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한 가운데 국가 필수의약품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공공제약사’의 설립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신과 치료제는 물론 장기적으로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의약품인데도, 제약사들이 그동안 수익성을 이유로 기피한 의약품의 안정적인 생산을 담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은 최근 21대 총선을 위한 의약품 정책과제를 4가지 정책개혁 방향과 16가지 요구안을 발표하고 이를 각 정당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당시 요구안으로 공공제약사 설립, 특허권 남용방지 마련, 의약품 규제 정상화, 품목허가 과정 및 허가절차 강화 등이 포함됐다. 

건약은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특허독점과 이윤 중심의 제약회사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안을 요구한다”며 “십여년전부터 각 지역에 발생하는 신종감염병(지카, 에볼라, 메르스)들이 발생했지만, 제약사들은 치료제 개발을 외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치료에 필수적인 치료제들을 경제적 이유로 생산하지 않거나 공급을 거부하기도 했다”며 “심지어 정부에 한 번 허가받은 의약품들은 시판 후 유효성이나 안전성의 문제에 대해 다시 평가받지 않고 계속 판매됐다”고 덧붙였다. 

건약 요구안에 따르면, 의약품은 사회의 공중보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본적인 건강을 향유하기 위한 비용-효과적인 재화로서 다른 소비재와는 다르게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 

하지만 의약품 생산과 공급이 그동안 민간 기업들에게 맡겨져 있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건강권을 위한 ‘공공재적’ 성격이 아닌, 가장 ‘산업적인 이윤추구상품’의 성격이 점차 강화돼왔다는 것. 

건약은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영리기업들은 의약품의 생산-유통뿐만 아니라 판매까지 전 영역을 장악하면, 의약품 가격은 자연스럽게 치솟고 국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8년도의 발생한 간암 환자의 90%가 투약하는 필수 치료제인 ‘리피오돌’ 공급거부 사태 당시 제약회사 게르베는 1998년에 리피오돌 앰플 한 개당 약 8,500원이었는데도 20년이 지난 2018년, 30배가 넘는 가격인 26만원이 아니면 한국에 약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례가 축적하면서 의약품의 과도한 특허독점도 의약품 접근성의 장벽이 됐다는 것. 전염병 사태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사태 당시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의 특허가 독점된 상황에 제한된 공급으로 정부는 치료제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건약은 “정부가 당시 독점된 특허를 무효화하는 ‘강제실시’와 공공적 의약품 생산이라는 자구책이 있음에도 결정하지 못했고, 치료제를 구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은 건강권의 핵심 요소다”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정부는 각 유관기관별로 필수적인 약제의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지만 각각 상이한 지정 기준과 관리목적을 갖고 있다. 통일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실제 효과도 의문시할만한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및 관리를 위한 공공제약 컨트롤타워 도입 세부 실행방안 연구'  논문(권혜영, 2017)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및 관리를 위한 공공제약 컨트롤타워 도입 세부 실행방안 연구' 논문(권혜영, 2017)

실제로 정부의 필수의약품에 대한 대응체계는 복지부, 식약처, 심평원으로 제각각이다. 퇴장방지 의약품, 국가필수의약품, 생산수입공급 중단 보고대상 의약품, 희귀의약품 등 갖가지 제도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건약을 포함한 약사단체에서 제도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하는 여론이 꾸준히 등장했던 배경이다.  

건약이 이번 요구안에 첨부한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도자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2016~2018년)간 생산·수입·공급 중단 보고 의약품 현황에 따르면, 보고된 253개 의약품 중 24개 의약품은 대체약물이 없어 모니터링 중이다. 이 중 한센병치료제인 ‘답손정’만 유일하게 생산 중인 상황이다.

건약은 “제약회사가 의약품의 생산,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적인 문제 때문(수요감소와 수익성 약 70%)이다”며 “이윤이 남지 않는 의약품의 생산과 공급을 민간 자율에 맡겨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푸제온(AIDS 치료제), 프레지스타정(AIDS 치료제), 엘라프라제(헌터증후근) 등 수많은 필수약제들의 공급 거부 사태가 이어져왔다. 건약은 “특히 진료상 필수약제가 약가협상 결렬 등으로 일방적으로 공급이 거부됐을 경우 환자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 선제적 국가개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건약은 또 “최근 들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신종전염병 대유행 등 공중보건위기 상황에 대비한 국가 비축 의약품 제도를 운영해왔지만 대비량이 부족하다. 수급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진 이유”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면 개입 의약품의 공적 생산 및 공급 시스템은 제약산업이 수익성을 이유로 생산을 기피한 의약품, 필수적인 약제임에도 공급 중단된 의약품, 전염병 유행시 필요한 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과 생산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게 건약의 핵심 주장이다. 

건약은 이를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 ‘공공제약사’의 설립을 제안했다. 건약은 “공공제약사는 제조설비를 갖추어 직접 생산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공공 제약사 생산 인프라의 공적 활용, 위탁제조 및 수입업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의약품의 생산과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에 맡기는 수동적인 상황을 벗어나 의약품의 안정적 생산·공급에 적극적인 역할을 시작하는 단초로서 공공제약사 설립을 설계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건약은 또 “공공제약사뿐만 아니라 필수의약품 및 백신 등 공중보건을 위한 의약품 생산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며 “국가에서 필요한 의약품의 국내 생산을 담당할 민간 제약회사 풀을 만들거나 필수적인 의약품 수급을 위해 주변국가들과 국제적 공조를 강화하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 건약은 이번 총선에 앞서, ‘국가 주도의 공적 의약품 생산·공급 체계 마련’, ‘특허발명의 정부사용 조항(특허법 제106조의2)을 적극 활용한 희귀의약품이나 퇴장방지의약품의 국내 생산을 담당할 제약사 풀 조성’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건약은 ‘필수의약품 및 백신 등 공중보건을 위한 의약품 생산의 안정성 및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지역적 협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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