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일반의약품의 표준제조기준(이하 표제기)을 대폭 확대해달라는 제약업계의 숙원이 꺾였다. 식약처가 최근 표제기 개정 사항을 업계를 대상으로 발표했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식약처가 업계의 의견을 수차례 청취했는데도 제한적인 개정에 그쳤다는 이유에서다. 표제기 검토 지연에 대한 식약처 해명에 대해서도 뒷말이 들리고 있다.

식약처가 지난 15일 제약업계를 대상으로 “의약품안전관리 온라인정책설명회”를 열었다. 현미영 의약품정책과 사무관은 당시 “표준제조기준은 의약품 사용 성분의 종류, 규격 함량, 각 성분 간의 처방을 표준화한 것으로 일종의 ‘룰’ 북이다”며 “저희는 질환군에 따라 14장까지 기준을 마련했고 각 장은 배합성분, 효능·효과, 용법·용량, 사용상 주의사항 등을 규정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년 전 의약품 안전 소통 포럼 등에서 표준제조기준 개정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에 표준제조기준이 개정됐다. 먼저 제1장(비타민, 미네랄 등)에 경구용 젤리제, 구강붕해정, 구강붕해 필름 등의 신규 제형을 추가했다. 타우린, 메코발라민, 코바마미드 신규 성분도 포함했다”고 덧붙였다.
 

“의약품안전관리 온라인정책설명회” 발표 자료(식약처 제공)

식약처 설명대로, 표제기는 일반약에 사용하는 성분 종류와 규격, 함량, 각 성분간 처방 등 허가사항을 표준화한 메뉴얼로 1994년 복지부 고시로 도입된 제도다. 제약사가 표제기대로 제조하면, 식약처 신고만으로 일반약에 대한 제조와 판매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경구용 젤리제가 표제기에 포함됐기 때문에 제약사들은 비타민 제제 관련 일반약으로 경구용 젤리제를 생산할 수 있는 개념이다. 표제기가 곧 제약사들의 일반약 제조 판매의 ‘빗장’을 풀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얼핏보면 식약처가 이번에 빗장을 제대로 연 것처럼 보이지만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중견 제약사의 한 임원은 “해외 8대 의약품집을 근거로 일반약의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면제하는 규정이 삭제되면서 업계에서는 이번에 표제기의 대폭적인 업데이트를 기대하고 있었다. 식약처가 관련 포럼도 추진하고 업계의 다양한 의견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식약처가 매우 제한적인 내용만을 개정하고 반영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실망’이란 키워드가 나오는 이유는 ‘안유심사 면제 폐지’와 무관치 않다. 식약처는 그동안 해외 선진 8개국 의약품집에 있는 일반약에 대한 안전성·유효성(안유) 심사를 면제해왔지만 지난해 11월 관련 규정을 폐지했다. 국내 제약사들의 일반약 시장 접근 루트가 ‘신약 개발’과 ‘표제기’로 제한된 계기다. 

앞서 임원은 “제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을 신약으로 자체 개발을 하려면 여러 가지 허들이 존재한다”며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비해 임상 프로토콜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제네릭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정치도 없다. 현실적으로 신약 개발이 어렵다. 상당수 제약사가 그동안 해외 의약품집에 수록된 일반약을 들여오는 방식으로 안유 심사를 면제 받아 국내 시장에 진출한 배경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식약처가 최근 해외 의약품집 안유심사 면제 규정이 아예 폐지됐다”며 “제약사들에게 표제기가 유일한 트랙으로 남았다. 표제기에 대한 전면 확대 조치 있어야 제약사들에게 일반약 개발 활로가 열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자리잡은 이유다. 저도 식약처가 주최한 포럼에 참석해서 이점을 수차례 강조했지만 이번에 일부 표제기만 찔끔 확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표제기 일반약 효능군은 비타민, 해열진통제, 감기약 등 총 14장으로 구성됐다. 업계가 식약처를 상대로 성분, 제형 확대 등 수차례 의견을 전달했지만 14장 중 1장 비타민과 미네랄 제제 표준제조기준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개정이 이뤄진 것. 식약처를 상대로 업계 목소리를 전달해온 제약업계 임원들이 낙담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측은 설명회에서 “고시 개정에 따라 관련 단체로부터 표제기 개선점과 필요사항을 수렴하고 저희 내부에서 기준 개정 절차를 마련해야 하는데 진행을 많이 못 시켰다. WLA(WHO Listed Authorities, 우수 규제기관 목록) 등재 추진에 집중한 결과 표준제조기준 관리 절차 마련이 많이 지연됐다”고 밝혔다.

스스로 표제기 확대 검토 절차가 지연됐다고 인정한 것.

그러나 식약처 해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제약업계 전반의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WLA와 표제기 확대가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런 이유로 표제기 확대가 지연됐다면 오히려 식약처 스스로 의지가 없다고 자인한 꼴이다”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동안 포럼을 여러차례 했을 때 ‘비타민은 왜 짜먹으면 안 되냐’라는 지적을 포함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달했다”며 “하지만 젤리 제형 하나 들어오는데 2년이 걸렸다. 업계 기대치가 100%이라면 10%만 반영한 셈이다. 식약처의 소극적인 태도를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학계 입장도 제약업계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약대 교수는 “제약업계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 식약처는 표제기가 국제적인 흐름과 어떤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어떻게 풀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하지만 표제기 개정 역사를 보면, 일반약 표제기에 대한 식약처 차원의 숙고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식약처가 업계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