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에서 떠올리는 리추얼(ritual)"
이충우 교수의 실버 마이닝(Silver mining) 시리즈
지난 주말 직장 선배의 모친상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예전에 같은 곳에서 그 선배의 부친상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그런지, 장례식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꽤 익숙하더군요.
특이한 것은 매번 문상을 갈 때마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가 떠오르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도 보신 분이 계실 텐데요.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독창적 관점과 해석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꼭 일독을 권합니다.
책의 머리말을 보면, 작가는 장례를 "노인을 씻겨드리는 굿판"으로, '죽음의 의례'를 장식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장례를 죽음에 관한 슬픔만이 아니라, 삶을 축하하고 다시 연결하는 일종의 '축제'와 같다는 통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실버세대의 장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돌봄 산업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앞서 장례식처럼 인생의 전환기마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의례(ritual)'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마케팅에서도 '리추얼'은 매우 강력한 수단입니다.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경험과 의미를 부여하고 브랜드와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생애주기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의 빛을 본 후 우리는 온 가족의 축복 속에 '돌잔치'를 하고 종교적인 '세례'를 받기도 합니다. 모두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의례입니다.
이후 성년기를 맞아, '성인식'과 대학 진학의 경우 '신입생 환영회'를 혹은 직장 생활의 경우 '신입사원 환영회'를 경험합니다. 이 시기는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첫 출발점입니다. 성년기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바로 '결혼식'이죠.
결혼은 성인이 된 남녀가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고 가족과 사회의 관계망에서 인정받는 중요한 의례입니다. 한 생명의 출산과 함께 자녀를 양육하면서 부모가 되는 경험 또한 삶의 의미를 확장해 주는 가장 큰 변화이기도 합니다.
장년기와 노년기에는, 과거 대비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많은 의례가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습니다. 환갑이나 칠순은 매해 되풀이되는 생일과 큰 다름이 없어졌고, 직장에서 '은퇴식'을 경험하는 실버층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빛과 어둠처럼, 생멸의 순간 즉 삶과 죽음은 엄연하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장례는 남은 사람들이 고인을 애도하고, 기억을 반추하는 자리입니다. 일종의 심리치료이자, 안도감을 주는 카타르시스의 장입니다. 결국에는 슬픔을 극복하고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남아 있는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의례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웰다잉'에 대한 관심으로 장례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청년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자격증 중 하나인 '장례지도사'의 취득률뿐 아니라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교나 직업훈련소에 특히 여성 비율이 높다고 하는데요. 매우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실버비즈니스를 블루오션으로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5년 뒤인 2030년부터 1차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자)가 순차적으로 75세 이상의 고령자층에 진입하기 시작합니다. 2030년부터 710만 명의 1차 베이비붐 세대가 돌봄 시장의 본격적인 수요층이 되는 셈입니다.
일본 영화 '플랜 75'는 정부가 의료비와 돌봄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합법적으로 7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안락사를 지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 알 수 있듯,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가 되면 신체 기능 저하와 질병 가능성이 커져 의료비와 돌봄 부담이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요?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한 시간적 제약 조건을 '골든타임'이라고 합니다. 하루빨리 정부의 정책적 대응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가장 최우선시해야 할 정책은 '지역 포괄 돌봄 시스템' 일명 '커뮤니티 케어'입니다. 고령자가 살던 지역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의료, 간병, 주거, 생활 등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말합니다. 즉 병원이나 시설 중심의 돌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을 지향하는 것이지요.
다행히도 상기 시스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의료 돌봄 통합지원' 사업이 내년부터 전국으로 시행이 확대됩니다. 이 사업은 급격히 건강 상태가 악화해 병원에 입원한 고령자를 살던 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퇴원 후,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가 해당 환자의 집을 방문해 필요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202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에서 국내 성인 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8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찬성 이유로는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41.2%로 가장 많은 응답을 보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세대 간에 널리 확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소위 '좋은 죽음'을 일컫는 '웰다잉'을 이청준의 소설 "축제"와 연관시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더 잘 살아야 할 이유를 배우고, 죽음을 통해 삶의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품위를 지켜내며, 죽음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의미를 남길 수 있습니다.
마치 소설 속 마지막에서, 주인공 이준섭의 가족이 모두 마당에 모여, 장례식 동안 불거진 갈등을 화해로 봉합하며, 끝내 잊을 수 없는 축제의 기념사진을 찍듯 말입니다.
글.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이충우 교수
*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