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 스며든 COPD "후회는 늦다", 1조4000억 쓰고도 사망률 6위
한 달 약값 150만원 치료제, 2주 간격 계속 쓰는 현실 "1회 입원 순수 의료비 260만원, 부가 비용 더 부담 커 생물학적제제, 추가 입원 횟수 줄여 비용 효과적"
[팜뉴스=김민건 기자]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룩셈부르크 모두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한국보다 낮은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한국에선 불가능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치료에 생물학적제제 급여를 적용해 사용하고 있다.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어르신 숨 쉴 권리 보장을 위한 COPD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전 세계 사망 원인 3위를 차지하는 중증호흡기질환으로 폐암, 고혈압, 당뇨에 이어 비감염성 4대 질환 중 하나로 주목하는 COPD가 국내에선 진단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가장 큰 문제는 COPD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역학조사에서 40대 인구 이상에서 매년 400만 명이 겪는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 진료를 받는 경우는 단 5%(20만 명)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한다. 제대로 된 진단이 되지 않고 있다.
COPD에 의한 질환 발생은 한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선 COPD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폐암보다 크다고 본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유광하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사장은 "한국은 매년 COPD 치료와 관련한 의료비로 1조4000억원을 쓰고 있지만 사망률은 6위에 올라있다"며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넘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COPD는 환경 문제와 직결돼 환자가 더욱 늘 것이다"고 경고했다.
COPD 치료에 소요되는 1인당 경제적 부담은 허혈성심질환(3배), 당뇨(5.5배), 천식(6배)과 비교해 훨씬 높다. 특히 보호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적지 않다. 간호 비용이 치료와 관련된 경제적 부담 중 30%를 차지한다. 중증일수록 보호자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 비용이 더욱 늘어난다. 뇌졸중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규모와 비슷하다.
또 다른 문제는 COPD 저위험군에서 고위험군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현재로선 뚜렷하게 없다. 정책토론회가 열린 배경이다. COPD 고위험군에서 치료 접근성을 확보함으로써 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료 현장 목소리가 국회에 울린 이유다.
만성 호흡기 질환인 COPD는 숨차는 증상이 대표적이며 기침이나 가래가 지속적으로 생긴다. 특히 비가역적으로 한 번 폐 기능 손상을 입은 환자는 절대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의료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큰 무서움이다.
이날 최준영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정책토론회에서 "폐 기능이 50% 이하로 손실되기 전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발견한 이후에는 증상이 계속 악화하면서 어떤 약물 치료로도 폐 기능의 원상 복구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중증 COPD 환자는 산소요법을 통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폐기능은 다시 회복되지 않기에 조기 진단으로 병이 악화하는 것을 막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국내 환자 10명 중 9명은 60대 이상 고령이기에 앞으로 질병 부담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며 "60세 인구 4명 중 1명에서 유병할 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질병 부담이 높다"고 걱정했다.
최 교수의 걱정은 "100명의 환자가 있다면 단 2.3명만 유병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환자라는 사실을 알아도 치료를 받는 것은 절반 정도(1.2%)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최 교수는 "40대 환자도 있지만 거의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며 현실을 되짚었다.
COPD 질환 인지도가 낮은 데다 비가역적 질환 특성상 병을 알고난 뒤 후회는 늦다는 것이다. 폐 기능 검사로 COPD 확진은 물론 치료와 중증도를 평가해야 하는데 관련 검사를 구비하지 않은 의료기관이 많은 것도 대한민국 COPD 치료 현실이다.
▶효과적인 예방 치료는 생물학적제제 사용, 한 달 약값만 150만원
COPD는 완치 불가능한 병이다. 현실적인 치료 목표는 증상을 완화해 더 이상 악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진국 서울성모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날 "악화를 예방함으로써 사망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COPD 급성 악화를 겪은 환자는 호흡 곤란과 발작으로 산소를 공급받지 않으면 제대로 숨쉴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급성 악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경우 응급실에 오는 길에도 사망할 수 있다"며 "급성 악화 이후 치료를 받고 퇴원하더라도 평생 산소호흡기를 써야 하며 밖에 나갈 수 조차 없을 만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고 했다.
외국에서 4년간 COPD 환자를 추적관찰한 자료에 따르면 1년에 40cc 정도의 폐 기능 감소가 급성 악화 환자에서 나타났다. 이 교수는 "5년간 40cc의 폐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종이컵만한 크기로 숨 쉴 수 있는 용적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폐 기능이 감소한 환자는 입원과 치료를 반복하면서 결국 사망한다. 악화를 경험하지 않은 경우 20%가, 악화를 경험한 환자는 30%가 사망한다. 악화한 환자에서 사망 위험은 많게는 4.3배 이상 증가한다.
