아와 영아는 감염에 특히 취약하여 2세가 되기 전에 거의 모두 이 바이러스에 적어도 한 번 감염된다. 신생아와 영아에게서 기관지염과 폐렴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이다.

백신 개발은 약물 디자인부터 임상시험까지 보통 10년 이상 걸린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의 개발은 2년도 걸리지 않아서 초고속의 기록을 세웠다.

중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나온 지 한 달 안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분석이 이루어졌고, 유전 정보가 나온 시점부터 약물로 사용하도록 임시 승인을 받기까지 1년, 정식 승인을 받기까지 1년 8개월 걸렸다.

이에 비해서 RSV 바이러스가 1950년대 중반에 처음 발견된 직후부터 백신의 개발을 시작해서 이제 약물로 나왔으니 RSV 백신 개발은 60년 이상이 걸렸다.

GSK와 화이자의 백신은 60세 이상의 성인에게 사용하도록 허가되었다. 이들 백신은 바이러스 항원을 단백질 형태로 투여한다. 모더나도 같은 나이 군에 적용하는 RNA 백신을 개발 중이며 임상시험 결과를 근거로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신생아에 대한 백신 개발은 화이자가 앞서 있다. 임신 말기의 임산부에게 바이러스 항원을 투여해서 면역 반응을 유도하고, 탯줄을 통해서 엄마의 항체가 태아에게 전달되어 신생아가 RSV에 대한 면역 능력을 가지게 하는 방식이다.

화이자는 임상시험 결과를 근거로 신생아를 위한 백신을 승인 받는 절차를 진행 중이며, GSK도 비슷한 방식의 백신을 개발 중이다. 지난 60 년 동안 쌓은 내공이 현실화되어 결실을 내는 시기이다.

RSV 백신 개발이 오랫동안 부진했던 이유는 1960년대에 수행되었던 임상시험들이 실패하면서 제약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몇가지 RSV 백신들이 개발되었으나 임상시험에서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심지어 임상시험에서 백신을 투여 받은 아기들이 사망한 흑역사까지 있다.

1967년에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개발한 백신으로 워싱턴의 병원에서 영아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수행되었다. 바이러스를 포르말린으로 불활성화 시킨 종류로서, 소아마비 백신이나 독감 백신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아기들 대부분이 백신을 투여 받은 후 짧게는 한 달 안에, 길게는 1년이 지나는 기간 동안 심각한 증상을 나타내어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들 중의 2명은 사망했다. 아기들이 백신을 맞는 동안에는 두드러진 문제가 없었으나, 이후에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을 때에 심각한 호흡기 질환의 증상을 나타내어 사망까지 하게 된 것이다.

백신 자체의 부작용 반응 때문이 아니라, 백신이 유도한 면역 반응 때문에 아기들이 나중에 RSV에 감염이 되었을 때에 문제를 일으켰다. 백신이 아기들에게 면역 반응을 일으키긴 했는데, 그 결과로 아기들이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기들의 감염 증상을 악화시켰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대부분의 아기는 가벼운 감기 증상을 나타내고 지나가며 일부만이 심각한 증상을 나타내는데 반하여, 백신을 맞은 아기들은 대부분 심각한 감염 증상을 나타냈다.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사용한 백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면역 반응을 일으켰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백신 개발에서 반복되지 않아야 할 교과서적인 실패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바이러스 외피 단백질의 입체적인 구조가 알려지면서 RSV 백신의 개발이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RSV 바이러스는 유전 정보인 RNA와 이를 보호하는 외피로 구성된 입자이다. 바이러스는 사람의 체내에 들어가면 호흡기의 세포로 침투해서 증식한다. 바이러스의 외피에 있는 단백질은 세포로 침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백신이나 항체 약물 개발의 타겟이 된다.

바이러스의 외피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체내로 침입한 직후 유동적인 상태로 있을 때와 호흡기 세포로 들어가기 위해서 세포에 부착된 상태에 있을 때 다른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백신이나 항체 약물이 타겟으로 해야 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세포에 부착하여 안정된 형태로 있을 때가 아니라, 체내에 들어온 직후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형태를 취할 때이어야 한다는 가정이 나왔다.

최근 개발하는 RSV 백신은 모두 이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형태의 바이러스 외피 단백질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과거 1967년대에 수행된 임상시험에서 사용했던 백신처럼 바이러스를 포르말린으로 고정시키면 이 불안정한 상태의 외피 단백질은 없어진다.

과거의 임상시험에서 영아들이 사망한 사례 때문에 개발자들은 60세 이상의 성인에 대한 임상시험을 먼저 수행했으며, 이어서 소아를 포함한 다른 나이 군에 대한 임상시험도 계획 중이다. 신생아와 영아에 대해서는 백신을 아기들에게 직접 투여하지 않고 임산부에게 백신을 투여해서 엄마가 만든 면역 능력을 태아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최근까지 신생아와 소아가 RSV 감염에 대해 저항할 수 있도록 아스트라제네카의 항체 약물인 팔리비주맙(상표명: 시나지스)이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항체는 백신에 비해서 체내에서 지속하는 기간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고위험군의 신생아에 대해서 한 달 간격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약물을 투여한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사노피는 또 다른 항체 약물인 니르세비맙을 개발해서 신생아와 영아를 대상으로 호흡기 증상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2022년에 유럽과 영국에서 승인을 받았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허가를 받으려 하고 있다.

한 번만 투여하면 한 계절을 넘길 수 있다. 팔리비주맙 승인 이후 20여 년 만에 나온 약물이다. 니르세비맙이 개발되기 전에 아스트라제네카가 팔리비주맙을 변형한 항체를 개발했으나 효과에도 불구하고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부작용 때문에 약물로 나오지 못했고, 또 다른 회사가 개발하던 항체도 임상시험에서 예방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RSV는 RNA 바이러스이다.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경험한 것처럼 변이종이 출현하기 쉽다. 그동안 RSV에 대한 약물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생존을 위해서 변이종이 나오는 빈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도 팔리비주맙이 듣지 않는 RSV가 이미 오래 전부터 보고되어 왔다.

니르세비맙은 최근 나오는 백신들처럼 바이러스의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의 외피 단백질을 타겟으로 하며, 팔리비주맙에 저항성을 가진 변이종에 사용할 수 있는 항체이다.

니르세비맙이 최근에서야 제한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벌써 이 약물에 저항성을 가진 변이종이 나왔다는 보고가 있으며, 바이러스의 성질로 보아 약물에 대한 노출이 확대됨에 따라 변이종이 더 출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소아를 위한 백신에 대한 기대가 높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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