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길에서 균형 찾으면 신약 강국 문 열려...한국, 글로벌 리더 도약하길 기대"

올해 첫 ESG 가치보고서 발간 "신약, 단순히 경제적 평가 안 돼" "한국 사회와 사람 위한 가치 중요"  "외국인, 한국인 구분 더 이상 무의미'

2024-11-18     김민건 기자

[팜뉴스=김민건 기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로 떠오른 지 몇 년 됐지만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에서 이 주제로 보고서를 발간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팜뉴스가 ESG 기획 특집에서 KRPIA 이야기를 꼭 보도해야겠다고 계획한 이유다.

올해는 KRPIA에게 더욱 특별하다. 협회 설립 이래 처음으로 ESG 중요성을 알리는 '가치보고서'를 발간하고 윤리경영 보고서도 올해 제작했으며, 100페이지가 넘는 정책 제안서를 발간했다. KRPIA가 초고령 사회 같은 국가적 과제를 혁신 신약 가치와 연계해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방향을 제시한 결과물이다.

이중에서도 ESG 보고서는 예상치 못한 성과다. 글로벌 본사 ESG 정책을 한국 상황에 맞게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회원사들의 많은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 적용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주제를 도출해냈고, 협회 차원 활동 외에도 회원사 개별적으로 진행한 ESG 프로그램들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ESG 가치보고서 발간을 알리는 보드판 앞에서 이영신 KRPIA 상근부회장

이영신 KRPIA 상근부회장은 팜뉴스와 인터뷰에서 "보고서를 완성하고 나서 협회가 국민 건강과 한국 제약산업을 위해 많은 ESG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한 사실은 협회 직원 모두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활동을 알리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보고서들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협회와 회원사가 협력하며 만들어낸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협회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SG는 기업 활동 중 비재무적 요소로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에서 친환경, 친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투명 경영을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KRPIA ESG는 '사람'이 중심이다. ESG 주제를 사람(Social People), 사회(social Industry), 환경(Enviroment), 지배구조(Governance)로 구분하고 글로벌 제약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KRPIA ESG 보고서를 보면 한국 사회와 제약산업에 필요한 '숲'을 조성하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는 물론 한국 제약사, 바이오벤처 등 다양한 '나무'를 함께 심어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가 추구하는 ESG 한 축이 협력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KRPIA ESG 보고서는 신약의 가치를 단순히 경제적, 경영적 기여를 넘어 사회·경제적 기여 측면에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사회와 사람(People) 부분에서 역할을 강조한다. 글로벌 제약사가 공급하는 신약은 한국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ESG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KRPIA는 신약 개발과 공급이 ESG 가치와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알리고, 이를 통해 사회와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한다.

남산 자락에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어느 날, 이영신 부회장을 KRPIA 사무실에서 만나 ESG 가치보고서를 만든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부회장은 "ESG는 단순한 경영 전략이 아니라 제약사 사명과 사회적 책임을 결합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한국에 맞춘 ESG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균형점을 찾고 혁신함으로써 제약·바이오 산업이 지속가능하도록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의 길에 서 있으면 신약 강국의 문이 열린다"고 강조하며 ESG와 제약사 사명을 융합한 한국 제약산업이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KRPIA는 올해 처음으로 ESG 가치보고서, 정책제안서, 윤리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다음은 이 부회장과 일문일답.

▶2019년 KRPIA 첫 여성 상근부회장이 되셨는데 업계 반응이 '서프라이즈'였어요.

"그랬죠. 제가 정부 출신도 아니고, 특정 업계에서 오래 활동한 배경이 없다 보니 많은 분들이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직장 선택 기준은 항상 개인적 미션과 조직의 미션이 일치하는 곳이었어요. 조직 규모나 급여보다 중요한 건, 제가 추구하는 목표와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맞는지가 더 큰 기준이었죠. 그런 점에서 협회는 ‘함께 가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회원사와 함께, 정부와 함께,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한 사회와 함께 나아가야 하는 조직이라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죠. 개인적으로는 협회에서 일하는 것이 제 자신의 장점과 앞으로 해 나갈 일을 알게 해 준 '선물'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KRPIA에 와서야 알게 된 건가요.

