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나, 그 속에 버킷리스트”

이충우 교수의 실버 마이닝(Silver mining) 시리즈

2025-08-11     김응민 기자
숙명여자대학교 이충우 교수

8월의 ‘바람’이 붑니다. 여름철 도시의 바람은 뜨겁고 따갑습니다. 마치 하늘 위에서 거대한 폭탄이 터진 듯한 열기에 온몸이 아려옵니다. 그럴수록 거대한 빙하 같은 구름이 떠 있는 저 수평선 너머, 시원한 바람을 더욱 간절히 그려 봅니다. 어쩌면 그리움은 무엇을 그린다는 그림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흔히 일상에서 또 다른 ‘바람’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요즘 명동 가봤어?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도 없더라, 헌트릭스 골든 최고야! 세계를 휩쓰는 케이팝 바람은 얼마나 더 갈까, 실버 스포츠로 파크골프가 인기몰이라던데.” 이 말들 속의 바람은 도대체 어디에서 부는 바람일까요?

문득 광고대행사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브랜드 전략 업무를 담당했던 저는 캠페인을 기획할 때마다 늘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브랜드 캠페인에 관한 생각의 틀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제품(product), 고객(target), 바람(trend)입니다. 여기서 바람은 유행(流行)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캠페인의 목표는 어떻게 브랜드의 바람을 일으킬 것인가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불어오는 그 바람,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이루고 싶은 ‘바람’ 또한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람은 욕망에 가깝습니다. 욕망은 마치 나침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침반이 있어야 가야 할 곳, 그래야 다음에 정박해야 할 항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나침반 없이 항해한다는 것은 목적지 없이 표류하는 난파선과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욕망이라면, 인생 후반기의 실버층에게 욕망은 남은 생을 어떻게 쓰고 싶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주도의 삶을 의미합니다. 자기 주도는 자아가 지닌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의 세 가지 욕구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본질적이고 내적인 동기로 작용합니다.

노인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Laura Carstensen)은 사회정서적 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에서 욕망은 단순히 결핍을 채우는 충동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내적 에너지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노년기의 욕망은 생존과 성취 중심이었던 젊은 시절의 욕망과는 다르게, 좋은 일에만 집중하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한다고 하였습니다. 버킷리스트가 이를 예증합니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단어는 죽음(kick the bucket)과 해야 할 일(to-do list)을 결합한 표현입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을 뜻하지만, 노년기에 접어들면 그것은 단순한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선언이 됩니다.

왜냐하면 생의 유한함은 죽음에 가까워짐을 생각하게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버킷리스트는 하고 싶은 일(욕망)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자기 주도)하게 함으로써 노년기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와 동력을 만들어냅니다.

악기와 외국어 배우기, 자서전 써보기, 자화상 그려 보기, 대학원 진학하기, 오로라에 취해 보기, 친밀한 사람들과 여행하기, 장학금 기부하기, 어릴 적 살던 곳 방문하기, 사랑하는 스타의 공연과 콘서트 즐기기, 자원봉사 활동하기 등에서처럼 버킷리스트는 개인별로 다양한 욕망의 스펙트럼으로 나타납니다.

게티이미지

요약해 보면, 앞서 언급한 세 개의 자기 주도 욕구로 유형을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율성 기반 욕망으로 지적 호기심에 따른 ‘배움과 숙련’의 욕구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의 습득, 즉 악기 배우기, 외국어 공부, 대학원 진학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유능감 기반 욕망으로 긍정적 정서 선호에 따른 ‘모험과 경이’의 욕구입니다. 공연·스포츠·콘서트 관람, 오로라 투어, 성지 순례 등이 속합니다.

세 번째는 관계성 기반 욕망으로 미해결 감정의 해소와 삶의 통합을 위한 ‘회복과 기여’의 욕구입니다. 대표적으로 은인·옛 친구 재회, 자원봉사, 장학금 기부, 회고록 집필, 친밀한 사람과의 여행 등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 50대이시거나 그 경계의 앞뒤에 계신다면, 여러분만의 버킷리스트를 꼭 작성하십시오. 버킷리스트는 현재의 단순 충동 욕구가 아닌, 남은 생의 소중함을 염두에 둔 자기 주도의 마지막 선택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마치 사후 묘비명에 새길 문구를 결정하듯, 절체절명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에 남길 여러분만의 정체성(identity)을 한 줄 한 줄 써보세요. 그다음 욕망의 나침반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자기 주도 측면에서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에 의한 욕구를 균형감 있게 차근차근 실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달, 고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의 인내를 위로해 준 헤비메탈의 마왕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이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주, 33세의 손흥민 선수가 미국 LA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영국의 북런던을 떠났습니다.

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이제 실현 불가능해졌고, 또 다른 하나는 목적지를 새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글.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이충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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