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강원도 평창 '무이예술관'(출처=무이예술관 홈페이지)
사진. 강원도 평창 '무이예술관'(출처=무이예술관 홈페이지)

강원도 평창군 봉편면 무이리에는 ‘무이예술관’이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조각, 도예, 회화, 서예가 함께하는 작업실이자 예술관으로 꾸며서 2001년 개관한 곳이다.

가끔 이곳을 방문하면 도시의 바쁜 삶에 지쳐버린 우리 마음을 위로하는 예술의 향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넉넉함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이곳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작가 이효석(1907-1942)이 태어나고 자란 곳 부근이기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 해마다 9월이면 메밀꽃이 만개하여 이 부근을 온통 하얀 색으로 뒤덮는다.

그래서 봉평에 가면 이효석 문학관을 가보는 것도 아주 좋다. 문학관을 방문해 이효석의 삶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본 뒤, 거기에서 바로 이어진 뒷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 무이 삼거리 방면으로 문학산(문필봉) 능선 길을 1시간 이상 걷다 보면 어느덧 무이예술관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달하게 된다.

거기서 오른편 계곡 쪽으로 걸어 내려오면 목가적인 풍경의 밭이랑 사이로 무이예술관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필자가 이따금 평창에 가면 꼭 걷게 되는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지난 가을부터 2023년 3월말까지 이곳 무이예술관에서는 김성래 작가의 개인전 <얼룩말과 소녀들> 전이 열리고 있다. 김성래 작가는 오랜 시간 이 세상의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현상에 주목하여, 그에 대항하는 소수자들의 연대라는 주제로 예술 작업을 진행해왔다.

올해 평창 무이예술관의 전시회는 지난 가을(2022.9.2-10.2) 서울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드로잉센터 15기 선정 작가 초대전으로 개최된 <소녀_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에서 이미 전시된 작품들을 다시 전시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전시회에서, 김성래 작가는 조각과 드로잉을 결합한 ‘드로잉 조각’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조형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낸다.

이번 무이예술관 전시회 제목에서 드러나는 ‘얼룩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주로 아프리카 초지에서 서식하는 동물이다.

초원에서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 등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룩말들이 함께 무리지어 모이면, 그 집단적인 시각적 효과로 인해 포식자의 눈에는 거대한 줄무늬의 단일 생명체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포식자는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게 된다.

작가의 시각에서는 바로 이것이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을 방어하는 평화의 지혜이며, 또한 소수자들의 연대성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은유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녀’는 어린이와 어른의 중간적 존재로서, 자신의 인생에서 아이이며 동시에 어른이기도 한 짧은 시기를 보내게 된다. 작가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이 시기의 소녀 이미지를 이러한 소수자의 연대성이라는 주제의 작품들에 소환함으로써 인간 실존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가 담긴 대표작 <얼룩말과 소녀들>은 하나의 거대한 설치 예술 작품이다. 방 하나에 얼룩말 열한 마리와 다섯 소녀를 드로잉 조각 형태로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주제를 제시한다.

이 작품은 이 세상의 소수자들이 모든 억압과 차별에 대항해 연대하고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고귀한 생명의 외침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눈을 끈 또 다른 전시 작품은 <혹등고래와 춤을>이라는 작품이었다. 이는 예전에 영화배우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가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아메리칸 원주민들과 연대해 소수자로서의 그들의 삶을 함께 지키고자 했던 퇴역 군인 주인공으로 열연한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 1991)이라는 영화를 연상케 한다.

 <혹등고래와 춤을>이라는 전시 작품에서는, 바다의 수면 위를 힘차게 뛰어 오른 다섯 명의 소녀가 모두 두 팔을 활짝 뻗어 마치 혹등고래를 머리 위로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소녀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그 어떤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바다 위로 뛰어오르고자 하는 기개와 희망을 보여준다. 그래서 바다 위 창공 위로 뛰어올라 날아가며 그 소녀들을 바라보는 혹등고래의 모습은 한없이 평화롭고 자애로우며 지혜롭다.

혹등고래의 수면 위 ‘도약’은 소녀들의 환호와 격려 속에 이제 하늘을 향한 ‘비상’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 시대의 인종적인 차별에 대항하며 아메리칸 원주민 소수자들과 함께했던 케빈 코스트너가 드넓은 평원 위에서 “늑대와 함께 춤을” 추며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듯이, 세상의 모든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 항거하는 소녀들은 이제 광대한 푸른 바다 위로 뛰쳐나온 “혹등고래와 함께 춤을” 추며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마치 혹등고래가 바다 위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모든 불의와 소외가 사라지는 아름다운 기적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빈곤과 질병, 사고와 장애, 갈등과 억압 등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현실의 넘을 수 없는 한계 속에서 우리는 이따금 좌절하고 절망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존엄하고 고귀한 삶을 위해 처절한 생존의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평창의 무이예술관에 가서 혹등고래와 함께 춤을 추는 소녀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꿈을 함께 꾸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2023년 새로운 한 해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꿈과 이상이 더욱더 커져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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