"KRPIA에서는 정부와 논의도 하고, 회원사들과 함께 이슈를 논의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에요. 잘 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제가 가진 미션과 협회 미션이 일치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게 됐고, 개인적 미션과 협회 미션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즐겁고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이런 기회를 얻게 된 것에 정말 감사함을 느끼고, 제 커리어에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물론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죠. 2021년에 6살 때부터 백혈병과 싸우며 치료제 급여를 기다리던 한 환아가 급여 치료를 받지 못하고 13살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 일은 저에게 깊은 충격이었고, 지금도 마음이 굉장히 아파요.

그때 "내가 이곳에 있는 한 이런 일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왜 이 일을 하는지, 국민과 환자와 직접 닿아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고 이후로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한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5년 협회 모습과 어떤 일 해야 하는지 고민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해답은 '사람'

건강과 사회, 제약산업 모두 사람이 중심

약가 문제도 결국 ESG와 맞닿아 있어

 

▶그간 KRPIA에서 언급한 내용을 보면 신약, 허가, 급여로 키워드가 좁혀지는데 ESG를 주제로 얘기하는 건 처음이에요. 지난 5년간 일하시면서 개인적 사명과 협회 미션이 만나는 지점에서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협회에 재직하는 동안 두 가지 고민을 꾸준히 했어요. 협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죠. 오늘처럼 ESG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게 생소해 보이기는 해요.

사실 ESG라고 하면 흔히 경영과 관련된 주제로 생각하잖아요. 경영은 재정과 비재정 부분으로 나뉘고 비재정이 ESG와 연결돼요. 그런데 ESG에서  재정적, 비재정적 요소를 완전히 분리해서 볼 수가 없어요. 모든 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죠.

KRPIA ESG 가치보고서 첫 장에 '혁신의약품을 통해 한국 보건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모든 세대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헌신한다'고 적혀 있어요. 이 문구가 올해 KRPIA ESG의 핵심 목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이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약을 들여오는 것 이외에도 환자들이 혁신 신약을 더 빨리 사용할 수 있게 약가를 조율하고, 승인과 급여 과정에서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정책적 개선점도 논의해야 해요. 결국 ESG와 약가는 맞닿아 있는 거죠.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신약에 보험 약가 적용이 가장 늦고, 신약이 도입되는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려요. 때로는 중국에서 먼저 신약이 승인되거나 일본보다 도입되는 신약이 적은 것을 보면 기분이 복잡해지죠.

처음 협회에 온 이후 주변에 "KRPIA를 한국에서 모범적인 협회로 만들고 싶은데, 벤치마크할 만한 곳이 있을까"라고 우문을 했더니 "벤치마크 할 곳을 만들어 보라"는 현답을 들었어요.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었죠. 그날 이후로 협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매일 고민하며 조언을 구했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사람'이에요. 협회가 뚝딱하고 무언가 만들어 낼 수는 없어요. 다양한 역량 있는 사람들이 모여 여러 관점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는 균형점을 인내심을 가지고 찾아야 비로소 방향을 정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협회가 RAS(위험분담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2007년부터예요. 실제로 법제화 된 것은 2013년이고, 첫 사례가 2016년에 나왔어요. 이렇게 협회 업무는 긴 호흡을 가지고 함께 해결점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항상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중요하고, 그래서 '사람'을 답으로 생각한게 된 거죠.

이런 가치는 ESG 가치보고서에도 있어요. ESG 3대 요소 중 사회(Social)를 사람과 산업적 공헌으로 나눴어요. 사회적 부분은 우리가 사람을 중심으로 볼 때 어떻게 국민 건강과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 그다음에 산업적으로 한국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사회와 산업의 회원사와 사회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만들어가는 게 ESG 활동에 본질이라고 생각한 거죠."

이영신 KRPIA 부회장인 ESG 가치보고서를 설명하고 있다.

 

▶KRPIA가 신약 허가나 급여만 얘기한 것 같지만 그간 ESG 활동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고, 근간에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네요.

"그렇죠. ESG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단순히 트렌드가 아니라 의무화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ESG가 의무화될 예정(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대상)인데 기업 입장에서 투자받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거죠. 

