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입시에 대한 다른 생각들... "공정 시스템의 시작은 공정한 시험 출제로부터"
지난달 12일 연세대학교 자연계열 수시모집 논술시험에서 감독 과정의 실수로 발생한 문제 유출의 논란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연세대학교는 입시 혼란을 방지할 공정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묘안이 보이지 않는다. 한 대학의 시험장에서 발생한 사소해 보이는 실수가 불러온 회오리는 거대한 태풍으로 변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과 노력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예견되는 질병이나 사건에서 최선의 방책은 예방이다. 예방을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 있지만, 예방으로 질병이나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질병이나 사건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제로(0)이며, 예방에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은 질병이나 사건 발생에 따른 피해에 비하면 미미하다.
시험 오류의 예방에 있어서 성패는 시스템과 시행 전문 역량에 좌우되나, 더 중요한 것은 오류 방지 시스템이다. 우수한 시스템은 개인의 역량까지도 보완해 줄 수 있다. “연세대 수시모집 논술시험의 문제 유출 논란”에서도, 오류 발생 예방 시스템과 감독관의 전문 역량에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연세대학교의 시스템은 감독관의 실수나 의도적 불공정 개입을 충분히 방지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이었다. 현 대학들의 입시 시행 현황을 고려할 때, 입시 시즌에 감독관 역할을 하는 대학의 구성원들은 입시 감독의 전문가로 훈련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긴장된 상황에서 감독관의 개입은 불특정 불공정 상황을 방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다. 그러므로 입시에 대한 더 치밀한 공정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2023년, 필자가 (사)한국약학교육협의회(이하 약교협)에서 본부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주요 현안 중 하나가 ‘약학대학 편입학 공동시험 시행’이었다. 2022년 약학대학의 통합 6년제 학제 시행 이후 2022년 입학생 중 자퇴생과 휴학생이 대폭 증가하여 편입학 시험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편입학 시험에서 공정한 시험관리의 시작은 “변별력이 있는 높은 질과 보안이 확보된 시험 문제의 출제 관리”임을 인식하고 있던 약교협의 일부 회원 학교들이 2023년 초부터 “약학대학 편입학 공동 필기시험(공동시험)”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약교협은 10년 이상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harmacy Education Eligibility Test, PEET)’을 출제·운영한 경험이 있어서 ‘공동시험’을 출제·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이에 약교협은 총회의 논의와 결의를 거쳐 공동시험 시행과 관련하여 교육부와 논의하였다. 2023년 5월 교육부 해당과는 ‘공동시험’의 시행이 가능함을 확인하였으나, 6월에 공동시험을 실시하더라도 지원 학생으로부터 응시 수수료를 징수할 수 없고 공동시험의 시행에 필요한 비용을 공동시험 참여 대학의 분담금으로 충당해야 함을 약교협에 통고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거의 모든 학생 선발 시험의 비용은 응시생이 부담한다. 각 대학이 응시생 중 몇 명이 해당 대학에 응시할지도 모르는 시험 비용을 미리 나누어 부담하라는 통고를 납득할 수 있겠는가? 약교협은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결국, 공동시험의 시행은 무산되었고, 2024년 약학대학들의 편입학 시험은 자체적으로 최소 범위에서 실시되었다. 2024년 일부 대학의 약학대학 편입학시험 지원률은 100:1을 넘었다. 실무를 준비했던 필자는 이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교육부의 결정이 사회정의와 수험생들을 위한 선택이라는 입장에 아직도 동의할 수 없다. 약교협은 ‘공동시험’이 더 공정·공평하고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방안이며, 응시생들의 불편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동시험의 장단점을 간략하게 표에 정리하였다. 독자들께서 편입학 지원자 관점에서 판단해 보시라.
2024년에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이 대폭 증가하여,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재수 또는 다수생의 수가 역대 수준으로 많다는 보고들이 있다. 당연히 현 약학대학의 재학 또는 휴학생들도 재수 또는 다수의 행렬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 9월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약학대학의 자퇴 또는 휴학생의 수가 대폭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약학대학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약사 인력 양성을 위해서라도 또 2025학년도 편입학 전형을 실시할 수밖에 없다. 약학대학들은 2023년도처럼 불안을 감수하며 고민해야 하고, 특별한 묘책이 도입되지 않는 한 그 고민은 반복될 것이다. 편입학 시험을 위한 치밀한 공정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취약한 곳에서 회오리가 일어날 것이다. 대비해야 할 사람들의 안이한 결정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또 우리 사회가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회오리의 발생을 미리 막기 위한 약교협의 선택은 부질없어 보인다. 회오리가 태풍으로 확대되더라도 “공동시험의 시행에 필요한 비용을 공동시험 참여 대학의 분담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결정을 한 사람들에게 직접적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고, 책임은 회오리 발생 대학에 부과될 것이다. 학생 선발에 있어서 최종적인 책임은 대학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세대 사태에서도 우리 사회는 “입시 혼란을 방지할 대안 마련”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연세대에 부과하고 있고, 발생한 피해의 복구는 요원할지 모른다. 모두가 “선택과 권한은 책임을 동반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오늘도 사회정의와 공정,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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