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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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신생이란 말 그대로 혈관이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기존의 혈관에서 미세 혈관이 가지를 쳐서 자란다. 성인에게서 혈관이 새로 만들어지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아서, 상처가 치유될 때와 여성에게서 생리 주기에 따라 조직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정도이다.

암이 증식할 때에 혈관신생이 왕성하게 일어난다. 혈관이 암세포에게 필요한 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항암제 중에서 혈관신생을 억제하는 약물이 있다. 그 중에서 레블리미드와 아바스틴은 매출액으로 보아서 전세계적으로 10위 안에 드는 항암제들이다. 비정상적인 혈관신생이 안과 질환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 때에도 혈관신생 억제제를 사용한다.

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혈관신생은 암의 성장과 전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혈관신생 억제제는 종양 주위로 혈관이 생기는 것을 막아서 종양으로의 물자의 공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수술을 하면 환자의 종양 주변에 혈관이 왕성하게 감싸고 있다. 종양이 생기면 신체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염증 반응을 일으킨 결과라는 통념에서 벗어나서, 종양이 생존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주위에 혈관을 끌어들이며, 암세포가 이를 위해서 혈관에 신호 물질을 분비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1970 년대에 일어났다. 혈관 생성의 과정을 억제하면 종양이 자라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이 과정을 치료의 타겟으로 보게 되었다.

결국 1980 년대 이후에 혈관신생을 유도하는 인자들이 분리되고 분석됨으로써 이 가설이 현실화되었는데,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발견되었다. 지금 알려진 혈관신생 유도인자들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다 꼽지 못할 정도이다.

또한 인터페론이나 다른 사이토카인 등 체내의 많은 물질들이 혈관의 생성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혈관이 새로 생기는 과정은 종양과 주위의 환경과 혈관 세포들이 서로 교신하고 반응하여 일어나는 삼각 관계의 협동 작업이다. 이 과정에는 다양한 물질과 세포들이 관여하며, 이들이 혈관신생 억제제가 개입하는 타겟이 된다.

그래서 혈관신생 억제제는 종류도 많고 가지 수도 많다. 암세포가 혈관 세포에 보내는 신호 물질, 즉 혈관신생 유도인자를 중화하는 아바스틴과 같은 표적항체가 있다. 암세포가 신호를 보내면 혈관의 내피세포가 반응하는데, 여기에 발현하는 수용체를 차단하여 암세포가 보내는 신호를 받지 못하게 하는 시람자와 같은 표적항체가 있다.

수용체가 키나제이므로 이 기능을 무력화하게 하는 저분자 화합물인 키나제 억제제들이 있다. 넥사바와 인리타와 같은 키나제 억제제 화합물들이 그들이다. 또한 암세포가 보내는 신호와 무관하게 혈관 세포에 직접 작용하여 기능을 조절하는 약물들이 있다.

혈관신생 유도인자들 중에서 VEGF가 특히 중요하여 약물 개발의 주요 타겟이 되고 있다. 아바스틴은 VEGF를 중화하여 불용화하는 항체이다. 아바스틴은 최초의 혈관신생 억제제로 승인받은 약물로서 2004년에 나왔다. 혈관신생을 억제해서 암을 치료한다는 가설이 나온 후 30 여년이 지난 때이다.

VEGF 수용체가 혈관세포의 표면에서 VEGF의 신호를 받아서 혈관신생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표적항체 시람자는 혈관내피세포의 수용체에 직접 결합하여 VEGF가 작용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넥사바를 필두로 하여 10종에 이르는 키나제 억제제들이 각종 고형암에 사용되고 있는데, 이들은 VEGF 수용체의 기능을 억제한다.

혈관세포에 직접 작용하여 혈관신생을 억제하는 약물로서 레블리미드가 있다. 레블리미드는 악명이 높은 탈리도마이드와 구조가 유사하다.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에 유럽에서 만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나게 한 역사상 최악의 약화 (藥禍) 사고를 일으켜서 사용이 거의 중단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임신 중에 탈리도마이드에 노출된 태아가 수족 발달을 하지 못한 원인이 혈관 형성이 저해된 때문이라고 알려지면서, 강력한 혈관신생 억제 작용을 이용해서 이를 약물로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왔다. 탈리도마이드는 나병의 혈관 이상과 관련된 손상의 치료를 위해서 1998년에 허가를 받으면서 약물로 부활했다. 그리고 항암제로 사용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수행하게 되었다.

