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질환 아밀로이드증을 위한 RNA 신약
[성은아 박사] 시리즈 칼럼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성 심근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이 있다. 약물 치료의 목적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이다. 부트리시란(상표명 암부트라)이 2025년 이 질환에 사용하도록 미국 FDA의 허가를 받았다. 부티리시란은 이 질환에 대한 최초의 RNA 약물로서 기존 약물과 비교하여 전혀 다른 작용 기전을 통해 효과를 나타낸다.
부트리시란은 새로운 약물이 아니다. 아밀로이드성 다발신경병증에 대하여 2022년에 미국에서 허가를 받았으며 한국에서도 승인을 받았다. 심근병증 환자의 심근 이상으로 인한 병원 방문을 줄이고 수명을 연장했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근거로 이번에 아밀로이드 심근병증에 대하여 적응증 확대를 받았다.
아밀로이드증이란 체내에서 정상적인 생리 활동을 담당해야 할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응집하고 침착하여 조직이나 장기의 기능에 손상을 주는 질환이다. 병이 진행함에 따라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지고 삶의 질이 저하되며 사망에까지 이른다.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200명 이상의 환자가 이 병으로 새로 진단받았으며, 한 해 동안 이 병과 관련하여 사망한 사람은 30명 이상이다.
아밀로이드증이 말초신경이나 자율신경계의 증상을 나타내는 다발신경증이나 심혈관계의 증상을 일으키는 심근병증의 원인이 된다. 트랜스티레틴(TTR)이라는 단백질이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트랜스-티-레틴’은 이름대로 갑상선 호르몬(티록신)이나 비타민 A(레티놀)를 혈관을 타고 수송하는(트랜스) 단백질이다.
TTR 아밀로이드증은 TTR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응집하여 발병하는데, 유전자 변이 단백질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정상 TTR 단백질도 아밀로이드증을 일으킨다.
TTR 아밀로이드성 심근병증에 대하여 타파미디스(상표명 빈다켈 또는 빈다멕스)가 최근까지 거의 독보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저분자 화합물로서 TTR 단백질을 안정화하고 응집을 억제하는 경구 투여 약물이다. 2024년 말에 등장한 아코라미디스(상표명 아트루비)도 경구 투여 약물이며 TTR 단백질 응집을 억제한다.
RNA 약물인 부트리시란은 TTR 단백질 생성을 위한 유전정보 물질인 RNA에 결합해서 RNA를 제거함으로써 단백질의 생성을 막아 병의 진행을 억제한다. 부트리시란은 체내에서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3달에 한 번 주사하기 때문에 매일 경구 투여하는 타파미디스나 아코라미디스와 투여 방식에서도 차별화된다.
RNA 약물의 개발이 모멘텀을 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RNA 약물은 일부 질환에 국한되어 사용된다. 아밀로이드증에 RNA 약물이 개발된 배경은 TTR 단백질이 간에서 생성되어 혈관으로 분비된 다음 신경계나 심근에 침착하여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간 질환은 RNA 약물 개발의 주요 대상이다.
전신 투여 경로를 통해 체내로 들어간 RNA 대부분이 혈관을 타고 간에 분포하여 작용한다. 이미 생성된 단백질의 응집을 해소하기 보다는 단백질의 합성을 억제하여 발병 원인에 원천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RNA 약물의 장점이 드러난다.
부트리시란 외에도 TTR 아밀로이드증에 대한 RNA 약물들이 나와 있다. 모두 RNA 단계에서 TTR 단백질의 합성을 억제한다. 부트리시란만이 다발신경증과 심근병증에 허가를 받았을 뿐, 나머지는 다발신경증에 대해서만 허가를 받았다. 발병 과정에 TTR 단백질의 응집이 관여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다발신경증과 심근병증이 다른 질환이다. 약물 허가를 위해 요구되는 조건이 달라서 각각에 대하여 별개의 임상시험을 필요로 한다.
파티시란(상표명 온파트로)은 2018 년에 아밀로이드 다발신경증에 대하여 허가를 받았다. 아밀로이드증에 대한 최초의 RNA 약물이며, RNA 간섭(siRNA)이라는 기술을 처음 사용해서 RNA 약물 개발에서 기술적 진보를 이룬 약물이다. 파티시란이 심근병증에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노테르센(상표명 테그세디)은 파티시란과 비슷한 시기에 허가를 받았다. 파티시란보다 자주 투여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혈소판 감소와 신염을 유발하는 부작용 때문에 블랙박스 경고를 달고 나왔다. 이노테르센은 판매 부진과 함께 이를 개선한 버전인 에플론테르센의 등장으로 시장에서 퇴출 중이다. 에플론테르센(상표명 와이누아)은 2023년에 허가를 받았다.
이노테르센을 변형해서 간세포에 효과적으로 집중하도록 했다. 이노테르센보다 적은 용량으로 약효를 나타내므로 상대적으로 부작용도 적다. 한 달에 한 번 환자 스스로 투여하는 주사 제형으로 나왔다.
글. 성은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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