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항암바이러스(oncolytic virus)는 ‘암용해 바이러스’라고도 하며, 암세포를 침투하여 죽이도록 만든 바이러스를 약물로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열린 유럽종양학회 (ESMO 2022)에서 개발 중인 항암바이러스제 (RP2, 개발사 레플리뮨)가 소규모의 초기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발표가 있어서 뉴스 매체의 관심을 끌었다.

새로운 약물과 치료법이 연달아 나오는 항암제 분야에서 면역항암제로서는 존재감이 비교적 약한 항암바이러스제에 개발의 모멘텀이 실릴지 기대한다.

항암바이러스제는 이름 그대로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더 하등한 생명체라서 독자적으로 생존하지 못하고 숙주 세포에 침투해서 철저하게 기생적인 삶을 산다. 바이러스는 침투에 필요한 요소와, 생존과 증식을 위한 기본적인 유전정보만을 가지고 있으며 생존과 증식을 위해 필요한 다른 물질은 모두 숙주 세포에서 조달한다.

유전정보를 기초로 하여 숙주 세포에서 증식을 하면 다량의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 숙주 세포가 손상되어 죽으면 바이러스는 세포 바깥으로 유출되어 다른 세포를 침투하여 기생과 증식의 사이클을 반복한다. 

항암바이러스는 흔히 돌아다니는 바이러스를 암세포에 우선적으로 침투하고 암세포를 파괴하도록 개발한 것이다. 정상 세포는 침투한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기본적인 방어 기제가 있으나 암세포는 세포 전반에 손상이 있어서 방어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므로, 바이러스의 침투와 증식이 용이하다.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암세포를 죽이면 다량의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유출되어 다른 암세포에 다시 침투하며 동시에 암세포의 내용물이 세포 바깥으로 유출된다. 암항원들이 다량으로 방출되면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자극되어 면역 반응이 활성화된다.  

감염 능력이 있는 바이러스이므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나 가족들이 환자를 통해서 감염될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항암바이러스는 암세포에 대한 선택성이 높아서 이런 감염의 사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부작용도 다른 면역항암제에 비하여도 온화한 편이고 심각한 정도의 부작용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다. 항암바이러스제는 치료의 효율을 위해서 대개 종양 부위에 국소적으로 주입하여 사용하지만 보다 효과적인 항암 치료를 위해서 전신 투여를 위한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전세계에 4개의 항암바이러스가 약물로 승인이 되어 사용되고 있다. 릭비어가 피부암에 대하여 라티바 및 몇 개 국가에서(2004년), 옹코린이 비인두암에 대하여 중국에서 승인을 받았다(2005년).

특히 2015년에 미국과 유럽에서 암젠의 티벡 (상표명 임리직)이 피부암에 대하여 승인을 받으면서 항암바이러스 개발이 활기를 띄게 되었으며, 2021년에 델리탁트가 뇌와 척수의 종양인 교모세포종에 사용하도록 일본에서 승인을 받았다.

제약 R&D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파마프로젝트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현재 55종의 항암바이러스가 임상시험 중이며, 그 중 3개가 임상시험 후기(3상) 단계에 있다. 그 외에도 100여 종의 항암바이러스가 전임상 단계에 있다. 한국에서도 펙사벡을 비롯해서 몇 종이 개발 중이다.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약물로 사용한다니 항암바이러스는 의과학의 발전으로 나온 신개념의 결정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오랫동안의 경험과 관찰의 산물이다. 13세기 이태리 시에나에서 활동하던 카톨릭 사제가 종양 때문에 다리를 절단할 지경이 되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난 후 기적적으로 병이 완치가 되었다. 암 환자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페레그린 라지오시의 이야기이다. 오늘날의 의학적 견지에서 해석하면 당시의 위생 환경으로 보아 다리에 세균 감염이 되어 그가 혼수 상태에 빠질 정도로 아팠으나 감염에 대항하여 신체의 면역 반응이 활성화되어 종양이 치료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성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독감이나 감염병을 앓고나서 암의 치유를 경험한 예가 드물지 않게 보고되었다. 이를 근거로 독성을 약화시킨 세균이나 바이러스 백신으로 면역력을 증강시켜서 암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분자생물학이 발달하면서 바이러스를 변형시켜서 암세포를 특이적으로 인지하는 유전자와 면역 작용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보충하여 강화하고 독성을 나타내거나 부작용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제거함으로써 암세포에 효과적이고 선택적으로 작용하도록 수정하여 항암제로 개발하게 되었다. 