현재 국내에서 COPD 환자는 약 300만 명으로 예상한다. 고위험군은 20만 명으로 추정하며 이 가운데 급성 악화를 반복적으로 겪어 외출조차 쉽지 않은 고위험군은 9만~10만 명 수준이다.
이 교수는 "9만~10만 명의 고위험군 환자 대부분 사망하기 때문에 저위험군부터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 고위험으로 진행한다"며 "고위험군에서 많은 의료비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5~2018년 COPD 환자가 1회 입원할 때 소요되는 비용을 평가하는 연구에 참여한 적 있다. 결과는 2022년에 발표됐다. 순수하게 환자가 내는 의료비만 260만원이었다.
이 교수는 "악화를 한 번 경험한 환자는 반복적으로 입원하게 되기 때문에 부가적인 비용을 훨씬 더 많이 소모하게 된다"며 고위험군의 악화 예방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국내 COPD 고위험군 악화를 예방하기 위한 치료제로 호흡기 흡입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 흡입제를 쓸 경우 악화 횟수를 연간 1.2회에서 0.7~0.9 수준으로 줄일 뿐이다.
이 교수는 "흡입제를 사용하는 고위험군은 1년에 한 번 갑자기 쓰러지거나 입원해야 하는 수준의 위험을 여전히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며 부족한 치료 환경을 지적하기도 했다.
새로운 치료제로 등장한 것이 듀피젠트(두필루맙)라는 생물학적제제이다. 듀피젠트는 미국FDA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통해 COPD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흡입제를 쓰는 환자는 1년에 한 번 정도 악화를 경험하는데 듀피젠트는 여러 연구를 통해 추가적인 악화를 줄일 수 있음을 입증했다"며 "흡입제 사용에도 악화하는 경우 듀피젠트 사용을 국내외 가이드라인 모두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 COPD 치료에 듀피젠트는 비급여다. 비급여 약값만 한 달에 150만원 수준이다. 급성 악화 고위험군은 이 비용을 내고 매달 사용해야 하며,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경우가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쓸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이 약은 1~2회 맞는 게 아니라 2주 간격으로 150만원을 쓰면서 계속 사용해야 한다"며 "약을 끊으면 위험이 증가해서 악화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게 아니라면 사용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COPD 환자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동자라는 점에서 급여화 필요성이 요구된다. 한국보다 GDP가 낮은 나라에서 COPD 치료에 듀피젠트 급여를 적용하는 이유다.
이 교수는 "외국에 많은 나라가 급여를 하고 있고 한국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지 않은 나라가 많다"며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급여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가 가지는 COPD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1년에 1조가 넘는데 이러한 부담을 근시안적으로 보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환자들이 COPD 치료에 많은 의료비를 쓰게 되고, 비싼 약값 때문에 급여를 해주면 건보 재정에 마이너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부분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COPD 환자가 악화하면 다양한 면에서 여러 나쁜 일이 발생하고 비용 부담이 생긴다"며 "듀피젠트를 비롯한 여러 좋은 약을 사용하면 직·간접적 의료비를 많이 줄일 수 있기에 큰 틀에서 의료비 절감 효과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국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은 "듀피젠트는 위험분담 약제로 경제성 평가를 통해 비용 효과적인 면에서 수용 가능하다는 평가를 해야 한다"며 "임상에서 밝힌 중증 악화 비율을 토대로 모델링을 한 다음 약제비로 얼마가 들어가지만 비용 절감 부분이 타당하다는 경평 자료를 제약사가 제출하면 신속한 급여 검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듀피젠트 사용 시 추가적인 건보 재정이 소요되지만 중증 악화를 감소시킴으로써 입원비 등 간접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이득이 크다는 타당성을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아무래도 비용효과성, 재정 영향 측면이 (급여 등재 간에) 쟁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도 고령층 발병 높은 COPD 우려, 적절한 관리 체계 필요
이날 대한노인회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송재찬 대한노인회 사무총장은 "국내 COPD 환자 대다수가 60대 이상 고령임에도 질환에 대한 인지조차 없이 증상이 심각해진 다음에야 치료를 시작하고 있다"면서 "조기에 적절한 진단과 관리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 건강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적인 질환 인식 부족과 체계적 관리 미흡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질병은 예방이 가장 중요하며 질환 조기 발견과 진단, 급성 악화 환자에서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 사무총장은 "보험 재정은 한정적이기에 새로운 치료나 약제 적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COPD 급성 악화는 생명과 직결된 만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며 "근본적으로 중증이고 긴급하고 필수적인 질환은 급여를 적용하도록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COPD처럼 관심이 적지만 치료는 상당히 중요한 질병이 소외되지 않고 제대로 치료받았으면 한다"며 "대한노인회에서 목소리를 높여 협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