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기반한 연령친화 경력관리”

이충우 교수의 실버 마이닝(Silver mining) 시리즈

2025-06-12     김응민 기자
숙명여자대학교 이충우 교수

여기 두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2015년에 개봉한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인턴’ 그리고 2024년 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고지 주연의 ‘퍼펙트 데이즈’ 두 작품 모두 배우들의 내면화된 연기에 진정성이 높아서 좋았습니다. 특히 ‘퍼펙트 데이즈’는 노년의 일자리와 1인 가구의 일상을 마치 명품 헤드폰을 쓰고 하이파이 오디오 기기를 통해 LP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메시지의 울림과 잔향이 선명하였습니다.

모두 어떻게 보셨는지요. 하이컨셉으로 보면 ‘인턴’은 “70대 신입 인턴 비서가 30대 CEO의 멘토가 되다”라고 표현해 볼 수 있고, ‘퍼펙트 데이즈’는 “화장실 변기를 닦아도 행복한 60대 독거 남자의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하이컨셉(High concept)은 창의성과 독창성에 기반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개념으로 영화 산업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론입니다. 즉 영화의 내용을 간결하게 표현해서 실제 영화를 보고 싶게 하는 것이죠.

마케팅 사고의 방식으로 생각해 보면, 유사성(point of parity: POP)과 차별성(point of difference: POD)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영화의 유사성은 실버층의 일자리를 다루었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사무직과 단순 노무직이라는 점입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인턴’의 남자 주인공 ‘벤’은 퇴직 후 재취업에서 관리직이라는 직무 연속성이 이어진 반면,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맥락상 추정컨대 C레벨(Chief-level)의 위치에서 단순 노무라는 화장실 청소부로 직무 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2024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직무 분석을 통해 살펴본 중장년 노동시장의 현황과 개선 방안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근로자는 20~30대에 연구, 관리 직무에 일했더라도 점차 50대에 들어서면서 육체적 단순노동 일자리에 종사하는 경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이러한 직무 변화는 주로 50대 이후의 실직과 퇴직을 경험한 뒤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되면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직, 퇴직이라는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까요? 총 5단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단계는 경험 즉 거부의 단계입니다. 회사 측이 권고한 퇴사를 일단 거부하고 보는 것이죠. 충분한 생각과 고민할 여유가 없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회의의 심연에 빠지게 됩니다. 2단계는 분노의 단계입니다. 최선을 다해 일을 했고, 업무 성과도 부끄럽지 않을수록 분노의 크기는 커져만 갑니다. 내적 귀인보다는 소위 상사와의 관계 등에 의한 외적 귀인을 하게 마련이죠. 3단계는 체념과 인정의 단계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의 입지보다 더 안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점점 커집니다. 사측의 제안에 수용하거나 협상할 수 있는 조건으로 퇴직을 결심합니다.

4단계는 절망의 단계입니다. 퇴직 후 지역 의료보험, 국민연금이 높은 비용으로 청구되고 매월 꼬박꼬박 각종 생활비가 통장에서 빠져나갑니다. 무엇보다 소득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합니다. 어느새 거울을 보며 한숨이 자주 나오는 버릇도 생깁니다.

5단계는 도전의 단계입니다. 또한 지난 분노에 대한 화해의 단계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절망의 바닥에서 하늘 위 빛을 향해 조건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기 마련입니다. 재취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숨겨진 욕망을 깨우게 됩니다.

만일 지금 퇴직의 상황에 놓여있거나, 퇴직 후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다면, 욕망이 이끌어 갈 수 있는 삶의 계획과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욕망은 개인이 진정 원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에너지는 바로 욕망입니다.

인생의 중간 지점을 통과했다면, 이제는 깊은 자신만의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선 내 안의 욕망을 꺼내어 하나하나씩 나열해 보십시오. 그중에서 다른 일상의 욕망을 절제하고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라는 욕망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투여하십시오.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사용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타인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특히 50대 퇴직 후, 욕망이 배제된 채 삶의 꿈을 꾼다는 건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과 같습니다. 욕망은 나침반과 같습니다. 욕망의 나침반을 갖고 항해한다면, 반드시 목표한 도착지가 생깁니다. 삶은 생존하는 것 이상입니다.

생존이 우선시될 때 우리의 삶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퇴직 후 재취업이라는 고난을 객관화하고 스스로 자신의 고난에 대해 관찰자가 되십시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만일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상황을 해석하는 자신의 관점을 변화시키면 됩니다.

다음 주 ‘2025년 그랜드 제너레이션 컨퍼런스’가 있습니다. 올해의 테마는 그랜드 제너레이션의 일자리입니다. 이와 관련해 고령친화가 아닌 연령친화 경력 관리에 대한 해법을 발표합니다. 나 혼자서 꾸는 꿈은 그저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어느새 현실이 됩니다. 6월 17일 현실의 장에서 뵙겠습니다.

글.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이충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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