사실 KRPIA는 ESG 활동을 계속해 왔어요. 사회(Social) 부분에서는 커뮤니티 서비스와 사회적 기여를 꾸준히 해왔고, 환경(Environmental)에서는 한강 청소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페이퍼리스 정책 등 분절적이지만  활동을 이어 왔어요. 지배구조(Governance)는 윤리경영에 있어 가장 먼저 본사의 엄격한 기준과 한국의 공정거래 규약을 모두 지키는 방식으로 운영해왔고요.

협회가 작년까지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리포트만 발간했어요. 처음에 회원사 간에 내부 커뮤니케이션 목적으로 자료를 제작한 것이지 외부에 공개할 계획이 없었어요.  하지만 올해 ESG 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고서로 발간하면서 회원사와 협회가 단편적으로 해왔던 ESG 활동 노력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사실 ESG는 24년 전 KRPIA를 설립할 때부터 협회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 보고서를 통해 그 노력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조명받게 된 것이죠." 

▶ESG 가치보고서를 발간할 생각이 없었는데 책자로 만든 이유가 있나요.

"보고서 제작은 글로벌 본사의 ESG 정책을 한국 상황에 맞게 어떻게 도입하고 정착시킬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작했어요. 협회 내부에서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해보자는 것에서 출발한 거죠.

테스크포스팀(TF)을 구성해서 회원사 자료를 모으고 다양한 의견을 논의하면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회원사와 협회가 했던 ESG 활동을 모으고 되돌아봤어요. 보고서를 완성하고 보니 과장한 부분 없이 협회와 회원사가 해왔던 중요한 활동들이 드러나 있었고, 이미 한국 국민 건강과 제약산업을 위해 조용히 많은 기여를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보고서를 만들면서 협회와 회원사 모두 이런 활동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고, 이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보고서 만드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어요. 한국 제약산업에 맞는 ESG 모델을 만들어가면서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죠.

하지만 완전된 ESG 가치보고서 표지를 보고 다시 한번 "그래 우리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믿고 행동하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회원사들이 열심히 참여한 덕분에 한국에 맞는 ESG 방향을 찾아 보고서까지 만들게 된 거죠. 이 보고서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회원사와 협회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낸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Social을 사람과 사회로 나눈 KRPIA ESG 주제는 한국에서 지속가능한 환경, 기업 경영을 위한 활동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것이네요.

"ESG가 각각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환경(E)과 사회(S)가 연관돼 있고, 사회(S)와 지배구조(G)도 연결돼 있어요. 이 주제들을 모아서 사람 중심으로 놓고 보면 다 연결이 되는 거죠.

환경(E)과 사람이 어떻게 연관되냐고 물어볼 수 있어요. 환경 분야에서 가지는 공통 과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상태로 물려주는 것이잖아요. 이 부분에서 산업군마다 할 수 있는 일과 방식이 달라요. 

KRPIA 회원사는 이러한 노력 일환으로 출장 대신 화상회의를 늘려 탄소 배출 저감을 실천하고 있어요. 비행기가 탄소 배출량이 높기 때문에 출장을 줄였고 화상회의를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환경에 기여하고 있죠. 물론 직접 만나 관계를 맺는 부분이 부족할 때도 있지만, 출장을 줄이면서 비용도 절감하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습니다.

스마트 오피스를 도입하면서 사무 공간을 최적화함으로써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일회용 용기를 쓰지 않는 등 환경친화적 운영을 하고 있어요. 의약품 라벨링을 종이 대신 전자 라벨로 대신하는 'E-라벨링'도 도입해서 환자들에게 최신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면서도 페이퍼리스라는 환경 보호 효과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이 부분도 환경(E)과 사회(S)가 교차하는 지점인 거죠.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 연결돼 있어요.

물론 이런 활동이 재정 소요도 있지만 동시에 비용 절감 효과도 있고요. 출장을 줄이면 비용을 줄이게 되고, E-라벨링은 정보 제공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죠. 결국 재정적, 비 재정적 활동이 긴밀히 연관돼 있어요."

이영신 KRPIA 상근부회장

 

▶지금까지 환경과 기업 경영 측면에서 ESG 연관성을 얘기해주셨는데, 건강한 삶과 사회 발전은 어떤 부분에서 가치와 연결돼 있나요.

