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없어도 고혈압·당뇨 관리는 세계 최고… ‘K-일차의료’의 재발견

언제든 전문의 만나는 한국식 모델, 비용 대비 효율성 OECD도 인정 의협 “외국 주치의 제도 섣부른 도입보다 한국형 모델 강화해야”

2025-09-22     우정민 기자
게티이미지 뱅크

[팜뉴스=우정민 기자] 한국은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엄격한 주치의 제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혈압과 당뇨병 관리에서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주요국의 일차의료 정책 최신 동향’ 보고서는 외국 제도를 무분별하게 옮겨오기보다, 한국 의료의 특성을 살린 ‘한국형 일차의료’ 모델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의 만성질환 관리 수준을 상세히 짚었다. 고혈압 환자 10명 중 7명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53%)은 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WHO는 이 같은 결과를 근거로 한국을 캐나다와 함께 ‘모범 국가’로 평가했다. 당뇨병 관리 역시 돋보였다. 세계보건과학자네트워크(NCD-RisC)는 한국을 “당뇨병 치료 보장률이 크게 개선된 국가”로 평가했다. 또한 합병증으로 인한 하지 절단율은 202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6명으로, 아이슬란드(0.6명)와 이탈리아(2.5명)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아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성과 뒤에 환자가 필요할 때 전문의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의료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의 1인당 연간 의사 대면 진료 횟수는 15.7건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돌았으며, 비용 부담으로 진료를 포기하는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이로써 기대수명(82.7세), 영유아 사망률(1000명당 2.3명), 회피가능 사망률 등 주요 지표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저비용 고효율’ 체계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긍정적 지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예방가능 입원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를 곧바로 일차의료가 부족하다는 증거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예방가능 입원율은 적절한 외래 진료나 꾸준한 관리가 이뤄졌다면 입원하지 않아도 됐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질병을 분류하고 기록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와 달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고, 병상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입원비가 저렴한 구조적 요인도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세계 주요국은 고령화와 만성질환에 대응하기 위해 일차의료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국은 의료와 복지를 연계한 ‘통합의료체계(ICS)’를 도입하고, 여러 일반의(GP)가 협력하는 ‘일차진료 네트워크(PCN)’를 운영 중이다. 캐나다는 팀 기반 진료와 인두제를 결합해 환자 중심 관리에 나서고 있으며, 프랑스는 ‘성과연동지불제(P4Q)’와 ‘지역 전문 건강 커뮤니티(CPTS)’를 통해 진료의 연속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수가체계를 정교하게 운영해 재택의료를 확산시키며, 고령자가 생활하는 지역에서 돌봄과 의료를 함께 제공하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정착시켰다.

보고서는 한국 일차의료가 이미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입증됐음을 확인하며, 최근 정부 의료개혁이 병원 기능 개편에 치중하면서 정작 일차의료 정책은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의 주치의 제도를 성급히 도입하기보다는 한국 현실에 맞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현재 시행 중인 만성질환 관리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역할을 넓히고, 지역 의료기관 간의 연계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역의사회 등 공급자가 자율적으로 다양한 모델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이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