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증별 약가 긍정적 분위기...해외선 키트루다, 듀피젠트 합리적으로 봐"
면역항암제·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적응증 확대 단일 약가 유지 시 고가약 접근성 개선 부정적
[팜뉴스=김민건 기자] "정부 내부적으로 적응증별 약가산정 논의를 했으며 긍정적 의견을 가진 것으로 안다."
이달 1일 서동철 의약품정책연구소 소장(약업경제학박사)은 다국적제약사 출입 모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적응증별 약가산정(Indication-based Pricing, IBP)은 의약품의 실제적인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가치기반 약가산정(Value-based Pring, VBP)을 한층 더 세분화 시킨 개념이다.
해외는 IBP를 기존 단일 약가 대비 합리적인 방식으로 여겨 사용 중이라는 게 이날 서 소장의 설명이었다.
단일 약가 정책은 A라는 의약품이 상업화 허가 과정에서 가장 먼저 획득한 적응증을 기반으로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관행적으로 그 이후 적응증을 추가할 때마다 기존 약가를 인하하며, 제약사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분석한다.
제약업계에서는 동일 의약품이어도 적응증별 기대하는 치료 효능, 효과와 시장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단일 약가 정책이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최근 멀티 인디케이션(Multi-indication) 적응증이 활발한 영역이 면역항암제와 자가면역 염증질환 치료제다. 신체 면역 체계를 이용하는 의약품 기전 특성상 적응증을 무궁무진하게 적용할 수 있다.
고가 치료제들이 적응증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어떻게 가격을 적용할 것인지가 고민이 되면서 IBP 도입이 지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서 소장은 해외 정부가 아토피 등 자가면역 질환에 처방하는 듀피젠트(두필루맙)와 국내에서만 13개 이상 적응증을 확보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의 혁신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적응증이 늘어나도 약가를 인하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영국 정부 한계 접근한 키트루다 가중평균가, 이탈리아는 듀피젠트 혁신성 인정
적응증별 약가산정에도 방식이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 미국 등 소위 말해 제약선진국에서는 적응증별로 약가를 각기 다르게 하고 있다. 이들은 약가를 어떻게 측정할까.
크게 전체 적응증에 대한 가중 평균치 단일 약가를 적용하는 방법과 환급율에 차등을 두는 두 방식이 있다. 서 교수는 "해외에서는 새로운 적응증이 생기면 예측되는 환자와 사용량을 감안해 가중 평균치를 적용하는 나라가 많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추후 사용량을 보고 환급률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을 쓰거나, 두 방식을 상황에 따라 혼용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2015년 처음 발매된 MSD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가중 평균치를 가지고 사용한 사례다. 키트루다는 유럽에서 20개 적응증을 승인받았으며 이는 2018년 영국 국가보건의료시스템(NHS)이 정한 한계 예산인 2000만파운드(약 330억원)를 넘는 첫 번째 약제였다.
영국 정부는 비용 효율성을 감안해 이 이상 약가는 부담을 느꼈다. MSD와 NHS는 현재와 앞으로 추가를 예상하는 키트루다 적응증을 고려해 가중평균 혼합 약가를 정했고, 이후 적응증 협상에서는 이러한 가중 평균값을 이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 다른 사례는 사노피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듀피젠트(두필루맙)다. 듀피젠트는 2018년 이탈리아에서 성인 아토피 적응증에 혁신적 지위를 인정받아 첫 번째 환급을 받았다. 이후에도 혁신적 지위를 인정하고 3년 후 재협상하기로 했다.
이 기간 듀피젠트는 중증 천식 또는 비용종에 적응증을 확대했고, 3년 후인 2020년 12월 이탈리아 의약품청(AIFA)과 두 번째 보험약가 협상에서도 아토피 치료에 혁신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이탈리아 정부와 사노피는 듀피젠트 적응증이 늘어났지만 혁신성을 인정해 약가 인하가 아닌 유지를 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후 AIFA는 후속 적응증에 의무적인 가격 인하를 면제하고 듀피젠트를 혁신 약물 목록과 지역 처방 목록집에 포함시키는 등 제약사에 혜택을 줌으로써 다양한 조건에서 맞춤형 치료 접근성 개선 노력을 이어갔다.
서 소장은 "IBP를 도입하면 첫 째는 환자 치료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고, 적응증별 가치에 따라 적절한 약가를 책정하기에 환자와 정부 입장에서 불만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제약사 입장에서도 (신약 개발 성공) 불확실성을 줄여 R&D를 통해 새로운 영역에서 적응증을 찾아낼 수 있다"며 "만약 초기에 중요하지 않은 적응증에 낮은 약가를 받으면 신약 개발 동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제약사 관계자·정부 "긍정적" 답변
이날 발표에서 유럽 16개국 제약사 관계자 대상으로 IBP 도입 관련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내용을 보면 응답 제약사 95%가 "긍정적이다"고 답했으며, 보험자(65%)와 규제당국(한국의 경우 심평원, 83%)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을 보였다. 전체 응답자 70%는 "IBP 도입으로 환자의 신약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생가한다"고 답했다.
이후 실제 멀티 인디케이션을 가진 항암제 약가 산정 관련해 스위스와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 해외선진 제약국을 대상으로 IBP 도입 사례를 분석한 결과, 처음에는 약가가 오를 것으로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게 서 소장의 설명이다.
서 소장은 "실제 조사에서 보면 스위스는 가격 인상은 필요하지만 그렇게 (약가가) 오른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영국도 NICE 요구 사항 협의를 통해 출시 이후 약가를 올린 경우가 없었다"며 "독일과 프랑스는 일부 약제에 적응증을 추가할 때 IBP 도입으로 가격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서 소장은 "미국에서는 약가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보험 의약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PBM 회사와 비밀리에 리베이트 협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한 사례를 아직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IBP 도입 위해 '국민적 공감대 형성 필요'
IBP를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사전 정지 작업이 요구된다. 특히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분위기다.
서 소장은 "IBP 도입을 위해서는 환자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사후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제약사와 정부가 서로 공유해야 한다"며 "지금도 고가 항암제 일부는 선등재 후평가를 하고 있는데 실제 데이터 분석에 상당히 까다로운 면이 많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 "처방 왜곡을 최소화하는 제도적 장치와 행정 비용이 요구된다"며 "특히 환자 입장에서 똑같은 약을 사용했는데 적응증이 다르다는 이유로 본인부담금에 차이가 나는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