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독에서 비만약 위고비까지

서울대 약대 김영식 명예교수 칼럼

2025-09-29     김응민 기자
서울대 약대 김영식 명예교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비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이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불과 2년 전 이야기다.

WHO는 비만이 각종 암과 심혈관질환, 제2형 당뇨병 등의 발병 위험을 높이고 새로운 암 발생의 직접적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비만도 약으로 치료하는 시대가 온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명사들의 체중이 줄어든 모습이 TV나 언론 매체에 나오면서 비결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바로 위고비라는 비만약을 투여한 결과라는 사실이 간간히 보도되었다. 위고비는 상표명으로 일반명은 세마글루타이드이다.

원래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오젬픽이라는 상표명으로 개발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간 복용하는 환자 중 체중이 감소하는 현상이 관찰되면서 용량을 증가시켜 비만약으로도 허가를 받았다.  

1983년 그래함 벨이 햄스터 프리프로글루카곤의 유전자를 클로닝하여 인슐린에 대해 길항작용을 하는 글루카곤 외에도 다른 유전자가 들어 있음을 발견하고 글루카곤-유사 펩타이드-1과 펩타이드-2(glucagon-like peptide-1 및 -2, GLP-1 및 GLP-2)라고 명명하였다.

특히 GLP-1이 인슐린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GLP-1의 확장된 형태인 GLP-1(아미노산 서열 1-37)이 활성 호르몬으로 제안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미노산 서열 1번에서 6번이 제거된 GLP-1(7-37)과 GLP-1(7-36)아미드로 활성화가 이루어져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이 1987년 보스턴의 조엘 하베너와 코펜하겐의 옌스 율 홀스트 연구팀에 의해 동시에 밝혀졌다.  

중요한 발견은, 사람의 GLP-1은 혈당이 높을 때 인슐린을 더 많이 만들도록 도와주지만 혈당이 낮을 때는 인슐린의 분비를 낮춰 저혈당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역할로 인슐린 길항 호르몬인 글루카곤의 억제 효과를 통해 간에서 포도당 생성을 낮춤으로써 강력한 당뇨치료제 후보로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GLP-1은 당뇨치료제로서 가능성이 있지만 생체 내에서 반감기가 불과 2~3분이라 의약품으로서 가치가 매우 낮았다. 반감기가 짧은 가장 큰 원인은 디펩티딜-4(DPP-4) 효소에 의해 GLP-1의 아미노산 8번 알라닌과 9번 글루탐산의 결합이 분해되어 활성이 급격히 소실되는 것이다.

이에 착안하여 DPP-4 억제제가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되어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덴마크의 노보 노르디스크 생명공학 회사는 하베너 그룹의 특허를 이양받아 GLP-1 수용체 작용제를 개발하고자 하였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여기에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질라 몬스터(Gila monster, Heloderma suspectum)라는 북아메리카 도마뱀의 침샘에서 분리한 GLP-1 유사 펩타이드이다. 이 유사 펩타이드가 GLP-1 수용체 작용제로서의 출발을 예고하였다.  

질라 몬스터는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북서부 사막에 사는 토종 도마뱀으로 꼬리를 포함해 최대 56cm이며 무겁고 느리게 움직이는 파충류로서 유일한 독이 있는 도마뱀이다. 독이 있지만 본성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위험하지 않으며 인간에게 실제 위협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출처: 위키피디아  

1980년대 초, 장-피에르 라우프만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며 다양한 동물의 독을 연구하여 인체 생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찾는 데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라우프만은 질라 몬스터 도마뱀이 주로 봄에 자기 몸보다 큰 먹이를 3~4회 섭취하며 1년을 지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도마뱀의 침에서 염증을 유발하는 분자를 발견하였다.  

라우프만의 연구내용은 뉴욕시 재향군인회 의료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많은 당뇨 환자를 치료해온 의사이자 내분비학자인 존 엥의 관심을 끌었다. 엥 박사는 방사면역측정법을 이용하여 1990년과 1992년에 엑센딘-3과 -4를 분리하였다.

엑센딘-4는 도마뱀의 침샘에서만 발견되는 펩타이드이지만 인간 GLP-1과 아미노산 서열이 54% 같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그 응용 연구가 진행되었다. 엑센딘-4는 GLP-1 수용체와 결합하며 그 결과로 당뇨병 마우스에서 혈당 저하 효과를 나타내었다.

인간 GLP-1의 짧은 반감기로 인해 약물로 전환 시도가 실패했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발견이었기에 GLP-1 연구에 또 다른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엥이 일하고 있던 재향군인회는 엑센딘-4에 대한 약물 특허 취득에 관심이 없어, 그는 1993년에 직접 특허를 출원했다. 그 후 엥은 3년간 제약 업계를 설득하여 엑센딘-4를 약물로 개발하도록 노력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199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당뇨병 학회 학술대회에서 엥의 연구내용이 마침내 규모가 작은 아밀린 생명공학 회사의 생리학 부서 책임자인 앤드루 영의 관심을 끌었다. 영은 엑센딘-4의 잠재력을 즉시 알아차리고 회사가 엥의 특허에 대한 권리를 인수하게 하여 엑센딘-4의 합성유도체인 엑세나타이드를 개발했다.

아밀린은 소규모 회사이기 때문에 자금과 전문성이 부족해 거대 제약회사인 일라이 릴리와 업무 제휴를 하게 되었다. 2005년 엑세나타이드는 신약으로 허가를 받아 바이에타라는 상품명으로 발매되었다. 인슐린 자극과 글루카곤 분비 억제를 통해 공복 및 식후 포도당을 감소시키고 위 내용물의 배출을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엑센딘-4는 GLP-1과 아미노산이 54% 유사하고 GLP-1 펩타이드의 8번 아미노산 알라닌이 글리신으로 치환된 점은 이 분야를 연구하는 그룹에 커다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DPP-4 효소에 의해 분해되지 않음에도 반감기가 2.4시간으로 하루에 2회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GLP-1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바이에타가 허가를 받기 전부터 GLP-1 수용체 작용제에 관한 연구를 해오던 덴마크의 노보 노르디스크는 엑세나타이드에서 영감을 받아 리라글루타이드라는 GLP-1 수용체 작용제를 개발하였다. 이 약의 체내 반감기가 13시간으로 증가하면서 하루 1회 주사가 가능해졌다.

이후 개발된 세마글루타이드는 반감기가 160시간으로 증가하여 1주일 1회 주사로 약효 지속이 충분했다. 노보 노르디스크는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탈바꿈하면서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된 오젬픽(세마글루타이드 0.25, 0.5, 1 mg, 최대용량 1.34 mg)은 2024년 약 81억 달러(약 11조 3천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비만 치료제로 허가된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0.25~2.4 mg, 단계적 증량)는 167억 달러(약 23조 4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두 치료제가 차지한 매출 규모로 덴마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일라이 릴리 역시 동종 계열의 신약 개발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블록버스터 약물 티르제파타이드는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제약회사로 변화시켰다. 티르제파타이드는 2030년까지 연간 매출이 620억 달러(약 86조 8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자의 순간적인 본능적 판단으로 얻어진 결과는 인류의 질병 치료에 커다란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부의 창출로 이어졌다.  

글. 서울대 약대 김영식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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