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으러 해외 떠나는 한국인, 루타테라가 뭐길래 2만명 넘게 응원하나
연간 투약비 1억원에 치료 횟수도 제한 독일, 말레이시아, 인도 등 살길 찾아 떠나 "횟수 폐지하고 초기부터 사용 가능해야"
[팜뉴스=김민건 기자] 의료선진국 대한민국 국민이 돈이 없어 해외 원정 치료를 받고 있다. 정확히는 돈이 있어도 맞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치료 횟수가 제한된 탓에 더 이상 쓰고 싶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신경내분비종양에 효과가 있는 특정 치료제를 사용하기 위해 해외 원정 치료를 가고 있다.
7일 한국신경내분비종양 환우회 회장은 국민동의청원에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약 루타테라에 대한 치료 횟수 제한 철폐 및 적용 확대'를 제기했다.
신경내분비종양 환우회에는 4065명이 가입돼 있다. 이들은 건보 적용이 되는 6회 치료까지만 국내에서 받고 있으며 이후에는 독일, 말레이시아, 인도 등으로 해외 원정 치료를 가고 있다. 환자와 가족들은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통해 타국의 국경을 넘고 있다.
청원인은 "내분비종양 치료에 사용하는 루타테라는 급여 4회, 비급여 2회 등 최대 6회까지 급여가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어 추가 치료가 필요한 경우 국내에서는 치료받지 못하고 횟수 제한이 없는 다른 나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청원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암환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일이 없도록 투치료 횟수 제한을 폐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청원인은 초기 치료부터 루타테라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국내에서 루타테라는 위장관 신경내분비종양 3차 치료,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은 4차 치료에 쓰인다. 즉, 초기 치료가 아닌 앞서 3~4회 다른 약물을 사용하다 효과가 없을 때야 쓸 수 있다. 이 경우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초기에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예후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청원인은 "전문의들도 루타테라는 종양이 작을수록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소견이 많고, 환우회 개개인의 치료 경험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전문의와 유사하다"며 "종양이 가장 작은 상태에서 1차 또는 최소한 2차 치료제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많은 나라에서 초기 치료제로 사용 중이고 최근 루타테라 치료 확대 목적 임상에서도 1차 치료제로 3상을 마쳤다"며 "그 결과 또한 대조군에 비해 무진행생존기간이 3배이상 월등히 높은 것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 루타테라 치료를 어렵게 하는 요인은 더 있다. 급여 삭감이다. 청원인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20년 식약처 승인 전 해외에서 루타테라와 유사한 루테슘 4회 치료를 받은 환자는 국내에서 루타테라 치료 불가로 간주해 급여를 삭감했다"며 "그 결과 식약처 승인 전 해외 치료를 받은 환자는 다시 해외 치료를 떠나야 할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외국에서는 주치의 혈액 검사 등을 통해 루타테라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환자는 치료 횟수 제한 없이 투약 가능하다는 게 청원인의 주장이다.
▶국민 2만 명이 함께 응원, 대조군 대비 생존기간 1년 더 연장
해당 청원은 7일 오후 5시 40분까지 2만9423명이 동의해 동의율 58%를 기록했다. 2만 명이 넘는 국민이 치료 횟수 제한 폐지를 응원했다. 과연 루타테라가 어떤 약이길래 3만 명에 가까운 참여가 이어졌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치료제 대비 1년 이상 더 긴 생존기간을 보이는 약이기 때문이다.
우선, 신경내분비종양은 신경 세포 또는 호르몬 생산 세포와 유사한 신경내분비세포에 종양이 생기는 질환이다. 이 종양은 질병 특성상 신체 어떤 곳에서도 발생 가능하지만 위장관과 췌장 신경내분비종양(Gastroenteropancreatic Neuroendocrine Tumor, GEP-NET)이 전체 신경내분비종양 70%를 차지한다.
증상은 매우 다양하며 진단까지 5~7년이 소요된다. 희귀암이기 때문에 6명의 전문의로부터 진단을 받는 방랑을 하기도 한다. 진단이 이처럼 늦어지기 때문에 환자들의 60~70%는 국소 진행과 원격 전이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생존 여명은 6개월에 그친다. 앞서 청원인이 초기 치료부터 루타테라를 쓰게 해달라고 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타테라는 위장관,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치료(GEP-NET)에 전 세계 최초로 승인된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adioligand therapy, RLT)로 암세포 표면에 소마토스타틴 수용체(somatostatin receptor, SSTR)에 결합, 표적 암세포만 방사선을 조사해 죽이는 펩타이드 수용체 방사성핵종 치료(Peptide Receptor Radionuclide Therapy, PRRT) 기전의 치료제다.
지난 2020년 7월 국내 허가를 받고, 2022년 3월 절제 불가능하고 분화가 좋은 소마토스타틴 수용체 양성의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위장관 신경내분비종양 성인의 3차 이상,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성인의 4차 이상 치료에 급여가 적용 중이다. 하지만 청원인 주장대로 급여 4회와 초과 사용 시 비급여 2회를 포함해 총 6회 치료로 제한된다. 반면 루타테라 연간 치료비는 약 1억원으로 고가이다.
루타테라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한 연구는 NETTER-1 임상이다. 이 연구에서 루라테라 투여 환자는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에 도달하지 않을 만큼 효과가 있었지만 대조군인 고용량 지속성 옥트레오타이드 투여 환자는 8.4개월을 기록했다. 루타테라는 대조군 대비 질병 진행과 사망 위험을 82% 낮출 수 있었다.
객관적반응률(ORR)도 대조군과 차이가 있었다. 루타테라 투여군은 18%인 반면 대조군은 3%에 그쳤고,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은 루타테라 투여군이 48개월(37.4~55.2개월)이다.
루타테라 치료군의 객관적 반응률(ORR)은18%로 대조군의 3% 대비 약 6배 가량(p<0.001) 증가했다. 전체 생존기간(OS) 중앙값 역시 루타테라 치료군에서 48개월(4년)인 반면 대조군은 36.3개월(3년)로 1년의 차이가 벌어졌다. 이 연구에서 의미있는 부분은 종양 크기, 즉 병기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무진행생존기간을 연장함으로써 효과적인 치료를 기대케 했다는 점이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결혼 1년 만에 아내가 신경내분비종양을 앓게 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29살 와이프의 남편이라는 글쓴이는 "현재 수술로 완치 가까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향후 전이가 생길 경우 항암제가 없고, 방사선 의약품은 치료 횟수에 규제가 걸려있어 해외로 나가거나 돈이 없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