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 현황과 문제점
‘불법 리베이트’ 불명예 벗는 원년 정부·제약, 리베이트 근절 노력 가동 금품 수수자 의료인 적극 동참 필수 조건 제약산업육성 차원 국민신뢰 회복…
2009-03-31 유희정
31일 제약업계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제약협회 회장단을 비롯해 이사, 실소유주인 주요제약사 대표이사와 영업책임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200여명의 제약계 인사들이 모이는 이 자리에는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을 비롯해 의약품 정책과 관련된 복지부 관료들이 참석하게 된다.
‘제약산업 발전 대국민 보고대회’라는 명칭으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전재희 장관이 격려사를 할 예정이며 노길상 복지부 보건의료 정책관이 ‘정부의 제약산업 육성정책과 의약품 유통투명화 방안’에 대한 발표를 하게 된다.
또 제약협 문경태 부회장은 유통부조리 근절대책 수립과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에 대한 협회의 입장을 밝힌다. 제약협회는 이번 대회를 통해 제약산업이 앞으로 유통투명화를 위해서 어떤 대책들을 마련해 나갈 것이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비리 척결 당위성 확산
어준선 제약협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을 통해 제약산업의 유통투명화와 제약산업의 위상 강화를 위한 신뢰회복을 위해 악역을 맡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어준선 회장은 “제약산업의 신뢰회복이 필요하고 중요한 시기”라며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뼈를 깍는 아픔이 있어도 참고 나가야 한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리베이트를 제공하면 회사에 큰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제약협회가 제약사들의 실소유주들이 참석하는 대회를 열 정도로 제약업계의 신뢰회복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어준선 회장이 뼈를 깍는 아픔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듯이 의약품의 공정거래는 일대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어디를 가나 리베이트 문제를 거론한다. 한미FTA로 인해 촉발된 제약산업의 발전방안을 위해서는 리베이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든 관계자들이 지적이다.
정부는 물론, 국회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여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는 의약품유통투명화를 위해 의약품정보관리센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국회에서는 의료인들에 관한 처벌조항 마련과 함께 리베이트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작 단계이고 걸음마 단계다.
복지부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의약품유통정보센타도 지난해 말부터 보고형태가 변화되었고 이제야 제약협회와 다국적의약품산업협회가 모여 공정경쟁규약을 만들기 위해 T/F팀을 구성해 논의 중이다. 복지부도 약가부분과 약사법 개정을 통한 처벌조항 마련 등 리베이트 차단을 위해서 여러 법안을 마련했지만 시행된 지 몇 개월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이제야 토양은 마련된 것”이라며 “이런 토양을 바탕으로 제약사들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자신들의 규약을 지켜나가는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제약업계가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전제는 신뢰회복”이라며 “신뢰회복이 우선되어야 제약산업을 위한 지원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약산업의 발전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먹거리 산업의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리베이트라는 발목에 묶여 산업의 발전과 지원보다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정위 조사로 촉발된 약계 리베이트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다국적제약사 5개사를 포함한 7개사에 대한 공정거래위반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2차로 발표된 이번 조사는 지난 2007년 11월에 발표된 1차 때의 조사와는 달리 다국적제약사의 불공정거래 내용이 포함돼 관심을 모았다.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국적제약사도 국내 제약시장의 현실에서 국내 제약사들과 비슷한 불공정거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2차 발표와 관련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국적제약사의 음성적 리베이트 제공행위를 적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오리지널사와 제네릭사 간의 경쟁과정에서 복제의약품 출시 등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최초로 시정 조치했다”고 평가했다.
공정위의 이같은 발표와 같이 국내 제약사를 비롯해 다국적제약사들의 영업형태는 국내 제약시장에서는 비숫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국내 제약사들이 판촉행위의 범위를 잘 규정하지 못하고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한 학회 등의 활동을 제품설명회 보다는 과도한 판촉활동으로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다국적제약사도 국내 제약사와 같이 판촉행위와 제품설명회에 대한 규정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영업을 진행해 왔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었다.
국내 제약사들은 주로 현금지원이나 골프접대 등 의사들에게 직접적인 리베이트를 제공해왔지만 다국적제약사들은 제품설명회나 세미나 등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제약사와의 차이점은 신약을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제약사에게는 제품설명회의 의미를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처벌 규정도 1차 조사대상의 제약사들에게는 검찰고발까지 이뤄졌지만 2차의 제약사들은 시정명령과 과징금에 그쳤다.
공정위의 이같은 조사는 국내 제약산업의 리베이트가 수면위에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1차때의 조사와 2차 때의 조사는 발표 시기만 틀릴 뿐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된 조사였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어떤 형태의 마케팅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를 없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로 제약산업의 리베이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보건의료계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복지부와 제약협회에서도 리베이트 문제를 거론하며 해결점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제약·복지부, 자정노력과 법안 마련 주력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이후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약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리베이트를 받은 약사와 한약사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했다. 리베이트 제공 범위도 금품, 노무, 물품, 편익, 향응, 그밖의 경제적 이익 등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자격정지 2개월을 받게 된다.
또한 의료인들이 의약품 판매촉진과 관련해 금품을 받을 경우 행정처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이 개정 중이며 리베이트 제공이 적발된 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 규정도 마련됐다.
이와 같은 법안 마련과 함께 복지부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내에 설치되어 있는 의약품정보관리센터가 리베이트 차단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에 오픈한 의약품정보관리센터는 그동안 급여 의약품에 대해서만 분기별로 보고를 받았다. 이것을 지난 해 10월부터는 급여 의약품을 비롯해 비급여와 일반의약품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였으며 보고도 월별로 변경했다.