탈리도마이드의 사용 허가를 받아서 임상시험을 하고 항암제로 개발한 회사는 셀진이다. 셀진은 이미지가 워낙 좋지 않은 탈리도마이드의 구조를 일부 변형해서 항암작용이 강화된 화합물을 만들어서 레블리미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탈리도마이드와 레블리미드는 2006년에 다발성 골수암에 대하여 적용하도록 FDA의 허가를 받았다. 다발성 골수암에 대한 경쟁 약물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약물이 다른 종류의 혈액암으로 적용 범위를 확장하면서, 레블리미드는 전세계적으로 항암제 매출액의 최고 순위를 다투는 약물이 되었다. 레블리미드를 고형암에 적용하기 위한 임상시험도 진행되고 있다.

혈관신생을 유도하는 인자들의 종류가 다양하고, 이에 반응하는 수용체도 다양해서, 암세포는 하나의 경로가 막히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 혈관신생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심지어는 이 과정을 건너 뛰어 생존의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환자에게 내성이 생겨서 혈관신생 억제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듣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항체 약물은 특이성이 높아서 효과적이지만, 항체가 하나의 타겟을 공략해도 암세포가 다른 혈관신생 인자나 다른 수용체를 대신 사용하여 여전히 내성의 문제가 존재한다.

약물로 사용하려면 목적하는 타겟에만 반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혈관신생 억제제로 작용하는 키나제 억제제들은 약물에 따라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작용 스펙트럼이 넓어서 타겟으로 하는 수용체를 포함해서 여러 종류의 수용체에 작용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약물들이 항암 작용을 나타낼 때에 혈관신생 작용 외에도 다른 기전을 통해서도 작용하게 된다.

특이성이 낮다는 점은 원하지 않는 세포나 조직에 작용하여 부작용을 나타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혈관에 작용하는 약물이므로, 혈관신생 억제제의 부작용도 다른 항암제와 다른 편이다. 가장 잘 알려진 부작용은 고혈압이고, 혈관신생을 억제하면 당연히 상처의 치료가 잘 되지 않는다. 출혈, 혈전, 장의 천공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혈관신생은 암의 진행과 전이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는 약물은 다양한 종류의 고형암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특히 진행성 및 전이성 암의 치료에서 기본 전략으로 자리를 잡았다.

혈관신생은 고형암 뿐 아니라 혈액암에서도 높아져 있어서, 레블리미드는 혈액암에도 적용된다. 혈관신생을 억제하면 종양의 크기가 줄어들지만,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여 사멸시키지는 않으므로 암을 근원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들 약물은 단독으로 투여하기도 하지만 화학요법이나 면역 항암제 함께 투여하여 환자의 생존을 돕는다.

특히 관문억제제 등과 병용 투여하면 혈관신생 작용을 나타내는 외에도 면역 세포가 종양 부위로 침투하는 것을 증가시켜서 환자의 생존을 돕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임상시험들이 수행되고 있다.

안과 질환에도 혈관신생 억제제가 사용된다. 혈관신생이 병인이 되는 질환으로 습성의 황반변성과 당뇨병성 망막병증이 있다. 혈관신생 억제제는 질환을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진행을 늦추거나 멈추게 하는 목적으로 투여한다.

혈관신생 유도인자인 VEGF의 기능을 중화하는 항체 약물이다. VEGF 와 함께 또 다른 혈관신생 유도인자인 안지오포이에틴을 인지하는 이중항체도 안과 질환에 허가를 받았다.

△성은아 박사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학사
미국 뉴저지 주립대 박사
1998-2011년 미국 반더빌트 대학교/ 예일 대학교- 뇌신경계 작용 약물 기전 연구
2011-201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뇌신경전달 회로 연구
2018-2022년 2월 메디헬프라인(주) 약물 개발 연구, 메디헬프라인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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