"한국은 고령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하는 반면 출산율은 낮아지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사회를 유지하려면 건강한 사람이 더 오래 경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해요. 제약산업 입장에서는 건강한 삶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건강 수명을 연장하고, 저출산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원사 중 일부는 난임 치료를 돕는 약을 개발하고 있잖아요. 제약산업이 고령화와 저출산에 문제에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봐요.

KRPIA 회원사에서 만든 신약 중 60%가 항암제에요. 희귀질환 신약 비중도 45% 정도 돼요. 그런데 환자가 매우 적은 희귀질환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 사실 경영적으로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그런데도 글로벌 제약사들이 희귀질환 신약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소명 의식 때문이에요.

이 부분이 사회(S) 문제와 연결돼 있죠. 예를 들어 암환자 5년 생존률이 1990~2000년에는 45%였는데, 2017~2022년에는 72%로 증가했어요. 그만큼 환자들이 완치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사회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에요. 1.6배 정도 좋아졌다는 건 굉장한 수치죠. 이러한 변화는 의료진 노력과 의료기기 발전, 그리고 신약 역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ESG 본질은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

저출산·고령화, 세대 갈등 모두 균형이 핵심

한국에서 필요한 일에 ESG 활동 맞춰

한국 기업과 협력, 같이 성장하기 위한 것

 

▶앞서 ESG 가치보고서를 만들 때 한국에 맞는 주제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회원사마다 ESG 목표는 다 달라요.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각자의 ESG 목표를 정하고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가야지 결과를 낼 수 있잖아요. 결과는 반드시 평가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미국이나 유럽에서 ESG 인증을 받을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기준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지금은 종이로 바꾸기는 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을 때, 이를 한국에서 동일하게 적용하는데는 여러 한계가 있었어요. 한국에 맞는 주제를 찾아 글로벌 목표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해요.

한국은 석탄 사용 이후 숲을 잘 복원해서 정말 푸르른 나라가 됐어요. 그럼 아마존을 살리기 같은 글로벌 캠페인 대신 한강을 깨끗이 청소하는 환경 캠페인 같은 지역적이고 현실적인 활동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런 것 없이 글로벌 캠페인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효과도 별로 없어요. 그래서 한국에 맞는 방법으로 바꾸는 고민이 필요한 거죠.

회원사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 '한국 상황에 맞는 ESG 활동은 무엇인가'라는 부분이었고 고민이 많아요. 서로 경험과 관점을 얘기하고 해결책을 찾으면서 배워나가는 거죠. 그런 활동부터 시작을 한 거예요"

▶이 부분에서도 앞서 말한 '함께 가자'는 가치를 볼 수 있네요.

"그렇죠. ESG는 미래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확해요. 건강한 삶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 지속 가능성이지 않겠어요. 정말 어렵게 선진국에 들어섰는데 편안한 삶을 후손들한테 물려줘야지 더 어려운 삶을 줄 수는 없잖아요. 그런 선상에서 저희가 공헌할 수 있는 활동 중에 하나인 거죠. 

한국 사회를 연결하는 본질은 '균형점'이에요. 제약·바이오 산업을 비롯해 ESG, 경영, 그리고 개인의 삶 모두 핵심은 '균형'이에요. 예를 들어 개인의 삶과 일을 병행하려는 균형점도 세대별로 달라지잖아요.

제약산업도 신약 개발과 제네릭 의약품 간 재정적 부담을 놓고 어디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죠. 시대적 요구와 필요에 따라 재정적 균형점을 찾는 일도 ESG와 연결돼 있습니다. 결국, 저희 입장에서 ESG 본질을 본다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꾸준히 '사람'을 중심에 두고 얘기하고 있는 거죠."

▶ESG 본질은 균형점을 찾는 것이고, 균형을 찾기 위한 핵심이 사람이라는 것이네요.

"그렇죠. 양성평등과 재택근무 등 유연한 업무 환경을 통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것도 ESG에서 중요한 '사람(S-People)'이라는 주제에요.  예를 들어, KRPIA 회원사들의 여성과 남성 임직원 비율이 비슷합니다. 회원사들이 양성평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입니다.