또한 4가지의 데이터마이닝 모델을 개발해 의사들이 처방을 변경하는 내용을 비롯해 제약사들의 불성실 신고 등을 적발하는 상설감시체계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아직은 월별보고와 보고하는 의약품 확대도 얼마되지 않아서 현재는 그 전에 모은 자료를 근거로 데이터마이닝 모델을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이와 함께 불성실 신고 업체에 대해서는 과태료는 물론, 품목정지, 영업정지를 하도록 하는 법안이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의료인들에 관한 처벌규정을 마련하고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의료인에 대한 처벌은 제약협회와 대한약사회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약사들에 대한 처벌규정은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리베이트의 중심에 있는 의료인들에 대한 처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료인들에 관한 처벌규정을 의료법에 적용하기 위해 법안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의원발의로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또한 리베이트 가이드라인 마련도 논의 중에 있다. 원희목 의원실은 이미 자료 수집은 마친 상황에서 리베이트에 대한 처벌규정과 그 범위 등을 담은 법안을 마련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제약협회도 리베이트 차단을 위한 여러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31일 대규모 제약산업의 유통투명화를 위한 대회를 여는 것은 물론, 제약협회 내부에 의약품 유통 부조리 신고센터를 설치해 자정노력에 들어갔다.
제약협회는 작년 10월 30일 긴급이사회를 개최하고 의약품 유통 투명성 제고를 위해 ‘의약품 유통부조리 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키로 결정한데 이어 지난 2월 23일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신고 대상은 ▶약품채택비, 처방사례비, 의국비 등의 금품류 제공행위 ▶학술목적 이외의 해외·국내여행에의 초대 또는 후원하는 행위 ▶보험삭감 보상을 위한 금품류 제공 행위 ▶ 의약품 거래와 관련이 있는 기부금 ▶의료기관등 의약품 수요자가 금품류를 제공하지 않으면 의약품의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의약품의 판매를 위하여 제공되는 금품류 ▶▶ 보험의약품 거래에 부수해서 의료기관등에 제공하는 물품, 금전, 편익, 노무, 향응, 기타 경제상의 이익을 주는 행위(공정경쟁규약에서 허용한 사항으로 사회통념상 정상적인 상관례로 인정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은 제외한다) 등이다.
또 중점 대상 신고 부조리 유형을 ▶대학병원 등의 발전기금 지원 행위 ▶공정경쟁규약 범위를 벗어난 국내외 학회지원 행위 ▶제약사의 의약단체 개별지원 행위 ▶시장선점을 위한 과도한 랜딩비와 처방사례비 ▶시행의무 이외 의약품의 시판후조사(PMS)를 통한 지원행위 등으로 정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제약협회와 다국적의약품산업협회와 함께 만들고 있는 공정거래규약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제약사들의 뼈를 깎는 노력 있어야
이렇게 정부는 물론, 제약업계 등에서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가장 중심에 있는 의료인들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의사들의 의식변화와 윤리의식이 중요하다”며 “의사들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의료인들에 대한 처벌규정은 약사와 같이 자격정지 1개월로 규정하고 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내용도 약사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과 같이 구체적으로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처벌규정이 마련되면 의료인들도 리베이트 문제에 대해서 각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이 쌍벌죄에 대해서는 제약협회가 여러 차례 복지부에 요구해 왔던 상황이다. 또한 제약업계가 만드는 공정거래규약도 리베이트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이 시각이다. 복지부는 공정거래규약의 내용을 기초로 리베이트 적발 약품에 대한 규정을 만들 예정이며 공정위는 제약업계가 원하면 공정위의 위원회에 상정해 심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만만치 않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리베이트를 받는 자에 대한 벌칙을 강화해야 한다”며 “정부에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국회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도 공정경쟁규약이 있었다”며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의 경우에는 로비라는 개념이 있어 문화 속에 리베이트의 개념이 들어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도를 마련하고 법안을 마련해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의약품관리정보센터의 경우도 유통의 흐름을 끝까지 추적하기 위한 정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선언이나 규약 및 자정 노력만으로 모든 불법이 척결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약협회는 의약품 거래와 관련해 의료기관에 일체의 기부금이나 발전기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이미 2년전에 선언한 상태이며 제약사들이 CP까지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선언이 아직은 선언에 그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제약사들은 리베이트 등 금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매출이 현재보다 절반으로 추락한다는 자체 분석자료까지 내놓고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과도한 판촉비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협회에서 자정노력을 하고 규약을 새롭게 만들어도 공정거래 풍토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블록버스터급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만료 이후 제너릭 제품이 출시되면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체 약업계가 뒤흔들릴 정도로 금품제공이 만연했었다. 상위 업체들의 금품공세에 중하위 업체들은 그나마 확보하던 시장까지 빼앗기는 상황이 됐다. 획기적인 제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매출 성장률이 높다는 것은 그 만큼 판촉비를 많이 사용했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이런 리베이트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약산업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책임지게 될 산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제약산업의 현주소는 리베이트와 연결되어 있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제약산업에 대한 지원에 대한 법안도 마련되어 있지만 그 통과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약산업은 리베이트라는 이미지를 벗는 것이 중요하다. 어준선 회장이 언급한 것과 같이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고 이것이 단지 제약업계와 정부만의 노력이 아닌 의료인들이 동참이 가장 중요하다. 올해는 제약업계가 리베이트를 벗어던지고 국민들이 호응하는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