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활을 백 번 쏘아서 백 번 모두 과녁에 맞추면 백발백중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계속 활을 쏘아서 천 번의 화살을 날리면 한 두 개는 과녁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

백발백중의 알츠하이머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도 0.2%의 확률로 치매를 버틴 사람들이 있다. 이 정도의 확률을 뚫고 치매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후천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유전자의 축복'이 필요하다.

알츠하이머병은 오랜 기간 동안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여 신경의 손상이 축적되어 나이가 들어서 발병한다. 병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의심을 받는 물질은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다가 죽은 사람의 뇌에 이 두 단백질의 이상 침착과 변형의 흔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죽은 환자의 뇌를 부검해 보면 ‘노인반’이라는 찌꺼기가 도처에 쌓여 있다. 베타 아밀로이드는 노인반의 주성분으로서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의 주요 타겟이기도 하다.

타우는 신경 세포의 골격을 유지하는 단백질 중의 하나인데, 타우가 변형이 되어서 엉키면 신경이 손상되고 알츠하이머병이 유발된다고 보고 있다.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에 쌓이면서 타우의 변형도 심해지고, 결국 신경이 손상된다는 것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과 관련된 중요 가설 중의 하나이다.

아주 드물게, 유전자의 변이 때문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몇가지 유전자 변이가 알려져 있다. 베타 아밀로이드의 유전자인 APP, 베타 아밀로이드 생성에 관여하는 효소인 PS1이나 PS2의 유전자에 특정 변이가 있는 경우이다.

이런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유달리 엉키기 쉽게 변형되어 있거나, 베타 아밀로이드가 만들어지기가 아주 쉬워서 알츠하이머병이 보통 사람들보다 아주 빨리 진행된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각각 하나의 유전자를 물려 받아서 한 쌍의 유전자를 가진다. 베타 아밀로이드 침착과 관련된 변이 유전자는 우성으로 유전되기 때문에, 부모 중의 한 사람에게서 변이를 받아도 병의 증상이 조발성으로 나타난다. 

커피로 유명한 남미의 컬럼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메델린 근교에 PS1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17세기 이 지역을 점령했던 스페인 사람을 통해서 변이가 도입되었고, 이후 가족과 친족을 중심으로 알츠하이머 병이 유전되고 퍼졌다고 추측한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40대 중반에 인지장애가 시작되어 50세 이전에 치매로 진단받는다. 이들의 평균 사망 나이는 59세이다. 이 곳에서 PS1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들 1200명을 추적했는데, 치매의 발현이 남들보다 20년 이상 지연된 두 개의 사례가 있었다. 

첫 번째 사례는 여자의 경우이다. 이 여자는 72세에 경도인지장애, 75세에 치매로 진단을 받았으며, 77 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PS1변이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치매 증상 발현이 26년 이상 늦게 나타났다. 이 여자의 경우 아포지단백 E(APOE)라고 하는 유전자에 또 다른 변이가 있었다. APOE는 지질 대사와 운반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에 해당하는 유전자는 ε2, ε3, ε4 세 가지 형태가 있어서, 사람마다 다른 형을 가진다. APOE 유전자 형이 나이가 들어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빈도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가장 흔하게 ε3형을 가진다. ε2 형을 가지는 사람은 ε3 형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빈도가 덜하고 ε4를 가지는 사람은 병에 걸리는 빈도가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여자는 ε3 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여자는 APOE 유전자에 고지혈증과 관련된 특정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의 뇌는 심하게 위축되어 있었고 베타 아밀로이드의 침착이 아주 심해서 치매의 병리학적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었으며, 거의 모든 뇌혈관에 죽상경화가 심각하게 나타나 있었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 여자의 뇌는 중증 치매 환자의 특징을 모두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이 여자의 뇌에는 전반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의 또 다른 지표 물질인 타우 단백질이 비교적 적고, 뇌기능 영상의 활성은 인지 능력이 정상인 사람과 비교해서 별로 차이가 없었다. 이 여자의 경우 APOE 유전자 변이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과정, 특히 타우의 변이와 뇌 신경의 염증에 대해서 보호 기능을 했을 거라고 해석한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두 번째 사례는 남자의 경우이다. 그는 60대 초반까지 일을 하고 퇴직했으며 67세에 경도인지장애 증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도 남들보다 20여 년 증상을 늦게 발현했다. 이후 인지 능력이 계속 감퇴되어서 72세에 치매로 진단을 받았고 74세에 감염병과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의 뇌는 위축되어 있었고 베타 아밀로이드의 침착도 심한 편이었고 타우 단백질의 변형도 PS1 변이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여서, 다른 치매 환자의 뇌와 비교해서 병리학적으로 더 나은 점이 없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뇌의 가장 심부에서 기억과 지남력을 담당하는 부분이 깨끗했다. 보통의 경우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될 때에 이 부분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상으로 기억력 장애와 시공간 감각의 장애를 보이는 이유이다. 

이 남자도 ε3 형의 APOE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앞에서 언급한 종류의 APOE 유전자의 변이는 없었다. 대신 ‘릴린’이라고 하는 유전자에 특정 변이가 있었다.

릴린의 변이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에 대해서 보호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릴린 단백질은 신경 세포에서 APOE 단백질과 같은 선상에서 일을 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타우 단백질의 변형을 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남자에게 누이가 있었다. 누이는 58세에 경도인지장애를 나타내었고 61 세에 치매로 진단을 받은 후,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었으며 73세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누이도 릴린의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누이는 남자보다 인지 장애를 일찍 나타내었으나 PS1 변이 유전자를 가진 다른 사람들보다 10여 년 늦게 증상을 발현했다. 이 여자는 뇌에 심한 외상을 겪은 경험이 있고, 고혈압과 우울증도 앓고 있어서, 치매의 진행에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해석한다.

치매에 대하여 저항성을 부여하는 유전자의 존재가 아주 드물지만 그 작용이 PS1 유전자 변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듯하다. PS2도 베타 아밀로이드 침착을 유발하는 단백질인데, 이 유전자의 특정 변이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중북부에 독일계 러시아인의 이민자들의 후손이 집단적으로 살고 있다.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는 자신이 독일 출신이었기 때문에 볼가 강 유역의 농업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독일 사람들을 정책적으로 이주시켜 독립적이고 자치적으로 살게 했다.

제정 러시아 말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이들이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집단적으로 살게 되었는데, 이들 중에서 PS2 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비교적 높은 빈도로 보고된다. 

과학자들은 이들 이민자의 후손들에게서 PS2 변이를 가진 사람들 101명을 찾아 내었다. 이 변이를 가진 경우, 50세 전후에 알츠하이머 병을 발병하며 평균 60세 초반에 사망한다. PS2 변이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 단 2명이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남자였는데, 한 사람은 80세에 암으로 또 다른 사람은 89 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이들은 사망 당시까지 인지 능력의 손상을 보이지 않았다. PS2 변이와 같이 강력한 치매 유발 인자가 작용할 경우에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상황이 개입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경우 치매에 대하여 저항성을 나타낸 유전자에 관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