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전으로 작용하는 진통제 '저나벡스(Journavx)'
[성은아 박사] 시리즈 칼럼
진통제 저나벡스(성분명 수제트리진)가 2025년 1월 FDA의 허가를 받았다. 중간에서 심각한 정도의 급성 통증, 즉 수술이나 외상에 수반하는 통증에 사용한다. 저나벡스는 작용하는 방식에서 기존의 어느 진통제와 다르다. 사용 범위가 마약성 진통제와 겹치지만 중독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을 가진다.
저나벡스는 통증의 신경전달을 차단해서 뇌에서 통증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통증은 외부 자극에 대한 인체의 방어 기제의 일부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진통제들은 통증과 관련된 일련의 생리작용을 유도하는 신호전달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조절하여 진통 효과를 나타낸다.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과 COX-2 억제제들 모두가 이에 해당한다. 저나벡스가 작용하는 방식은 이들과 전혀 다르다.
통증이라는 불쾌한 감각에 국한하면, 통증은 말초와 중추 간의 정보의 전달과 통합을 통한 고등한 신경 작용의 결과물이다. 말초에서 인지된 통각 정보가 전기처럼 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되고, 뇌가 정보를 수용하고 해석하여 통증을 느낀다. 저나벡스는 통각의 신경전달을 차단한다. 뇌가 통각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여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정보가 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 Nav channel(Na= 나트륨, v= 전압을 뜻하며, Nav channel은 voltage gated Na+ channel 전압 의존성 나트륨 이온 통로를 말한다)이라는 단백질이 작용한다.
신경의 전압을 조절하는 단백질로서, 정보를 전기적 흐름으로 바꾸어 찰나의 순간에 전달하는 신경전달의 중심 축을 이룬다. 저나벡스는 Nav1.8 특이적 억제제로서, 통각 정보의 전달을 억제한다.
저나벡스가 작용하는 방식은 치과에서 사용하는 국소마취제와 유사하다. 국소마취제의 주성분은 리도카인이다. 리도카인이 신경전달을 차단하여 환자는 치료 중에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리도카인은 다양한 종류의 Nav channel을 차단한다.
전신에 투여하면 심장 박동이나 호흡을 조절하는 근육까지 마비시키니 리도카인을 국소마취제로만 사용한다. 저나벡스는 복어 독과도 유사하다. 복어 독을 먹으면 호흡마비로 죽는다. 복어 독의 주성분인 테트로도톡신이 Nav channel을 광범위하게 억제하여 호흡을 조절하는 신경전달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Nav1.1부터 Nav1.9까지 9종류의 Nav를 가진다. 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신경계에서 신경의 전압을 조절함으로써 신경전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Nav1.7, Nav1.8, Nav1.9은 말초의 통각이나 촉각과 같은 감각을 중추로 전달하는 과정에 작용한다.
중추나 근육을 담당하는 신경전달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Nav1.7, Nav1.8, Nav1.9를 억제해도 심장마비나 호흡마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통증과 관련된 희귀한 유전 질환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알려지면서, Nav1.7, Nav1.8, Nav1.9을 타겟으로 하는 진통제 개발이 시작되었다. 홍색사지통증, 또는 피부홍통증이라고 부르는 만성 통증 환자는 팔다리에 별다른 자극이 없이 화상을 입은 듯한 작열감과 통증을 느낀다.
일부 환자들에게서 Nav1.7, Nav1.8, 또는 Nav1.9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되었다. 유전자 변이로 인하여 이들 단백질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상태에 있어서, 말단에서의 자극이 충분하지 않을 때에도 신경이 흥분하여 이들 환자는 만성적으로 통증을 느낀다.
이와 정반대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파키스탄의 펀잡 지방의 한 소년은 불 위를 맨발로 걷거나 칼로 피부를 자해해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소년의 가족과 친척 중에서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Nav1.7 유전자의 변이를 가진다는 사례가 2006년에 발표되자, 제약회사들의 약물 개발이 Nav1.7에 집중되었다.
지금까지 Nav1.7을 억제하는 진통제가 나오지 못했다. Nav1.7을 특이적으로 억제하는 약물들이 사람에게 진통 효과를 나타내지 않아서 임상시험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유전자의 변이로 Nav1.7 단백질이 기능을 하지 못하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데, 약물로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면 진통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통증의 신경전달에는 Nav1.7, Nav1.8, Nav1.9 모두의 협업이 필요하다. 지난 20년 동안의 노력의 결과가 Nav1.7 억제제 대신 Nav1.8 억제제로 나왔다.
저나벡스는 복부 성형술이나 무지외반증 수술 (발 변형 교정술)을 한 환자에 대하여 수술 직후 48시간 동안 진통제를 복용하고 통증을 평가하는 임상시험에서 마약성 진통제에 버금가는 진통 효과를 보였다. 요통 환자를 대상으로 한 만성 통증의 임상시험에서는 뚜렷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임상시험을 근거로 저나벡스가 급성 통증에 대하여 허가를 받았다.
저나벡스의 가장 큰 장점은 중독성을 우려할 필요 없이 마약성 진통제를 대신하여 사용한다는 점이다. 마약성 진통제는 모르핀계 진통제 또는 오피오이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일반 진통제로 해결하기 어려운 정도의 통증에 대하여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한다.
마약성 진통제는 뇌에서 모르핀 수용체를 억제하여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진통 작용이 강력하지만 중독성도 강하다.
한국에서는 아직 크게 문제되지 않으나,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서는 옥시코돈이나 펜타닐 등의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있다. 저나벡스의 등장을 획기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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