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약국 지배 차단… 비대면진료 새 질서 열린다
-특정 의약품 판매 조장·오남용 방지 위한 강력한 제재 체계 구축 -민간 플랫폼의 도매상 운영 및 담합 구조 봉쇄…의약품 유통 공정성 강화
[팜뉴스=김응민 기자] 최근 비대면진료 관련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이 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하면서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법사위와 국회 본회의 의결로 확정될 경우, 약 6년간 한시적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돼 온 비대면진료가 제도권 내에서 공식적인 규율 체계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대한약사회는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바로 세우고 플랫폼 중심의 왜곡된 시장 질서를 정상화하기 위한 필수 조치"라고 평가하며 환영의 입장을 밝히는 한편,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해 후속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는 지난 18일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및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대면진료 원칙을 명문화하고, 비대면진료 적용 대상을 기존 의료기관에서 일정 기간 내 동일 증상으로 대면진료 경험이 있는 환자로 제한한 것이다.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지역 및 처방 제한이 적용되며, 희귀질환자와 제1형 당뇨병 환자는 지역 제한에서 예외로 인정된다. 의료인은 이러한 기준을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을 받게 되며, 위반이 지속될 경우 자격정지 및 벌금이 부과된다.
비대면 상황에서 처방 가능한 의약품 범위 역시 제한되며, 마약류 등 특정 약물은 원칙적으로 비대면 처방이 금지된다. 마약류 처방·조제 시 DUR 확인 의무가 강화되고, 시각적 정보 확인이 필수적인 질환은 화상진료 방식이 의무화된다. 관련 처방제한 사항을 의무기록(EMR) 시스템에 반영하도록 한 조항도 포함됐다.
또한 의료인뿐 아니라 환자에게도 의무와 책임이 부과됐다. 허위 정보나 부정한 방식으로 비대면진료를 이용한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이 부과되도록 규정한 것은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장치로 마련됐다.
무엇보다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규제하는 새로운 체계를 명확히 법률로 도입한 점이다.
개정안은 비대면진료 중개매체를 신고 대상으로 규정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에 인증 의무를 부여했다. 또한 개인 정보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에서 영업정지까지 폭넓은 제재를 적용한다.
의료광고 심의 대상에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포함한 점도 주목된다. 아울러 정부가 공공 목적의 비대면진료 중개시스템을 구축·운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면서 민간 플랫폼 중심의 현재 구조를 공공 영역으로 균형 있게 이동시킬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는 평가도 가능해졌다.
약 인도와 관련해서는 현행 시범사업 기준과 동일하게 허용대상을 명문화하고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지역 내 약국'이라는 거리 제한을 추가했다. 약사법 개정안에서는 비대면진료 중개매체와 중개업자에 대한 정의를 신설하고, 의약품도매상 결격사유에 플랫폼 사업자를 포함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플랫폼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약국에 대해 도매상 또는 제3의 도매상을 통한 의약품 판매를 금지하는 조항이 마련돼 약국과 플랫폼 사이의 거래 종속 구조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게 됐다. 배우자 및 가족 관계, 지분 관계 등을 고려한 '사실상 지배' 개념을 분리 규정한 점은 플랫폼의 우회적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취지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약사회 이광민 부회장은 지난 24일 전문언론 출입기자단과의 브리핑을 통해 "약사법의 근간인 담합 및 불법 리베이트 금지 원칙에서 민간 플랫폼이 예외가 될 수 없다"라며, 이번 개정안이 특정 플랫폼의 불법적 시장 개입과 의약품 유통 개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 6년간 일부 민간 플랫폼이 시장 장악력을 기반으로 약국을 줄 세우고, 자사 도매 취급 의약품을 강매하며, 처방전 편향 제공 등 여러 문제행태를 지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플랫폼 주도의 왜곡된 의약품 유통 구조는 약사의 전문성과 국민의 약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였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제도 정비라는 설명이다.
일부 플랫폼 업체들이 이번 법 개정을 '비대면진료 금지'로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했다.
이 부회장은 "플랫폼 업체의 주장은 의도적인 왜곡이며 공공 보건의료체계를 사익 추구 도구로 삼으려는 위험한 시도"라며 "담합·리베이트 금지 원칙은 기존 약사법 및 의료법을 통해 의료기관, 약국, 의약품유통업체, 제약사 등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며 이번에 플랫폼 업체에도 동일하게 이뤄진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조치는 특정 업체를 편향적으로 겨냥한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공성 장치"라고 덧붙였다.
약사회는 또한 이번 개정으로 정부가 비대면진료 지원 시스템과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을 직접 구축·운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민간 플랫폼 종속이 심화돼 온 구조를 공공 플랫폼을 통해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민이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안전한 진료 환경을 확보하는 데 의미 있는 조치라는 것이다.
특정 플랫폼이 도매상을 직접 소유하면서 약국에 사실상 거래를 강제했던 행태를 차단한 점 역시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치로 해석했다.
다만 약사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에서 큰 틀만 규정하고 세부 요소를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에 위임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비대면 초진 시 처방이 금지될 의약품의 범위, 처방일수 기준, 약국 외 약 인도 절차 및 지역 범위 등은 국민 안전과 약사 직능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엄격하고 구체적으로 설정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법 개정을 계기로 비대면진료가 더 이상 법 테두리 밖에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전문가 책임 아래에서 질서 있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의 후속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부회장은 "이번 개정안은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에서 의약품 유통질서를 바로잡고 플랫폼의 무분별한 시장 개입을 차단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제도화 과정에서 남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하위법령 개정 과정에도 끝까지 참여해 국민의 안전한 의약품 사용과 약사의 전문성이 온전히 구현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