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태 건보공단 이사장. (국회방송 캡처)
강도태 건보공단 이사장. (국회방송 캡처)

[김민건·최선재 기자] "공단의 도덕적 해이가 어디까지인지 참담하기 그지없다." "국민의 피 같은 건강보험료를 횡령한 전대 미문 사건" "횡령도 잡아내지 못 하는 내부감사."

13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민건강보험공단 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국정감사는 건보공단 채무관리팀 A팀장의 횡령 사건을 질타하는 국회의원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국회는 "공단은 과연 무엇을 했나.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며 공단의 근무 기강과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40억원대 횡령 문제가 이날 국정감사 최대 이슈로 급부상한 배경이다.

A팀장은 2022년 4월 27일, 단돈 1000원으로 시작해 5개월간 7차례에 걸쳐 총 46억원을 횡령했다. 현재 A팀장은 필리핀으로 도피했고 인터폴 적색수배 진행 중이다. 원금 회수가 불투명하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A팀장은 건강보험 제도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장(2021년 12월 28일)까지 받았다. 특히, 공단이 횡령 사실을 파악한 다음 날 400만원대 급여를 입금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사실 앞에 건보공단 보안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국회는 횡령참사, 전대미문 사건을 들고 취임 9개월차 강도태 이사장을 난타했다. 국감 전날인 12일 밤 건보공단 체력단련실 불법 촬영 사건이 발생한 사실도 알려지면서 강도태 이사장은 더욱 체면을 구겼다.

최연숙 의원 강도태 이사장
최연숙 의원 강도태 이사장

# "철저한 조사, 엄벌, 재발 방지책 마련" 맹공에 강도태 이사장 "대단히 죄송하다"

이날 국감에서 A팀장은 4개의 계좌를 사용, 1~6차에 걸쳐 횡령했으며 진료비 지급 보류액 점검 중에 건보공단이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은 "공단이 운용하는 보험료만 100조가 넘는다. 모든 국민이 내는 돈이기에 안전하게 지켜야 했는데 그렇지 못 했다. 횡령 사건에 이어 어젯밤에는 공단 내 여성 체력단련실 몰카 설치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국민건강보험을 책임지고 있는 공단의 도덕적 해이가 어디까지인지 참담하기 그지없다"며 강도태 이사장을 몰아붙였다.

또한, 최 의원은 건보공단이 횡령사실을 파악한 뒤 급여 지급을 취소하는 등 행정조치를 취했다고 전한 점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는 A팀장에 급여가 정상 지급됐던 것이다. 회수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게 공단 입장으로 최 의원은 "기가 막힌다"고 표현했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공단 전체의 기강 문제에 대한 비판 수위도 낮추지 않았다. 남 의원은 "개인정보 불법 유출 열람에 성희롱, 체력단력실 불법 촬영, 코로나19 재확산 시기에 1박 2일 워크숍 강행까지 왜 이렇게 기강이 해이해졌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과로 끝날 부분이 아니다"며 철저한 조사와 엄벌, 재발방지 대책을 종합적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강 이사장은 "이사장으로서 이번 횡령사건이 발생한 여러 원인과 책임을 통감한다. 공단을 믿고 신뢰해준 국민에게 심려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고 좀더 세밀히 챙기지 못한 점을 거듭 사과드린다. 죄송하다"고 답했다.

# "횡령을 잡아내지 못 하는 형식적 내부감사"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중요 핵심 보안사항에 대한 관리가 총체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건보공단 내부 감사 수준이 "횡령을 잡아내지 못 할 정도로 형식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공공 업무 책임성 결여와 도덕적 해이가 팽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A팀장이 5개월 동안 46억원을 횡령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가 건보공단의 부실한 내부 감사 시스템에 있었다고 본 것이다.

실제 A팀장이 건보료를 빼돌리기 시작하던 4월 이후에도 총 3차례나 내부 감사가 진행됐지만 잡아내지 못 했다. 

그렇다면 A팀장은 어떻게 감사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 

서 의원은 "건보공단 역사가 어제 오늘이 아니고, 여러 공공기관이 ICT 기반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교차 점검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강도태 이사장에게 따졌다.

