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난 우산나물: 향기 성분과 그 약리작용

경희대 약대 이용섭 교수 칼럼

2025-11-21     김응민 기자
경희대 약대 이용섭 교수

전원으로 이사 온 뒤 처음 맞이하는 봄. 도시의 소란 대신 창밖엔 산새 소리가 들리고, 마당 한편에는 벌써 이름 모를 들풀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집사람이 앞산에 한 번 올라가 보자고 하였다. 집 앞 개울을 건너 처음 오르는 산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산이어서인지 놀랄 만큼 조용했다.

산나물이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렸으나 눈에 띈 건 오직 산취뿐, 다른 산나물은 보이지 않았다. 살짝 실망스러울 즈음, 계곡 가장자리에서 문득 시선을 끄는 식물 하나를 발견했다. 마치 우산을 활짝 펼쳐 놓은 듯한 독특한 모양이어서 ‘우산나물’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식물도감도 찾아보고, 지인에게 사진을 보내 확인해 보니 그것은 분명 우산나물이었다. 며칠 뒤 다시 산을 찾았을 땐 계곡뿐 아니라 산허리 그늘진 곳에도 우산나물이 제법 많이 자라고 있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생약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도 산속에서 우산나물을 찾아낸 내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봄날 마당의 우산나물. 특이한 모습이 관상용으로도 훌륭해 보인다.

우산나물(Syneilesis palmata)은 국화과 우산나물속의 여러해살이풀로, ‘토아산(兔兒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는 ‘토끼가 비를 피할 만한 우산’이라는 뜻이다. 한방에서는 가을에 채취한 우산나물의 지상부와 뿌리를 몸의 습기를 제거하고(除濕), 관절염이나 근육통 등의 염증과 통증을 완화하며(消炎鎭痛), 혈액순환을 돕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반면, 봄에 채취한 어린 우산나물은 산나물로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어린잎은 독성이 없고 부드러워 날로도 섭취가 가능하며, 쌈이나 무침, 묵나물 등으로 다양하게 요리된다고 한다. 우리는 우산나물 몇 줄기를 꺾어 집으로 돌아와 바로 뜨거운 물에 데친 후 된장 쌈으로 먹어 보았다. 향은 두릅보다도 강렬하고 독특했다. 이후 무침으로도 먹어 보았는데, 그 맛이 참으로 일품이었다.

우산나물의 맛이 이렇게 독특한데 도대체 어떤 성분이 있어 이러한 맛을 낼까? 그리고 한방에서는 통증 완화, 혈액순환 등에 효과가 있다는데 어떤 성분에 기인할까?

궁금증이 생겼다. 최근에는 나물로 인기가 높다는데 아무리 독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반복해서 또는 많은 양을 한 번에 섭취해도 될지 우려 또한 일부 있었다.

보고에 의하면, 추출된 우산나물 정유(essential oil)에는 세스퀴테르펜(sesquiterpene) 계열 화합물로 스파츄레놀(spathulenol)의 함량이 22.33%로 가장 높았으며, 다음으로는 베타-카리오필렌(β-caryophyllene, 6.23%)과 저마크렌 D(germacrene D, 5.57%)의 순이었다[출처: 최향숙 등, 2013, 한국식품영양학회지].

세스퀴테르펜은 이소프렌(isoprene) 단위 세 개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15개의 탄소 원자로 구성된 테르페노이드(terpenoid) 계열 화합물이다. 이들은 대개 강한 향기를 지니며, 다양한 생리 활성을 나타내어 의약품 개발의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세스퀴테르펜의 대표적인 예로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이 있다.

따라서 우산나물의 독특한 향기는 주로 이들 정유 성분에 의해 발현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중 가장 함량이 높은 스파츄레놀은 항염증, 항산화,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향료 산업에서도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산나물에서 분리된 정유 성분들의 화학 구조

저마크렌 D는 산국, 감국과 같은 국화과 식물에서도 발견되는데, 스트레스·불안·불면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어 아로마테라피, 마사지 오일 등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다만 저마크렌 D가 일반적으로는 안전한 물질로 인식되지만, 일부에게는 피부나 호흡기에 자극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우산나물의 또 다른 정유 성분인 베타-카리오필렌(BCP)의 향기는 후추와 같이 약간 톡 쏘는 듯한 나무 향, 또는 흙냄새와 같은 향으로 묘사된다. BCP는 우산나물뿐만 아니라 후추, 바질, 오레가노, 로즈메리, 클로버 등에도 많이 존재하며, 향료 산업에서 츄잉검 향을 내는 데 사용된다.

약리작용으로는 항염증 및 항균 작용, 종양 억제 효과 등 다양한 약리 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BCP 역시 미국 FDA에 의해 일반적으로 안전한 물질(Generally Recognized as Safe, GRAS)로 지정되었으며 향을 내기 위한 식품첨가제로 사용하는 것이 승인되었다. 쥐에게 700 mg/kg의 양을 90일 동안 매일 투여하여도 어떤 심각한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연구자들이 β-카리오필렌(BCP)을 부쩍 많이 주목하는데, 그 이유는 이 화합물이 대마(햄프)의 정유에도 풍부하게 존재하며, 대마 오일의 다양한 약리 작용이 BCP의 작용에 일부 기인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대마의 주요 활성 성분으로 잘 알려진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etrahydrocannabinol, THC)은 통증 감소, 메스꺼움 치료, 식욕 증진 등에 효과가 있어 일부 제품은 미국 FDA로부터 의약품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THC는 중추신경계의 카나비노이드-1(CB-1) 수용체에 작용함으로써 중추신경계 독성, 환각, 중독성과 같은 부작용의 우려가 크다.

반면 카나비노이드-2(CB-2) 수용체는 주로 말초 조직과 immune 세포에 분포하며, 이 수용체가 활성화되면 항산화·항염증·면역조절·진통·신경 보호 등의 다양한 약리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BCP는 CB-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활성화(Ki = 155 nM)하면서 CB-1 수용체에는 거의 결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BCP의 CB-2 수용체 선택성은 테르펜류 화합물에서는 보기 드문 특성으로, BCP만의 독특한 작용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BCP는 중추신경계 부작용 없이도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뇌졸중 등 다양한 신경계 질환의 증상을 완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면역조절, 항염증, 신경병성 통증 완화 등 매우 광범위한 질환에서의 활용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

β-Caryophyllene의 잠재적인 의약적인 용도[출처: HM Hashiesh 등, 2021, Biomedicine & Pharmacotherapy]

한방에서는 우산나물의 전초 및 뿌리가 관절염이나 근육통 등으로 인한 염증 및 통증을 완화하는 데 사용되어 왔으며, 이러한 효능에 대해 현대 과학적으로 접근해 본다면 이 식물에 함유된 β-카리오필렌(BCP)의 작용이 일부 기여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BCP는 우산나물에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 존재하며, 지용성이 높아 세포막을 통과하는 데 유리할 수는 있지만 물에 대한 용해도가 낮아 동물 모델에서 경구 투여 시 낮은 생체이용률(bioavailability)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따라서 의약적 활용을 위해서는 BCP의 생체이용률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형 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까지는 BCP가 전반적으로 안전한 물질로 간주되고 있지만 그 대사 산물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제한적이며 임상시험을 통한 BCP의 효능 검증과 안전성 평가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이로움을 지닌 우산나물이지만, 모든 식물에는 저마다의 방어 논리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우산나물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그 숨겨진 얼굴에 대해 들여다볼 차례다.

글.이용섭 경희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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