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 복용 경고, 지금도 무방비한 대한민국”
“자폐 위험 높인다” VS “연관성 없다” 해외 연구도 갑론을박 약국 문턱 넘은 ‘국민 해열제’ 12년, 안전망 재검토 목소리 커져
미국 현지 시간 2025년 9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 AAP)을 복용하면 태어날 자녀에서 자폐증 발병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님에도 오늘(23일) 아침 대한민국의 의약 뉴스라인을 달구고 있다. 상품명 ‘타이레놀’로 널리 알려진 아세트아미노펜은 경증부터 중등도의 통증을 완화하고 발열을 해소하는 데 사용되는 의약품이다. 개정 ‘약사법 제44조’에 근거해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에 관한 고시’가 2012년 11월 15일에 시행됨에 따라 일반의약품 중 주로 가벼운 증상에 환자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 13개 품목이 지정돼 약국 이외의 장소 즉, 편의점 등에서 약사의 복약지도 없이 판매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의약품이 타이레놀이다. 물론 타이레놀은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판매되는 대표적인 일반의약품(over-the-counter, OTC)이다.
타이레놀은 1982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존슨엔존슨(Johnson & Johnson, J&J)이 생산·판매하던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FDA는 즉각, 시카고 지역의 타이레놀에 대해 리콜을 명령했고, J&J도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광고를 통해 “원인이 완전히 규명될 때까지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는 자체 소비자 경고를 발령했다. J&J는 제조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는 한편 시카고뿐만 아니라 미국 내 모든 제품을 수거해 회사 매출액의 5% 이상인 2억 4천만 달러를 들여 약 3,100만 병의 제품을 폐기 처분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임원들도 언론에 나와 사고 발생에 대해 사과하고 소비자 이해를 호소했다. 사고에 대한 조사결과, 정신병자가 시카고에서 판매되는 타이레놀에 청산가리(시안화칼륨)를 집어넣는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35% 수준이던 타이레놀의 미국 내 진통·해열제 OTC 시장의 점유율이 사건 발생 이후 8%대까지 떨어졌지만, 회사의 적절하고 발 빠른 대처로 신뢰도가 더 높아져서 타이레놀은 이듬해 다시 시장 점유율 1위로 복귀했고, 1985년 1억 3천만 달러의 영업 이익을 달성해 회사 전체 이익의 20%를 넘었다. 이는 ‘리스크-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AAP)을 복용한 산모에서 태어난 자녀의 자폐증 발병 위험 증가”에 관한 사실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사람 대상 코호트 연구와 동물 대상 발달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s) 연구에서 산모의 AAP 복용과 자녀의 발달장애(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언어 발달 저하 등)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들이 제시됐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의 Andrea A. Baccarelli 박사 연구팀이 지난 8월 14일에 연구 결과(Evaluation of the evidence on acetaminophen use and neurodevelopmental disorders using the Navigation Guide methodology)를 Environmental Health 24: 56에 발표했다. 그들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한 46건의 관련 연구를 분석했는데, 이 중 27건의 연구는 산모의 AAP 복용과 자녀의 발달장애 발병 위험의 증가 사이에 긍정적 연관성(신경발달장애/NDD와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고했고, 9건은 무연관(유의미한 연관성 없음), 4건은 부정적 연관성(보호 효과)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태아기 AAP 노출과 ADHD, ASD 또는 NDD 간의 긍정적 연관성을 보고했으며, 연구의 질이 높을수록 긍정적 연관성을 보일 가능성이 더 증가했다. 결론에서 Baccarelli 박사는 내비게이션 가이드를 활용한 분석은 임신 중 AAP 노출과 NDD 발생률 증가 사이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므로 태아의 신경 발달을 보호하기 위해 임산부에게 AAP 복용을 제한하도록 권고하는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의 Viktor H. Ahlqvist 박사 등도 2024년 1월에 연구 결과(Acetaminophen Use During Pregnancy and Children’s Risk of Autism, ADHD, and Intellectual Disability)를 JAMA. 331: 14에 발표했다. 조사 대상 2,480,797명 중 총 185,909명의 아동(7.49%)이 임신 중 AAP에 노출됐다. 이들을 대상으로 10세 시점에 신경 발달 위험도를 평가했다. 자폐증의 경우 1.33%(AAP 비노출) 대 1.53%(노출), ADHD의 경우 2.46% 대 2.87%, 지적 장애의 경우 0.70% 대 0.82%였다. 형제자매 구분 없는 모델에서 임신 중 AAP 노출 경우와 비노출 경우의 차이는 자폐증 위해율(hazard ratio, HR)이 1.05[95% CI, 1.02-1.08], 10세 때 위험 차이(risk difference, RD)가 0.09%[95% CI, -0.01%~0.20%]였고, ADHD의 HR이 1.07[95% CI, 1.05-1.10], RD가 0.21%[95% CI, 0.08%~0.34%], 지적 장애의 HR이 1.05[95% CI, 1.00-1.10], RD가 0.04%[95% CI, -0.04%~0.12%])로 임신 중 AAP 노출이 NDD 발생 위험을 약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란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친형제 자매 쌍을 구분하여 비교·분석했다. 형제자매 대조 분석에서는 임신 중 AAP 노출에 따른 자폐증의 HR이 0.98[95% CI, 0.93-1.04], RD가 0.02%[95% CI, -0.14%~0.18%], ADHD의 HR이 0.98[95% CI, 0.94-1.02], RD가 -0.02%[95% CI, -0.21%~0.15%], 지적 장애의 HR이 1.01[95% CI, 0.92-1.10], RD가 0%[95% CI, -0.10%~0.13%]로 임신 중 AAP 노출과 NDD 발병 위험 사이에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제도’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도 (사)대한약사회는 AAP의 간 독성과 임산부 복용 시 그 자녀의 신경발달장애 발병 위험 증가 등의 위해 효과를 근거로 AAP는 약사의 복약지도가 꼭 필요한 의약품임을 주장했지만, 그 주장은 직역의 이기주의로 치부되고 결국 타이레놀 4품목은 약국 외 즉, 편이점 등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됐다. 타이레놀 외에, 안전상비의약품인 ‘판콜에이내복액’과 ‘판피린티정’에도 AAP 300mg이 들어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임산부가 약국 외에서 구매한 AAP 성분 함유 의약품의 복용과 그 자녀의 신경발달장애 발병률 변화 간의 연관성을 추적한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AAP의 위해 효과는 변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에서 AAP는 여전히 안전상비약이다. 다른 점은 2012년에 비해 현재는 AAP 복용에 따른 위해 효과에 관한 근거들이 더 많이 축적됐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국민의 의약품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해독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지만, 전문가 수준이라 할 수 없다.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나면 별생각 없이 타이레놀을 복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보건 시스템에서 안전을 위한 노력과 비용이 종종 무시 되지만 안전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정부가 하든 J&J가 하든, Baccarelli 박사의 주장처럼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도 우리가 AAP을 복약지도 또는 복약 안내 없이 복용하는 사회를 안전하다고 볼 수 있을까?
글. 청론보건연구소 정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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