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해지 통보’에 법원 제동…“정기검진·경미 질환은 고지 대상 아냐”

법원 계약 전 알릴 의무 해석 기준 제시…진료 예약과 피부질환 투약은 ‘중요한 사항’에 해당 안 돼 재판부, 고지 의무 ‘질병 의심 소견’ 범위 명확화... 서면 미교부된 정기검진 기록은 해당 안 돼

2025-07-17     우정민 기자
게티이미지 뱅크

[팜뉴스=우정민 기자] 법원이 건강검진 예약과 경미한 질환 치료 이력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한 보험사의 조치에 제동을 걸었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제2민사부는 지난달 12일, 보험계약자 A씨가 B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계약 해지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며, 해당 해지 통보는 무효라고 판결했다(2024가합7*44).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확인된 의학적 소견이나 보험계약의 주요 보장 범위와 관련이 없는 경미한 질환의 치료 이력은 고지 의무 대상인 '중요한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A씨는 2023년 10월 B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상해사망과 상해후유장해를 주계약으로, 뇌혈관질환과 심혈관질환, 질병수술 등을 보장하는 특약이 포함돼 있다. 계약 체결 하루 전, A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정한 정기 건강검진을 위해 C병원을 방문해 위 내시경과 폐 검사를 예약하고 진료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진료기록에는 위염, 위이형성증, 역류성식도염, 상세불명의 기침 등의 소견이 기재됐다. 그러나 A씨는 보험 청약서에 해당 항목들을 '아니오'로 표시했다.

이후 2023년 12월, A씨는 상세불명의 위의 악성신생물(위암) 진단을 받았고, 2024년 1월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보험사는 2024년 2월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A씨가 보험계약 체결 전에 병원을 방문해 건강검진을 예약하고 의학적 소견을 받았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또,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으로 14차례 통원하며 30일 이상 약물 처방을 받았지만 해당 사실 역시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에 대해 정기검진은 국가가 지정한 절차에 따른 것이며, 질병 의심에 따른 자발적 내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의사로부터 질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서를 서면이나 전자문서로 받은 사실이 없어 청약서상 '질병의심소견'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의 경우도, 해당 질환은 보험계약의 주요 보장 범위와 거리가 있으며, 보험금 지급과 무관한 경미한 질환에 해당해 보험사에 고지해야 할 중요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상법 제651조와 제651조의2의 법리에 따라, 보험계약 체결 전 알릴 의무는 보험자가 계약 여부나 보험료 산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으로 한정된다고 판시했다. 또한 청약서상 '질병의심소견'은 단순 진료기록에 기재된 내용이 아니라, 의사가 진단서나 소견서, 진료의뢰서 등 문서로 교부한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A씨가 10월 30일 진료 당시 해당 소견을 문서 형태로 교부받지 않았고, 계약 이후인 2024년 1월 22일 진료기록을 일괄 발급받아 그 내용을 확인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 같은 사정은 당시 고지 의무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 치료 이력에 대해서도 보험계약의 보장 대상인 중증 질환과는 관련이 없으며, 보험금 지급 제외 항목에 포함된 경미한 질환 또는 이에 준하는 질환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보험사가 주장한 해지 사유는 모두 기각됐고, 계약 해지의 효력은 부정됐다.

재판부는 A씨가 고지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보험사가 통보한 보험계약 해지는 효력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은 고지 의무의 적용 범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사례로, 정기검진과 경미한 질환에 대한 고지가 보험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