산업(S-Industry) 측면에서도 균형점을 찾는 것은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에요. 트렌드는 우리가 조종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데, 바로 그게 '혁신'이에요. 혁신한다는 말은 쉽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기존의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ESG의 산업(S-Industry) 주제에 혁신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나라,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있어요. 혁신이 가져오는 위험을 감수하고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회, 혁신에 기반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산학연정이 함께 해야 할 일인 거죠.

저희는 국내사에서도 글로벌로 나가는 신약이 많이 나오길 바라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신약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하죠. 국내 기업과 파트너링을 하고,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는 이유도 모두 ‘함께 성장하자’는 ESG의 가치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존슨앤드존슨의 제이랩스(JLABS)가 한국에 들어와 R&D를 함께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협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더 나은 ESG 기반의 산업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KRPIA나 글로벌 제약사가 추구하는 게 ESG라는 '숲'을 한국에 만든다고 하면 다양한 나무들을 심어야 하는데,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국내 제약사도 참여하는 다양성이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잘 이해하시고 아주 좋은 예를 들어주셨네요. 우리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글로벌 제약사 ESG 활동을 보면 친환경 정책도 강조를 많이 하는데요, 한국에서 특히 양성평등과 균형 있는 인재 채용은 세계적 흐름을 따르는 것 같아요.

"친황경 정책과 양성평등은 세계적 흐름입니다. 글로벌 제약사 ESG 활동은 성별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균형점을 찾는 기업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요. 그 결과, KRPIA 임원의 비율이 여성 51%, 남성 49%로 여성이 약간 더 높습니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사례가 반드시 다른 산업에도 적용 가능한 ‘정답’은 아닙니다. 모든 산업이 동일한 속도로 균형점을 찾기는 어려워요. 예를 들어, 선박 제조 같은 전통적인 남성 중심 산업은 균형점을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어요.

제약업계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양성평등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기업 문화 활동 덕분에  균형점을 찾는데 좀 더 빠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환경은 업계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부분에서도 동등해야 하잖아요. 균형점을 찾아야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균형은 항상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와 함께 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고령 인구가 더 늘어나는 상황인데, 건강 수명 연장과 글로벌 제약사 ESG 활동 간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저출산과 고령화 모두 한국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고령층이 경제활동을 계속하면 젊은 세대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도 있지만, 반대로 건강한 고령층이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지 않으면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은 과거 위기 속에서도 균형을 맞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온 저력이 있는 나라예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도 각 세대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 해결해 나가길 바랍니다.

KRPIA와 회원사들이 추구하는 ESG 경영 목표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에요. 과거에는 암에 걸리면 상대적으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지만, 이제는 짧은 기간 입원치료를 하고 적절한 관리를 통해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죠.

의료기술과 함께 약물의 발전을 통해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사람 중심의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요?"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것, 만성 질환이나 중증 질환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이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단순히 제약산업 역할을 넘어 사회와 경제를 위한 필수 기여라는 얘기네요. ESG 가치보고서를 보면 회원사 신약 비중이 83%이고 사회 경제적 가치가 126조 원이에요.

"맞습니다.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이 단순히 제약산업의 역할을 넘어 사회와 경제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보여주는 데이터예요. 쉽게 와닿지 않는 내용이죠? 이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가 있어요. 2019년에 콜롬비아 대학교 리텐버그 교수가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사망률 1%를 낮췄을 때 발생하는 경제 효과를 분석한 내용이에요.

연구에 따르면 사망률을 1% 줄이면 환자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이 줄어들고, 사회로 복귀해서 경제적 활동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세금도 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약 126조원의 사회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데이터는 건강 수명 연장이 단순히 의료적 목표에 그치지 않고,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죠. 신약 개발과 보급은 단순한 기업의 성과를 넘어, 더 건강한 사회와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KRPIA에 위원회가 7개 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각 위원회 업무가 결국 ESG와 연관성이 깊어 보여요.

"KRPIA는 정부 정책에 맞춰 대응하고, 새로운 정책도 제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각 위원회가 수행하는 업무 모두 ESG와 깊은 연관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신약 접근성과 재정 균형 문제를 다루는 MA 위원회는 약가와 지출 효율성을 주로 다뤄요. 

