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신 국가핵심기술 고시, 규개위 심의 없이 날치기
-2010·2016년 국가핵심기술 지정, 규개위 공식 확인 결과 심의 전무 -RIA·영향평가 생략…절차적 정당성 무너졌다 -산업계·법조계 “지정 근거 자체 흔들린다”
[팜뉴스=노병철 기자] 보툴리눔 톡신 생산기술과 균주가 각각 2010년과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 고시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확대된 과정에서, 해당 부처가 법적으로 요구되는 규제영향분석(RIA)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가 본지 확인 요청에 “두 건 모두 심의 이력이 없다”고 공식 답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절차적 하자 논란은 단순 의혹을 넘어 '사실관계'의 문제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해당 기술 지정은 명백한 '규제 신설·강화'에 해당함에도, 산업부가 이를 단순 고시 개정으로 분류해 규개위 심의를 건너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업계와 국회에서 동시에 제기된다. 최근 톡신 규제 재검토 논란과 맞물리며 "처음부터 절차가 무너져 있었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행정규제기본법은 2006년 전면 개정 이후 일관되게 "모든 규제 신설·강화는 규제영향분석서 작성과 규개위 심의 의무"를 명시해왔다. 2010년과 2016년은 이미 제도가 정착된 시기로, 정부가 이를 몰랐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보툴리눔 톡신 생산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은 기업의 해외 기술이전 제한, 수출통제, 보안관리 의무, 형사·행정 제재 등 강력한 규제를 불러오는 조치다. 명칭이 고시일 뿐, 규제 신설의 실질적 법적 효과를 갖는다.
2016년 톡신 균주 자체를 국가핵심기술로 편입한 고시 개정은 규제의 범위를 기술에서 생물자원 단위로 확대한 전형적 규제 강화다. 균주 반출·반입, 연구 인력 이동, 해외 협력 등 산업계 활동 전반이 규제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산업부는 두 차례 지정 모두에서 규제영향분석을 작성했는지, 규개위 심의를 요청했는지 여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 문서에서도 관련 기록은 확인되지 않아 보인다. 산업부와는 별개로 규개위는 "심의 이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행정규제기본법은 "법령·조례·규칙뿐 아니라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규제 형식"을 규제 대상으로 본다. 다시 말해, 고시라도 규제효과가 발생하면 규제영향분석 의무가 면제될 수 없다.
그렇다면 산업부는 어떤 논리로 이 절차를 생략했을까. 당시 정부의 관행을 고려하면, 산업부가 국가핵심기술 지정 고시를 '순수 행정고시'로 해석해 RIA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해석을 법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 실질이 있으면 고시 형식과 무관하게 규개위 심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규제개혁 실무의 확립된 원칙이기 때문이다.
국가핵심기술 지정은 단순한 기술 분류 행정이 아니라 기업의 해외 진출 전략, 생산시설 투자, 공동연구 협력 등 핵심 경영 활동 전반을 제약하는 강행 규제다. 사전 영향평가의 필요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2010년 첫 지정조차 규제영향분석을 했다면, 보툴리눔 톡신을 반도체·방산과 동일한 국가핵심기술로 분류하는 판단이 타당했는지 공개적 검증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균주 확대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산업부가 규제영향분석 의무를 처음부터 고의로 회피했다면 이는 규제기본법 체계를 정면 위반한 셈이 된다. 규개위 심의 패싱 자체만으로도 절차적 정당성에도 치명적 결함이 발생한다.
톱다운 방식으로 결정된 국가핵심기술 지정은 지난 15년간 제약바이오 업계에 적지 않은 부담을 남겼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가장 치열한 보툴리눔 톡신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은 해외 생산시설 구축·인력 이동·기술이전 등 모든 단계에서 강화된 규제를 감내해야 했다.
국회를 포함한 제약바이오 업계 전반에서는 이번 '심의 전무' 확인을 계기로 국가핵심기술 지정의 전 과정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절차적 하자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향후 지정의 효력 자체가 법적 다툼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국회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명분은 기술보호였지만 실제로는 사전 검증 없이 규제를 밀어붙인 것 아니냐"며 산업부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규제 체계의 신뢰성 문제로 번질 조짐이다.
산업계에서는 "만약 2010·2016년 지정 절차가 정상적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갈등과 산업 억압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규제의 출발점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부는 규개위 심의 부재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 당시 보고체계·기록 여부를 점검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규개위의 공식 확인으로 심의 부재는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은 단순한 행정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술보호 정책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라며 "국가핵심기술 제도는 근본적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핵심기술 해제 논의 시점은 아직 미정이다. 과거 지정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린 만큼, 규제 체계 전반의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