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기고]일자천금(一字千金)을 되새기며......
‘一字千金’의 정신으로 1987년 첫발을 내디딘 ㈜약사(藥事)신문이 어느덧 창간 38돌을 맞게 되었습니다. 창간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초심을 지키며 대한민국 약업의 발전과 국민 보건 증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오신 약사신문 식구들께 축하와 함께 존경을 표합니다. 아울러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사신문'이 내는 한 글자, 한 글자를 애정과 격려의 눈으로 지켜봐 주신 독자분들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의약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새로운 정보의 생산 주체와 생산 메커니즘, 전송 수단, 습득, 활용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 또는 진화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미, AI가 기사를 생산하고, 생산된 기사는 온라인을 통해 전송·구독되고 있습니다. AI는 그 기사들을 사회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분석하고 그 가치와 최적 활용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Big-data에 기초하여 AI가 생산하는 기사는 매우 합리적으로 평가되고, 누구도 과학적 분석에 기초하여 AI가 생산하는 자료를 무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 과정에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도덕과 가치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기계와 AI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장면이 이제 더는 공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AI와 기계가 생산하는 언어에서 정론(正論)이나 사람 냄새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一字千金’은 고전에 불가할지도 모릅니다.
“一字千金”은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여불위(呂不韋)가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 철학과 도덕, 정치, 농업, 경제, 법률 등을 총망라한 「여씨춘추(呂氏春秋)」를 저술한 후, 이 책을 도성의 성문에 걸고 “ 이 책 속에서 한 글자라도 고칠 사람이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라고 선언한 고사에서 유래합니다. “고칠 부분이 없을 만큼 완벽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여불위가 정성을 다해 책의 문장 하나하나를 심사숙고해 가며 정교하게 다듬었음을 강조하였고, 아울러 그 내용조차도 천금에 비교할 만큼 높은 가치가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언론에서 “一字千金”은 한마디의 말이나 글이 엄청난 영향력과 가치를 가진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신문의 헤드라인이나 방송의 한마디, 기자의 기사 등이 사회적으로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一字千金”에서 “一字”는 ‘한 글자’, ‘말 한마디’, ‘한 문장’, ‘하나의 기사’로 볼 수 있고, “千金”은 ‘막대한 가치’, ‘최고의 가치’로 볼 수 있습니다. “一字”가 “千金”의 가치를 갖기 위해선 그 내용이 진실해야 하고, 윤리적이어야 하며,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고, 단어나 문장이 창의적이며 높은 품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즉, “一字”가 진실성과 도덕성, 신뢰성, 고품격 창의성, 공익성을 갖출 때 “千金”의 가치로 빛날 것입니다.
여불위의 생각과 똑같지는 않지만, 약사신문 창간자이신 淸論 선생께서 창간의 정신으로 “一字千金”을 택한 것도 약사신문이 내는 기사 한마디 한마디가 천금의 가치로 세상을 건강하도록 견인하며, 기사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자는 바램이었습니다. 애초에 약사신문 발간의 또 다른 가치는 ‘국민 보건’입니다. 약사신문이 내는 한자(一子), 한자는 생명을 위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언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목숨이며, 목숨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약사신문의 “一字”는 생명을 향하고 있습니다. 藥事를 통해, 넓게는 국민 보건에 관한 지식·정보의 알림과 논의, 비평을 통해 살림(生)을 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요? 국가 아니 세계적 지도자들의 말과 주장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달라지고, 그 언어는 마치 바벨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던 때에 사람들의 외침과 같이 어지러워서 사람들은 소통을 포기하고 흩어져 갑니다. 언론의 장에서도 거짓이 난무하고 책임을 소홀히 여기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문장과 연설은 실제적 생명과 도덕을 포기하고 진영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급급합니다. ‘一字’가 나와 내가 속한 진영의 ‘千金’만을 쫓고 있습니다. 미 트럼프 대통령의 문장 속에서 가난과 전쟁으로 피폐해 가는 힘이 약한 나라 백성의 목숨과 삶을 구하거나 보호할 수 있는 ‘千金’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권력자들의 웅변도 여린 생명들의 걱정과 두려움을 외면한 지 오래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들여다봐도, 12. 3. 계엄 이후 양 진영에서 쏘아져 나오는 언어 속에 통합을 향한 ‘千金’을 볼 수 없고, 대신에, 진영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생명을 소홀히 여기는 단어만이 난무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더 나아가 온 세상에 진실성과 도덕성, 신뢰성, 고품격 창의성, 공익성을 갖춘 한마디가 절실합니다. 약사신문 창간 38주년을 맞아, 淸論 선생께서 주창하신 “一字千金”의 정신을 되새기며, 다짐해 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오늘도 우리는 여린 생명을 살리기 위한 손짓과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