현재 중증 희귀질환에서 신약 지출은 약 13.5%에 불과한데 선진국 평균은 50%예요. 중증과 경증 질환, 신약과 제네릭 중 의약품 간에 재정정 직원 균형을 시대적 요구에 맞춰 고민해야 합니다. 이는 ESG 중 사회(S)적 측면에서 신약 접근성과 균형 있는 재정 지출을 집중해서 다룬다고 볼 수 있죠.

허가·임상·메디컬 위원회는 임상을 얼마나 빨리 한국에 들여오느냐에 집중합니다. 한국은 임상 연구의 우수성으로 인정받고 있고, 1-2상을 한국에서 시작하면 3상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져요. 환자들이 더 빠르게 신약을 사용할 수 있는 거죠.

2023년에 회원사들이 임상 연구에 투자한 총액과 연구 건수 자료가 발표되었는데  2022년에 비해 모두 올랐어요. 한국 임상 환경이 좋아서 진행하는 부분도 있지만, 회원사에서도 정말 열심히 글로벌 임상을 유치하려고 해요. 한국이 임상 유치에 매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환경적인 개선도 필요하겠죠.

여기에 윤리경영은 KRPIA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회원사 모두 공정거래법에 따라 윤리경영을 매우 엄격하게 심사하며 대가성이 있는 거래를 모두 제한해요. 윤리경영은 KRPIA와 회원사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지적재산권을 가장 많이 내는 톱5 국가 중 하나인데 제약바이오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요. 특허와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조하면서도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HR위원회는 내외부 소통 활동을 하면서 각 회원사가 잘하는 우수 사례를 벤치마크하고 협회 차원에서 업무와 복지 차원에서 개선 방안을 찾아 적용하고 있어요. PA/커뮤니케이션 위원회는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늘리면서 ESG 활동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알리고 있고요."

이영신 KRPIA 상근부회장이 ESG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KRPIA 7개 위원회 활동이 제약·바이오 산업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ESG 요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네요.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제약사로서 사명과 경영적 측면을 어떻게 융합해야 할까요.

"사실 협회와 회원사는 환자한테 신약을 더 빨리 제공하는 것을 공통된 시각으로 보고 있어요. 함께 한해의 계획과 목표를 정하는 과정에서 각 회원사의 의견이 모이고, 공통의 분모를 찾습니다. 그다음에 각 위원회별로 자체 조율을 하면서 나온 의견을 KRPIA 목소리로 내고 있죠. 이 부분은 예전부터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 꾸준히 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저희가 만든 공통 분모에 국내 제약사가 빨리 들어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해요. 너무 오래 걸리지 않는 시간에 신약을 만드는 국내 회사가 많아지기를 바라고요.

제약업계에서 ESG와 사명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혁신’이에요. 스위스 제약업계가 글로벌 리더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첫째, 정부가 글로벌 기준에 맞춘 정책을 마련했고 둘째,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죠.

혁신 없이는 발전이 어려운 시대예요. 어려운 길이지만, 그 길에 서 있으면 신약 강국으로 가는 문이 열리겠죠. 이 시점에서는 글로벌 회사와 국내 회사의 구분보다는 서로의 협력과 혁신이 더 중요한 가치예요."

 

ESG, 제약사 사명 실현에 필요한 것은 딱 하나 '혁신'

스위스 성공은 '글로벌 기준'에 맞춰 놓고 '규제 완화'

혁신 없이는 생존 불가, 그 길에 있으면 언젠가 신약 강국

더 이상 외국인 한국인, 외자사 국내사 구분은 무의미

 

지금은 ESG 활동이 씨앗을 심는 단계인 것 같아요. 한국에 맞는 ESG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혁신이에요. 혁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무엇이 됐든 혁신적 생각과 제품 중 하나라도 만들지 못하면 더 이상 1등 국가가 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특히 바이오제약은 혁신 없이는 생존할 수 없어요. 우리가 IMF를 경험했잖아요. IMF 기금을 받으면서 4년 동안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했지만, 그 결과 금융 시스템 선진화를 이루어 냈죠. 당시 강제적이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변화였어요.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한국 지사 대표로 발령받으신 분들이 많다고 했는데, 이분들도 '혁신과 균형점'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나요.

"저보다 더 공감하실 거예요. 환자들이 신약을 통해 치료받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모습을 보면 누구나 혁신의 무게감과 깊이를 알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정부 역시 업계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도 나아가는 방향은 '혁신'이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