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교수

디지털치료제에 관한 컬럼을 시작한지도 3개월이 되어간다. 이쯤해서 한번쯤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디지털 세상 이면의 생각 단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똑같은 삶의 공간과 멈춰버린 듯한 시간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세상을 동경하였다. 소년 시절 수평선을 따라 항해하던 큰 배를 바라보던 마음의 연장선에서 공간적 변화를 시도하였다.

공간적 변화의 시도에는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에 대한 목마름도 한몫을 했다. 낮선 동네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새로움과 다름에 마주하였다. 이해와 욕심에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하는 낮선 환경이 때때로 어색하기도 하지만 신선한 들숨과 자유로운 날숨은 평화를 체감하기에 충분하다.

기대했던 자유로움이 때때로 쓸쓸함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공간은 보고 싶었던 얘깃거리들에 집중하고 내재하여 있던 쓸거리를 풀어놓을 수 있게 하였다. 내면에 집중하면서 평화로움은 더불어 찾아왔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평화로움을 만끽하는 듯했지만, 그 이면에 무료함이 있었고, 나의 일상의 소소한 것들과도 친숙하게 되었다.

누구나 하는 청소와 요리, 세탁 등에 익숙해졌고 사소한 삶의 방편들도 스스로 처리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집 근처의 가게와 대형 마트들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제품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혼자 사는데 불편하지 않다.

어린 시절 일상에 필요한 대부분을 가게가 아닌 뜰과 밭, 바닷가에서 채취했던 것에 비하면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가게와 마트에서 챙겨온 삶의 편리들에는 쓰레기가 함께 붙어온다.

챙기는 과정에선 그것들이 꼭 필요한 용기이고 껍질이며 모양 좋은 액세서리로 보일 뿐 쓰레기로 인식하지 않는다. 집에 와서 물건들을 정리하고 먹거나 쓰고 나면 버려야할 부분들이 생긴다.

당연히 분리수거 방식에 따라 버리는데, 아주 짧은 시간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결국 그것들 모두가 쓰레기가 되어있다. 그렇게 정기기적으로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수집하고 또 사용 후 쓸모없어진 것들과 그 잔재들을 쓰레기로 버린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쓰레기와 함께 사는 노인의 삶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그 노인은 그것들을 쓰레기로 보지 않기 때문에 모으고 쌓아놓았을 것이다. 쓸모없어진 것과 그 잔재들을 버려야 할 쓰레기로 보느냐 아니면 여전히 보존하고 싶은 내 삶의 흔적이나 곁에 두고 싶은 가치로 보느냐에 따른 결과이다.

나는 깔끔떠느라 매일 아침 쓰레기를 버린다. 어느 날 아침, 보자기 속의 쓰레기를 하나하나 버리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물질적 쓰레기와 함께 “생각의 쓰레기도 매일 버리자!” 살아있는 동안 삶의 잔재인 생각의 쓰레기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쌓여간다.  

생명적 본능과 욕망이 작동하는 삶의 과정에서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생성되고 그 조각들이 고리를 형성하여 우리의 삶을 지탱한다고 볼 수 있다. 오래전에 형성된 상당한 비율의 편린들이 여전히 오늘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조정하고 있다.

그리고 쓸모없는 상당한 분량의 편린들과 그 잔재들을 내 속의 다층 공간에 쌓아두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쓰레기로 간주 할 수 있는 생각의 편린들을 채곡 채곡 쌓아두고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한다.

돈이나 학식의 잣대를 들이대어 누군가를 무시하는 생각과 본인이 우월하다는 생각, 문득문득 솟아나는 원망과 불평, 미워하는 생각, 거짓을 통해서라도 욕구를 성취하려는 생각, 속임수와 허세, 시샘,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복수심 등등이 생각의 쓰레기일 수 있다. 그 생각의 쓰레기들을 여기에 다 열거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쓰레기는 쓰레기장에 버리고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안타까워하거나 미련을 둔다면 그것은 쓰레기가 아닐 것이다. 버려버린 쓰레기를 일일이 기록하거나 기억하려는 사람도 없다. 버림과 함께 지워버린다. 그런데, 생각의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성적으로 쓰레기로 간주한 생각들이 감정적으론 버릴 수 없는 중요한 가치로 깊숙이 저장되어 있다. 그 것이 쓰레기라면 결국 나의 건강한 삶을 방해한다. 지저분한 형체로 냄새를 풍길 뿐만아니라 정상적 사고와 판단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얼굴색을 변조하고 걸음걸이를 뒤틀어 놓는다. 어쩌면 평생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할 수도 있다. 어떻든, 생각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자유로워지려는 행위이며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상쾌하고 평화로우며 건강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생각의 쓰레기를 버릴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나도 모른다. 그러나 시도해 볼만하다. 연습과 훈련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매일 물질적 쓰레기를 버리기 위한 노력만큼이라도 생각의 쓰레기를 버리는 시도를 하다보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의 쓰레기도 매일 버리자!” 라는 인식만으로도 우리의 정신은 건강해질 수 있다. 부정적 생각들을 쓰레기로 간주하는 순간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 시작될 테니까. 아니면, 생각의 쓰레기를 버리는 디지털치료제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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