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약물치료 안정성, 병원약사 참여로 완성"
-고령·다질환 환자 집중된 중환자실, 약물관리 전문성 절대적 -병원약사 전담 배치·팀의료 체계 강화 요구 확산
[팜뉴스=김응민 기자] 국내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중환자 치료에서 병원약사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의견이 지난 28년간 중환자실을 지켜온 '의사'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한국병원약사회가 지난 19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주최한 '의료전달체계 변화와 병원약사 역할 강화' 정책토론회에서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서지영 교수는 연자로 나서 중환자 분야에서 약사가 수행해온 역할과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 교수는 '중환자 치료의 질 향상을 위한 팀의료와 병원약사 참여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하며, 생명 유지가 분초 단위로 결정되는 중환자 진료 환경에서 약사 참여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을 다양한 근거와 현실적 경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생명은 마치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라고 표현했다. 서 교수는 "우리 몸은 산소 공급이 3분 이상 끊기면 뇌부터 손상되기 시작한다"라며 "중환자실은 그런 생명의 가장 취약한 순간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중환자실은 일반 병실과 달리 인력과 장비가 더 많이 필요하고 주요 장기 기능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생명유지 장치가 필수적이다. 환자의 작은 변화조차 치료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고도의 전문성도 요구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중환자실을 '죽기 직전에 거쳐가는 곳' 정도로 오해하거나 혹은 '마술처럼 죽어가는 환자가 회복되는 공간'으로 착각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실제 중환자실의 역할과 환자 안전의 본질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 교수는 한국의 중환자들이 노인성 질환 증가와 고령화로 인해 더욱 취약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령 환자는 복잡한 기저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주요 장기 기능 저하로 인해 약물대사가 크게 흔들려 표준 용량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설명이다.
서 교수는 "중환자는 작은 투약 오류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라며 "약물 선택, 용량 조정, 투여 간격, 상호작용 등 어느 한 단계라도 잘못되면 환자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다약제 치료가 기본이 되는 중환자 진료에서는 약물 상호작용을 고려한 투약 조정이 필수"라며 "이 과정은 임상의사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전문적 판단 범위에 속한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국내 중환자실의 경우 오랜 기간 구조적 문제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중환자실의 경우, 지난 1980년대 초반까지 일반 병실과 동일한 입원료 체계가 유지됐고, 2008년에 들어서야 중환자실 간호관리료가 도입됐다. 의료법에 최소 병상 및 시설 기준이 명시된 것은 2009년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선진국 대비 인력과 장비, 공간, 시스템 등이 모두 크게 뒤처져 있다. 중환자 진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력(Staff), 장비(Stuff), 공간(Space), 시스템(System) 등의 4가지 요소가 제시됐으며, 이것들이 작동해야 생명 유지의 가장 취약한 순간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 교수는 "앞서의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중환자 진료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라며 "특히 한국 의료체계에서 임상약사가 중환자실 팀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중환자 치료에서 다학제 협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배경이다.
중환자실 의료진은 전담전문의, 타 분야 전문의, 전공의·수련의 등 의사 인력뿐 아니라 담당간호사·전담간호사·전문간호사, 임상영양사, 물리치료사, 완화의료팀 등 다양한 직역이 참여해야 하며, 특히 그중에서 병원약사는 약물치료의 안전성과 효과를 확보하는 핵심 직역임을 강조했다.
특히 중환자실에서의 병원약사 참여는 약물 부작용을 현저히 감소시키고 입원 기간을 단축하며, 환자 사망률을 22% 이상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약사가 투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조기에 차단하고, 환자의 장기 기능 변화에 따라 즉시 용량 조정이나 치료 계획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이것은 단순한 업무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해외의 약사 참여 제도는 더 명확하다. 미국은 중환자실 Best Practice Model을 구축해 중환자실 특화 약제 서비스와 자문이 당연히 제공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유럽은 정상 근무시간에는 언제든 중환자실에서 약사 자문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은 더 구체적으로 중환자실 침상 수 대비 상근 약사 비율을 규정하고 있으며, 모든 중환자실에 지정 약사가 의무 배치돼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중환자실 약사 배치 기준이나 수가가 존재하지 않아 병원의 자율적 운영에 맡겨져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중환자 치료의 구조적 취약성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끝으로 서 교수는 "중환자 치료는 한 사람의 역량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라며 "병원약사의 참여는 환자의 최적 치료결과를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