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나노기술이란 나노미터 크기의 입자를 다루는 기술이다. 나노미터는 십억 분의 1 미터, 또는 1 밀리미터의 백만분의 1이다. 대략 100 나노미터 전후, 또는 그보다 작은 입자를 나노입자라고 한다. 나노입자로 된 제형의 약물이 나노약물이다.

사람의 세포를 구성하는 성분들인 단백질, 지질, DNA, 탄수화물의 크기가 모두 나노미터 범위에 있다. 참고로, 바이러스는 종류에 따라 수 나노미터에서 수백 나노미터의 범위에 있고, 인체의 세포의 크기는 100 마이크로미터 (1 마이크로미터는 백만분의 1 미터), 초미세먼지의 크기는 10 마이크로미터 미만이다. 

나노입자의 가장 큰 특징은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커서 다른 물질과 반응하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크며, 따라서 흡착력이 크다는 점이다. 흔히 사용하는 스펀지로 수북하게 쌓인 먼지를 닦는다고 생각해 보자. 스펀지 하나가 닦아 내는 먼지의 양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스펀지를 여러 도막으로 자르면 새로운 표면이 생겨서, 스펀지는 더 많은 먼지를 닦아 낸다.  

계산하기 쉽도록, 스펀지의 크기가 가로, 세로, 높이 각각 1 센티미터이고 무게가 1 그램이라고 하자. 이 스펀지의 표면적은 6 제곱 센티미터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 등분이 되도록 잘게 썰면, 조각들의 표면적은 모두 합하여 60 제곱 센티미터로, 면적이 10 배로 늘어난다.

같은 스펀지를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십만 분의 1이 되도록 자르면, 100 나노미터 크기의 나노입자가 되는데, 표면적을 합치면 자그마치 60 제곱 미터이다. 이제 스펀지는 상당히 많은 양의 먼지를 닦아 낼 수 있다. 동일한 물질도 나노입자로 만들면, 표면이 넓어져서 다른 물질과 반응하는 역량이 커진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약물도 나노크리스탈 제제로 만들면, 물과 접촉하는 면적이 커져서 잘 녹는다, 면역억제제인 라파마이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에 투여하는 리탈린, 항암 화학요법 후의 구토 증상 완화에 사용하는 에멘드 등이 나노크리스탈 제형으로 나온다. 나노입자 제제는 약물의 용해성을 높여서 투약 용량을 줄이고, 따라서 약물의 독성도 줄인다.

프로포폴은 물에 잘 녹지 않아서 에멀젼으로 만들어 사용하므로 우유주사라고 알려져 있는데, 초기에는 콩기름으로 에멀전화 했으나, 이후 나노에멀젼, 즉 리포좀 제형이 나왔다. 1989 년 허가를 받은 이 제형의 프로포폴이 최초로 승인받은 나노약물이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은 mRNA 백신이다. mRNA 자체는 매우 불안정하지만, 백신은 나노입자 형태의 리포좀으로 mRNA를 포장하여 안정성을 유지한다.

녹내장에 사용하는 라타노프로스트는 리포좀으로 포장하여 약물을 지속적으로 방출하게 한다. 독소루비신, 빈크리스틴 등의 항암제들도 리포좀이나 미셀 제제를 만든다. 항암제의 경우, 약물을 목적하는 신체 부위에 특이적으로 투여하여 효과를 높이고 전신 독성을 줄인다. 페루목시톨은 무기 나노약물로서, MRI 진단을 위한 조영제이다.

세계적으로 허가를 받은 나노약물이 수십 종에 이르고 임상시험도 활발하다. 나노크리스탈은 다른 부가물이 필요하지 않은 제제이다. 리포좀이나 미셀은 지질 또는 폴리에틸렌글리콜 (PEG) 등의 유기합성물로 세포막 또는 비누방울과 유사한 구조체를 만들어 약물을 포장하는 제제이다. 그 외에도, 고분자 유기합성물, 무기 나노입자 등 나노입자의 종류가 다양하고, 새로운 나노물질이 개발되고 있다. 나노입자라고 묶어서 말하지만, 성분이나 형태, 크기, 표면의 성질 등이 다양하고, 체내에서의 동태도 다르다. 

입자의 크기가 작으면 신장을 통해 쉽게 배출되지만, 크면 간이나 비장 등의 장기에 축적된다. 단백질이나 덱스트란과 같이 체내 성분과 비슷한 물질로 만들어져서 분해가 용이한 경우도 있으나, 유기중합체와 같이 분해가 느린 나노입자도 있다. 약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화합물이 체내에 축적되지 않아야 하므로, 체내에서의 동태는 매우 중요하다.

