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병원’ 옆 약국 팔았다가 권리금 70% 물어내

경찰 압수수색 보고도 “수사 몰랐다” 버틴 약사, 법원 ‘부작위 기망’ 인정 재판부 “권리금은 10년 이용 대가” 실제 영업 3년치 차액금 반환 판결

2025-09-23     우정민 기자
게티이미지 뱅크

[팜뉴스=우정민 기자] 약국 인수 과정에서 핵심 수익원이던 인접 병원이 형사 수사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양도 계약을 맺은 사건에서 법원이 권리금 일부 반환을 명령했다. 전주지방법원은 지난 12일 약국을 넘긴 D씨가 중요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상대방을 속인 것과 같다고 보고, 권리금의 일정 부분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2023가단2*592).

우리나라 의약분업 체제에서 약국 매출은 인근 병원의 처방전에 크게 의존한다. 이 때문에 약국을 인수하는 약사들에게 해당 병원의 운영 상태는 권리금 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병원의 폐업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수사 사실을 알고도 이를 알리지 않은 행위는 신의성실 원칙에 따른 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자 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202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D씨가 운영하던 H약국을 권리금 1억2,000만 원에 인수했다. 문제는 해당 약국이 옆 건물 G의원의 처방전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주변에 다른 병원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계약 당시 A씨는 G의원 운영자 F씨가 2019년 6월부터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으며, 그해 6월 10일 경찰이 G의원을 압수수색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A씨가 약국을 인수한 뒤 F씨는 2020년 10월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고, 2022년 11월 30일 결국 의원을 폐업했다. 수익 기반이 사라지자 A씨는 권리금 반환을 요구했으나 D씨가 이를 거절했다. 협의가 무산되자 A씨는 결국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A씨는 D씨가 의료법 위반 수사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숨겼다고 주장하며, 계약을 취소하고 권리금 전액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D씨는 수사 사실을 몰랐다고 반박하며, A씨가 2년 이상 약국을 정상 운영했으니 책임이 제한돼야 한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D씨가 F씨의 의료법 위반 수사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A씨가 이를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D씨가 과거 F씨의 처방전을 바탕으로 구치소 수감자에게 의약품을 택배로 발송한 전력이 있어 비정상적인 진료 행태를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또 약국 인근에서 진행된 경찰의 압수수색을 직접 목격했을 개연성이 있고, 권리금을 잃지 않기 위해 형사처벌 가능성을 의식하며 약국을 서둘러 처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권리금 전액 반환은 인정하지 않았다. 권리금은 통상 10년간의 영업 보장을 전제로 산정되는데, 실제로 A씨가 약국을 3년간 운영한 점을 고려해 그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은 이미 소진된 것으로 봤다. 따라서 D씨는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권리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약국과 같은 영업시설 권리금 거래에서 양도인이 불리한 정보를 숨길 경우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특히 특정 병원에 크게 의존하는 약국에서는 병원의 운영 상태가 거래 과정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