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K-톡신 신뢰 흔든 택갈이 수출
보툴리눔 톡신 업계가 또다시 신뢰 위기에 휩싸였다. 한 국내 톡신 제조업체가 자사 제품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경쟁사 브랜드 라벨을 무단으로 붙여 수출한 혐의로 검찰 압수수색을 받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기저기서 자조섞인 한탄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관리 체계의 허점을 파고든 구조적 문제라고 본다.
약사법은 의약품의 표시·기재를 임의로 변경하거나 허가명칭을 조작하는 행위를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택갈이’ 행위는 제조·수입업 허가 취소,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대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단속보다 편법이 앞서는 산업 구조의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라벨 교체가 직접 수출 과정에서 이뤄졌는지, 혹은 외부 무역대행 업체가 개입했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책임 주체가 불분명하면 제도적 허점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선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또 다른 톡신 업체가 유사한 방식으로 제품을 해외에 공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엔 명확한 물증 부족으로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제도는 있었지만 관리·감독은 허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툴리눔 톡신은 인체에 직접 주입되는 의약품이다. 제조 이력과 유통 경로의 투명성이 생명인데, 브랜드 라벨을 바꾸는 것은 단순한 상표 문제를 넘어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관리 사각’에 있다고 지적한다. 의약품 수출 구조에서 ‘직접 수출’과 ‘대행 수출’의 책임 구분이 불분명하고, 통관 과정에서도 실물 검증 절차가 사실상 형식에 그친다는 것이다.
통관서류만으로는 실제품의 진위를 판별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꼽힌다. 수출신고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실제 포장이나 라벨이 현장 단계에서 바뀌면 행정 시스템으로는 포착이 어렵다.
업계에서는 QR코드 기반의 이력추적 시스템 확대와 대행 수출업체에 대한 명시적 감독권 부여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누가 책임지는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기업 일탈이 아니라 산업 신뢰를 뒤흔드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불법 라벨링을 근절하지 못하면, 한국 톡신의 글로벌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K-톡신’의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관리 사각을 메우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산업의 미래를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