A팀장은 채권 관리 업무를 담당했고 지난 2004년 건보공단이 규정을 변경한 이후 팀장이 전결 권한을 가질 수 있게 해놓았다. A팀장이 스스로 등록하고 스스로 승인하는 '셀프등록 셀프승인'이 가능했던 것이 전무후무한 사건의 탄생 배경이었다는 것. 이에 국감장에서는 "공단에 또 다른 횡령이 있는 것 아니냐"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이유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시스템 구조"라면 건보공단 보안 관리에 허점이 있음을 강조했다. 남 의원은 "팀장이 지급 계좌 정보를 변경하고 승인하는 모든 것을 하는 구조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 자체로 믿기 어렵다"며 "과연 지난 2016년 이후 비슷한 일이 없었을까"라고 반문했다.

서 의원은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복무 감사 현황 결과를 들이밀며 압박하기도 했다. 내용을 보면 지난 2021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총 212건의 내무 복무 감사 지적사항 중 67%에 달하는 143건이 보안 관리 문제였다. 서 의원은 "이 사건과 직접 관련된 것을 떠나서 일종의 위험 신호로 암시되고 있었다. 이런데도 전혀 점검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강 이사장 부임 이후에도 이같은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았다며 "이렇게 지적받아도 전혀 시정되지 않았으니 A팀장이 1000원으로 시작해 46억원을 해먹을 수 있었다"는 지적을 이어나갔다.

서 의원은 또 "지난 2016년에도 460만원의 횡령사건이 있었다. 이번에는 1000배인 46억원이다. 공단의 도덕적 해이가 1000배로 늘어난 것 아니냐"며 "이 사건으로 건보공단 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해결하고 책임질 것이냐"고 강 이사장을 추궁하기도 했다. 남인순 의원도 "금융 전문가와 협의해 꼭 횡령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민에게 보고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강 이사장은 "많이 지적된 것처럼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물론, 위반사항이 많다는 게 문제지만 개선해가고 있다. 복무감사는 일반적으로 근태 현황 등을 많이 본다. 앞으로 보안 현금 지출 부분에 대해 기획 감사로 취약점을 강화하도록 하겠다. 시간이 걸려도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경영 전반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불법이 불법을 낳았다" 위법한 사무장병원·요양병원이 만든 건보공단 횡령

서영석 민주당 의원은 이번 사건이 불법이 불법을 만들었다고 봤다. 그는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횡령 가능성이 있다. 결국 내부 시스템이 무너진 것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잘못 됐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 했고, 천 원짜리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됐다"며 강 이사장에게 물었다. 

서 의원은 앞서 의원들과 다른 시각에서 이번 사건을 접근했다. 요양기관이 재판 과정에서 지급받을 요양비를 압류당하거나, 불법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받아 재판이 진행될 경우 채권자나 요양기관에 지급될 비용이 소송으로 인해 압류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서 의원 분석에 따르면 A팀장이 횡령한 46억원 중 34억원은 사무장병원, 12억원 대부분 요양병원에서 압류당한 비용이었다. 서 의원은 "불법적인 의료 행위로 재판을 받거나, 무죄가 될때까지는 해당 비용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주인없는 돈처럼 공단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개인의 일탈이라기 보다는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결국 관리가 안 되는 불법을 조장하는 의료기관에 의해 불법 행위가 일어나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적 문제가 있는데 마치 개인 일탈로 치부해선 안 된다. 시스템 전체를 제대로 고쳐야 한다"고 요구했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분석한 것이다.

강도태 이사장은 국감 내내 여야 의원의 질의에 연신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하지만 46억을 횡령한 A 팀장은 필리핀으로 이미 도주했다. 공단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더욱 실망스러운 사실은 건보공단 횡령 이슈가 국감을 휩쓴 사이 정작 기관의 해명이 필요한 의약품 관련 이슈들이 공단도 심평원도 비껴갔다는 점이다. '횡령 국감'의 씁쓸한 단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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