나노입자는 흡착력이 강하여 체내에서 혈 중의 단백질이나 다른 성분들과 쉽게 결합하고, 생체의 면역 반응을 유도하여 염증 및 2차적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나노입자는 반응성이 강하여, 세포 내에서 활성 산소 발생을 유도한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무기질로 된 나노입자는 단백질의 변성을 유도하여 신경 세포에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체내에서의 동태와 분포 양상, 뇌혈관장벽 통과의 가능성, 장기적인 독성은 나노약물 개발에 있어서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

폴리에틸렌글리콜 (PEG) 과 같이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나노입자가 있는 반면, 안전성의 자료가 별로 없거나 임상시험의 전력이 없는 경우도 있다. 같은 물질도 나노입자 형태가 되면 나노입자 특유의 성질을 부가적으로 가진다. 나노약물의 임상시험을 위한 절차와 규제가 일관적이지 않으며, 인체에 적용하기 위한 과정은 약물 각각의 특성과 나노입자의 특성을 모두 고려하여 진행한다. 새로운 나노입자가 개발되고 나노약물이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약물 개발에 관한 절차와 규제도 계속 적응하고 진화 중이다. 

체내에서 안정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목표하는 세포나 장기로 집중하여 공급이 가능하도록, 나노입자와 생체 세포의 하이브리드형의 약물인 바이오미메틱 (biomimetic = bio 생물 + mimetic 모방의) 나노약물이 개발되고 있다. 이들의 기본 형태는 나노입자에 암 세포, 면역 세포, 또는 적혈구 등 특정 세포에서 벗겨 낸 세포막을 입힌 것이다. 세포막에는 온갖 세포막 단백질이 있다. 여기에, 용도에 따라 약물을 내부에 탑재하거나 겉에 부착시킨다.

바이오미메틱 나노약물은 외형이 체내 세포처럼 보이므로, 면역세포가 외부 물질로 인지하지 못하여, 약물이 면역 반응에 의해 무기력화되거나 제거되는 기회를 피한다. 세포막 단백질이나 부가적으로 도입한 표면 단백질의 도움으로 약물을 목적하는 조직이나 세포에 집중적으로 공급되도록 한다. 바이오미메틱 나노입자를 이용해서 외부에서 침투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서 기원하는 독성 물질을 제거하는 약물도 개발 중인데, 이는 다른 약물의 투약을 돕는 제제로서의 용도를 넘어, 나노입자 자체가 약물로서 작용하도록 역할이 확장되는 경우이다.

바이오미메틱 나노약물의 개발은 최근 관심을 끌고 있으나, 안전성의 면에서 아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바이오미메틱 나노약물의 나노입자로서 PLGA 라는 유기중합체 화합물이 흔히 시도되는데, 나노입자는 완전한 공 모양을 하며, 체내에서 젖산과 글리콜산으로 가수분해된다. 하지만, 분해 속도가 느려서, 체내에서 제거되기까지 화합물이 적어도 여러 달 잔류한다. PLGA를 약물의 기제로 사용하는 약물들이 허가를 받아 상용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노입자의 제형이 인체에 사용된 경우는 아직 없으며, 나노입자의 분해 과정이나 체내에서의 동태에 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체내의 동태에 대해 잘 알려져 있고, 쉽게 분해되며, 목표하는 조직과 세포로의 운반 능력도 탁월하며, 대량 생산도 용이한 나노입자가 오래 전부터 실용화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바이러스 제제이다. 독성 성분과 증식 능력을 제거하고, 단지 약물의 포장제로서의 역할만을 하며, 약물을 특정 세포나 조직으로 배달하도록 만든 바이러스 입자를 매개체로 사용하는 많은 약물이 이미 허가를 받았고, 임상시험 중이다. 체내 독성과 안전성에 관한 임상적 데이터도 풍부하다. 이런 관점에서, 바이오미메틱 나노입자가 효율성, 실용성, 안전성, 그리고 경제성의 면에서 바이러스 제제와 경쟁하기 위해서 독자적인 용도와 쓰임을 개발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성은아 박사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학사

미국 뉴저지 주립대 박사

1998-2011년 미국 반더빌트 대학교/ 예일 대학교- 뇌신경계 작용 약물 기전 연구

2011-201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뇌신경전달 회로 연구

2018-2022년 2월 메디헬프라인(주) 약물 개발 연구, 메디헬프라인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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