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아래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박인춘 약사회 부회장, 송재찬 병협 수가협상단장, 의협 김동석 단장 

[팜뉴스=최선재 기자] 2021년 수가협상은 ‘마라톤 협상’의 연속이었다. 보건 의료계는 코로나19로 입은 피해를 실질적으로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한 반면 건강보험공단은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함께 고통을 분담할 것을 강조했다.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며 17시간 이상 이어진 이유다. 

지리한 협상 끝에 명과 암이 갈렸다.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치과협회가 결렬을 선언한 반면 수년째 결렬을 외쳤던 대한의사협회가 가장 먼저 협상 타결에 성공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대한약사회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다. 본지가 그 생생한 현장을 다녀왔다. 

이번 수가 협상은 5월 31일부터 이틀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건보공단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진행됐다. 약 16시간 동안 대한약사회 등 의약단체들은 치열한 협상을 이어갔다.

그 결과 의협 3.0%(환산지수 90.2), 약사회 3.6%(환산지수 94.2), 한의협 3.1%로 협상이 타결됐다. 반면 치협과 병협은 지난해에 이어 최종 결렬을 선언했다. 밴딩폭(추가소요재정)은 1조 660억원 수준으로 인상율은 2.09%를 기록했다. 

약국의 인상율 3.6%는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인상률이다. 이번 수가협상에서도 약국은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1위를 차지하면서 '알짜 협상' 선례를 이어갔다. 

#깜깜이 협상... 새벽까지 ‘난항’

지난 5월 31일 오후 4시부터 대한병원협회를 필두로 시작된 3차 협상은 한의협, 약사회, 치협, 대한의사협회 순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협상 시간은 달랐지만, 회의실을 나오는 공급자 단체들의 표정은 모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건보공단 측과 의약단체 측 간극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오인석 대한약사회 보험이사는 당시 “3차 협상 결과가 지난 2차 협상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가입자 측과 공급자 측 사이에 간극이 커서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상세한 내용은 4차 협상 이후에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짤막하게 말했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수가협상단장은 “공단 측이 제시한 수치는 기대 이하 수준이다”라며 “수가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코로나19로 입은 피해에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전혀 반영이 안된 것 같다"고 밝혔다. 협상 결렬의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것. 

오후 7시경 재정소위(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가 2시간 30분가량 열렸고 회의가 끝난 이후 곧바로 4차 협상이 시작됐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4차 협상 직후에 오인석 약사회 보험이사는 “딱히 할 말이 없다”라며 “재정소위가 끝나고도 별다른 진척상황이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전했다. 김성훈 치협 보험이사도 “간격이 크다는 것 외에는 따로 전할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오인석 대한약사회 보험이사
오인석 대한약사회 보험이사

공단 측이 제시한 밴드(추가 소요재정) 폭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보건·의료계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

4차 협상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다시 한번 재정소위가 다시 열렸다. 수가협상의 전체 ‘파이’, 즉 밴딩폭(수가소요재정)에 대한 의약단체들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궁여지잭이었다. 회의는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까지 지속됐다. 회의가 길어지면서 협상 또한 미뤄졌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갔다.

새벽 2시경 공급자 단체 중 일부가 다시 협상을 재개했다. 하지만 앞서 상황이 그대로 재연됐다. 5차 협상을 끝내고 나온 병협과 치협은 공단 측이 "말도 안 되는 수치를 제시했다"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결국 오전 3시 30분경부터 또 한 번의 재정소위가 개최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새벽 4시 무렵에 재정소위가 끝나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됐던 것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지연된 셈이다. 

#의협 4년만에 협상 타결

하지만 의협이 협상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오전 7시경 의협이 먼저 수가협상안에 도장을 찍은 것. 지난 4년간 마지막까지 협상을 이어가며 끝내 결렬을 선언한 모습과는 판이했다.  

김동석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국민들과 함께 고통 분담을 하기 위해 협상 결렬보다는 타결 쪽으로 노력했다”며 “다만, 회원분들이 전염의 위험성 등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데 수가 인상을 기대만큼 반영하지 못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답했다.

이필수 회장이 꼽은 키워드는 ‘대승’이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코로나19로 너무 힘든 시점이다. 더욱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회원분들게 죄송하다”며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국민도 정부도 많이 어렵다. 국민과 정부와 함께 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대승적으로 수가 협상이 타결됐다”고 덧붙였다. 

대한약사회와 한의협이 의협 뒤를 이어 마침표를 찍었다. 박인춘 부회장은 “저희가 원하는 수치보다는 모자르지만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회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진호 한의협 부회장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협상이었다”며 “특히 마지막에 어려움을 겪었다 예상했던 수치에는 미치지 못 했지만 코로나19로 국민이 힘들어 고통분담 차원에서 수긍했다”고 전했다. 만족할 만한 협상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것이 의협, 약사회, 한의협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이상일 공단 급여상임이사
이상일 공단 급여상임이사

#병협 치협 ‘건정심’ 직행

하지만 치협과 병협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줄기차게 협상장에 들어갔지만 끝내 협상은 이뤄지지 못했다. 김성훈 치협 보험이사는 “공단과 서로의 간극이 너무 커서 최종 결렬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응답하지 않고 자리를 서둘러 떠났다.

송재찬 병협 상근 부회장도 “공단이 제시한 수치가 병원에서 기대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라며 “팬데믹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병원들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 수가 협상이 코로나 상황에서 병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려서 대국민 의료서비스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된다”며 “일부 유형에서 급여비가 증가한 측면이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손실분을 충분히 덜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치협과 병협은 이번 협상 결렬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절차에서 수가가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페널티를 부여 받으면 건보공단 측이 당초 제시한 수치보다 1% 안팎으로 감액된 수가가 결정될 수 있다. 협상 결렬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상일 건보공단 급여상임 이사는 “병원 유형이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타결하지 못해서 매우 안타깝다”며 “병원 경영난에도 의료 인프라 확충 등 환자들을 위한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더욱 수가에 이를 반영해달라고 했지만 수가 인상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입자의 부담도 있어 둘 사이에 간극 좁히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만, 향후 가입자, 공급자 그리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제도발전협의체를 통해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 개선하기 위한 환산지수 연구 등을 통해 건보 재정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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