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장덕규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사진. 장덕규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지난 2월 9일,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법 개정안 및 간호법 제정안과 함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일명 '약제비 환수환급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으로 부의했다.

사회적 관심도는 간호법과 의료법에 주로 쏠려 있는 듯 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약제를 생산·판매하는 제약사들이나 이를 사용하는 의료인 및 환자들에게는 약제비 환수환급법안이 미치는 파장도 결코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이에 법안의 진행 경과와 직권 부의 과정을 돌아보고 이후의 통과 가능성과 제약업계에 미칠 영향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당사자들의 사안에 관한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해당 법안은 2018년 이후 급증한 제약사들의 행정소송과 집행정지신청 제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남인순 의원과 인재근 의원은 2020년 국정감사장에서 약가소송의 집행정지로 인한 건보 재정 지출 대책을 보건복지부에 주문했고, 복지부와 공단은 약가인하 소송 및 집행정지에 관한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뒤 내부 검토와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법안 발의 작업을 준비했다.

이어 보건복지위원회의 남인순 의원과 김원이 의원이 이듬해인 2021년 11월에 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달 25일 위원회 대안으로 통합돼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법안을 이어받은 법제사법위원회는 2022년 1월에 해당 법안에 대해 "행정소송 체계와 맞지 않고, 집행정지를 무력화 할 우려가 있어 위헌성 여부가 문제된다"라는 당시 야당(현재 여당)의 의견을 존중해 법안을 제2소위에 넘겼고, 최근까지 별도의 심사 일정을 잡지 않았다.

*법사위 심사는 쟁점 법안이 아닌 한 교섭단체 간 합의로 이루어지며, 법사위 제2소위는 '법안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

이에 보건복지위원회는 국회법 제86조 제3항의 규정에 근거하여 법제사법위원회가 이유 없이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법안을 위원회 표결을 거쳐 본회의에 직접 부의했고, 해당 법안은 24명의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표결 중 찬성 17, 반대 6, 무효 1표의 결과를 얻어 재적위원 3/5 이상 찬성이라는 요건을 충족했다.

*참고로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의 구성은 국민의힘(여당) 9, 더불어민주당(야당) 14, 정의당(야당) 1이다.

또한 국회법 제86조 제4항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원내대표들과 합의해 곧바로 본회의에 법안을 부의하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령상으로는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통해 법안 부의 절차를 밟는 것이 순서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과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 등 여야 대립이 극한에 다다른 현 시점에서 법안의 부의 여부에 관한 합의는 난망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같은 항 단서규정은 본회의 부의 요구 30일 이내에 합의가 없을 경우 그 기간이 지난 후 처음 개의되는 본회의에서 본회의 부의 여부를 무기명 투표로 표결할 것을 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늦어도 3월 임시회 본회의에서는 해당 법률안의 처리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물론 본회의에서 부의 및 상정이 부결될 수도 있고 의원 30인 이상의 연서를 받아 법안이 수정될 여지도 있지만(국회법 제95조) ▲해당 법안의 원안을 발의한 의원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 ▲현재 민주당은 174석으로 국회 과반 의석수를 보유하고 있는 점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해당 법안의 직권 부의에 찬성한 의원들이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통과 자체는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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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어떤 영향이 있을까?

먼저 약가인하 처분을 맞게 되는 제약사들의 경우 집행정지의 인용에 '노란 불'이 켜질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안은 집행정지신청이 기각된다 하더라도 제약사가 본안을 승소할 경우 소송 기간 동안의 이익을 공단이 환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처분으로 인하여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발생될 우려'라는 집행정지의 인용 요건을 충족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간신히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다 하더라도, 제약사 입장에서는 본안을 반드시 승소해야 집행정지를 통해 방어한 약가 이득액을 궁극적으로 보유할 수 있다. 해당 법안은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 후 제약사의 본안 소송이 패소로 확정된다면, 해당 기간 동안의 약가 차액을 부당이득으로 하여 공단이 환수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의 통과는 약가 소송을 고려하고 있는 제약사들과 로펌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줄 것이다.

그동안 약가 소송에 있어 집행정지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활용돼 왔다. 본안의 승소 여부와 무관하게 거의 대부분 인용되는 집행정지는 약가인하 처분에 맞닥뜨린 제약사에게 운신과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지만, 앞으로는 본안에서의 승소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한 다음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제약사 입장에서 약가인하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는 아직까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으로 보이는바, 법안 통과 이후에도 집행정지 신청 및 행정소송 제기 자체가 바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법률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법령이 제약사들만 행정소송의 제기에 관한 권리를 차별한다는 '위헌성 논쟁'부터, 실제 약가인하처분이 야기하는 '회복 불가능한 손해의 입증 여부' 등 집행정지와 본안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쟁점이 기존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실제 약가인하 처분이 있다 하더라도 집행정지와 본안 소송 제기를 거쳐 판결이 확정될 때 까지는 최소 1~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환수처분 또는 환급조치 역시 현 시점으로부터 몇년 후에나 발생될 사안이다. 그 기간 동안 법안이 개정되거나 헌법소원의 제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할 수 있어 이후의 추이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느 법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새로운 법안의 통과는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권리 의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법안 발의 과정에 함께 한 사람으로서 법안이 통과된다면 감회가 새로울 듯 하지만, 입법 이후 발생할 혼란을 생각하면 걱정이 더 앞선다.

제약업계 뿐만 아니라 법조계도 행정소송법의 예외와 위헌성 여부로 관심을 두는 사안인 만큼 모쪼록 국회와 법원, 보건당국 및 업계 종사자 등 관련 당사자들이 보다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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