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전의 폐동맥 고혈압약 '소타터셉트'
성은아 박사 시리즈 칼럼
2024년도 벌써 반이 지났다. 금년 상반기에 가장 화제를 모은 신약은 세계 최초의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로 승인을 받은 레스메티롬(상표명 레즈디프라)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주목을 받은 약들 중에 폐동맥 고혈압에 적용하는 소타터셉트(상표명 윈레브에어)가 있다. 소타터셉트는 기존의 약들과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폐동맥 고혈압약이다.
폐동맥 고혈압은 폐동맥에서의 혈압이 높은 희귀 질환이다. 일반 고혈압과 이름만 비슷할 뿐, 발병하는 기전이나 병의 양상이 전혀 다르다. 혈액이 심장을 통해 폐로 들어가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산소를 보충 받아 다시 심장으로 돌아 간다.
심장은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폐에서 공급받아 전신으로 보낸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경우, 폐동맥이 좁아져 심장에서 폐로 향하는 혈류가 원활하지 않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고, 이는 심부전의 원인이 된다.
폐동맥 고혈압은 폐동맥이 병적으로 두꺼워져서 혈관이 좁아지면서 발병한다. 약물의 개발은 폐동맥 혈관의 수축을 억제하여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증상을 완화하고, 혈관 벽이 두꺼워지지 못하게 하여 병의 악화를 막는 두 가지 주된 목표를 가진다.
최초의 폐동맥 고혈압 약인 에포프로스테놀이 1995년에 나온 이후 20년 동안 10종의 약물이 더 나왔다. 약물의 등장으로 환자의 수명이 현저하게 길어졌지만, 환자의 기대 수명은 건강한 사람에 비해 여전히 짧다. 약물을 사용해도 반응을 하지 않아서 진단을 받은 후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들도 상당하다. 폐동맥 고혈압은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미충족 수요 (unmet needs)가 많은 질환이다.
소타터셉트는 거의 10년 만에 새로 나온 폐동맥 고혈압 약이다. 지금까지 나온 약들은 주로 혈관 확장을 통하여 증상을 완화한다. 소타터셉트는 기존의 약물과 비교하여 폐동맥 고혈압의 발병 과정에 보다 근원적으로 개입한다. 임상시험에서 증상을 개선하고 병의 진행을 늦추었으며 안전성의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약물이 폐동맥 고혈압 치료에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하는 이유이다.
소타터셉트는 액티빈 수용체2의 활성을 억제하는 생물학적 제제 약물이다. 건강한 사람의 폐동맥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에서는 액티빈 수용체2(ActR2A)를 통한 신호 전달과 BMP 수용체2(BMPR2)를 통한 신호 전달이 상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증식을 조절한다. 환자의 경우, 혈관 세포에서 이 균형이 깨져서 혈관 벽의 변형이 일어난다. 소타터셉트는 이 균형을 재정비하며, 결과적으로 혈관 벽을 구성하는 세포의 과도한 증식과 염증을 조절하여 병의 진행을 억제한다.
소타터셉트의 개발은 BMP 수용체2의 변이가 폐동맥 고혈압의 발병과 관련이 있음이 알려지면서 비롯되었다. 폐동맥 고혈압이 유전적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 환자에게서 BMP 수용체2에 변이가 있음이 2000년에 알려졌다.
가족력이 없는 환자에서도 이 유전자의 변이가 높은 빈도로 발견되면서, BMP 수용체2가 폐동맥 고혈압 약물 개발의 타겟으로 등장했다. BMP 수용체2를 직접적으로 조절하는 약물의 개발이 시도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으며, 액티빈 수용체를 조절함으로써 BMP 수용체2의 활성을 간접적으로 조절하는 약물인 소타터셉트가 개발에 성공했다.
폐동맥 고혈압은 유전적 인자와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병한다. 유전적 위험인자가 있다고 하여 모두 폐동맥 고혈압에 걸리지 않지만 환경적 요인에 노출될 때에 더 취약하다. 요즘 오젬픽/위고비로 대표되는 비만치료제의 수요가 높은데, 1990년대에도 이에 버금가는 대중적 인기를 누린 비만약 펜펜이 있었다.
이 약물을 복용한 사람들에게서 폐동맥 고혈압 발병이 보고되면서 펜펜이 시장에서 철수되었다. 이들 환자들 중에서도 BMP 수용체2 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BMP 수용체2에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변이가 없는 사람에 비해서 짧은 기간 약물에 노출되었는데도 발병했다고 알려진다.
펜펜 이전인 1967년에도 유럽에서 비만약 아미노렉스를 사용한 사람들에게서 폐동맥 고혈압이 집단으로 발병했다. 펜펜과 아미노렉스 모두 세로토닌 신호 전달과 관련이 있는 약물들이다. 역으로, 세로토닌 신호 전달 경로를 조절하여 폐동맥 고혈압을 치료하려는 약물 개발이 여러 종류 진행되지만 아직 성공한 사례는 없다.
폐동맥 고혈압은 희귀 질환이지만 병의 진행과 관련된 바이오마커들이 다수 알려져 있으며, 이들을 타겟으로 하여 다양한 기전의 약물 개발이 활발하다.
소타터셉트의 임상시험은 폐동맥 고혈압으로 진단을 받은 후 여러 해 동안 생존하면서 기존의 약물로 치료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행되었다. 환자들은 기존의 약물 요법을 계속하면서 부가적으로 소타테셉트 투여를 받았다.
임상시험에 근거하여 소타터셉트는 병이 많이 진행된 환자들에게 기존의 치료제와 함께 병합 요법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초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1차 치료제로 사용될 잠재력도 높다. 병의 진행을 늦추는 약물로서 폐동맥 고혈압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약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항암 표적치료제의 가격을 상회하는 높은 약가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에 할 수 있는 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