사람의 몸에 작용하는 면역 시스템은 이물질에 대한 방어 기제이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와 다르다. 면역세포는 정상과 다름에 반응하여 암세포를 제거 대상으로 인지한다. 암세포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여 면역세포를 회피함으로써 생존을 도모한다.

특히 고형암은 증식과 생존을 꾀하고 면역세포의 감시와 공격을 피하도록 주변의 환경을 조작한다. 이 때문에 면역세포가 암세포에 접근하기 어렵고 작용하기도 어렵다.

항암바이러스를 종양 부위에 주입하면 암세포를 파괴한다. 파괴된 암세포에서 정상 세포에 없는 변이된 단백질들이 방출되며 면역세포가 이들을 이물질로 인지한다. 면역 억제가 되어 있던 종양 주위로 면역세포들이 모여들어 작용하고 면역 활성의 상태로 환경이 변한다.

항암바이러스가 종양의 일부 세포에만 침투해도 증식하여 인접 세포를 다시 침투하므로 면역 활성의 영역이 종양 부위에 확대된다.

항암바이러스제는 치료 효과가 환자의 면역 상태에 따라 가변적이고, 다른 면역항암제에 비하여 특별히 효율적이지는 않으나 종양 주위의 환경을 면역세포나 면역치료제가 작용하기에 수월한 환경으로 바꾸는 특징이 있어서 다른 항암제와 병용 투여할 때에 기존 치료제의 효과를 증강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항암바이러스를 다른 치료제와 함께 사용하는 복합 치료에 대한 다양한 임상시험이 수행되고 있다. 항암바이러스와 다른 항암제의 복합 방식이 치료제로 승인된 것은 아직 없다.

항암바이러스를 화학 요법과 함께 사용하면 화학 요법의 용량과 투여 기간이 단축되어 부작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방사선 요법과 함께 사용하면 두 방법 모두 다른 방식으로 종양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켜 면역을 활성화하여 치료 효과가 높아진다.

면역세포 치료제인 CAR-T는 혈액암에 대하여 작용하지만 고형암에 대해서는 아직 효과적이지 못하다. 종양 주위의 환경을 극복하고 암세포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도록 CAR-T 세포를 고형암에 대하여 항암바이러스와 함께 투여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항암바이러스를 면역관문억제제와 병용 투여하여, 치료의 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방법이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관문억제제는 치료 효과가 높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같은 종류의 암이라고 하여도 일부의 환자에게만 작용한다는 단점이 있다.

관문억제제가 모든 환자에게 작용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종양 주변의 면역 억제 환경이 약물의 작용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암바이러스를 함께 투여하여 치료 효율을 높이고자 하는 임상시험이 이필리무맙(상표명 여보이), 니볼루맙(옵디보), 펨브롤리주맙 (키트루다) 등에 대하여 수행되고 있으며 초기 결과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항암바이러스는 부작용이 적고 그 자체로도 치료의 효과 면에서 개선될 여지가 많은 약물이지만 잠재력에 비해 개발의 동력이 충분히 작용하고 있지는 못하다. 현재 항암바이러스의 개발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개발의 후기 단계에 있는 약물의 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를 역설적으로 발전의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따라서 치료 효과가 높은 바이러스제가 나올 여지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고형암에서 항암바이러스를 다른 항암제와 병용 투여하여 치료의 효과를 증강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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