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컬럼]현실 외면한 공정규약 세부규정
메이커 의사접대 수준 알고 작성했나?
각종 부당 거래로 불공정거래의 산실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약업계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정경쟁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제약협회가 마련한 공정경쟁규약 세부지침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과연 공정거래 풍토조성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제약협회는 작년 12월 18일자로「의료보험용 의약품의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을 개정하고 회장단 사로부터 갹출한 직원을 중심으로 공정경쟁협의회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그 동안 세부규정을 마련해 왔다.
이렇게 마련된 세부규정이 지난 27일 전체 제약사를 대상으로 설명회에서 공개됐다. 이번에 마련된 공정경쟁규약 세부내용은 공정거래 풍토조성이 구호에만 불과한 우려감마저 낳게하고 있다.
실무위원회가 밝힌 세부규정을 보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과연 불공정거래를 단속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게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약사들이 의약사를 대상으로 자사제품 설명회 등에서 제공하는 식음료나 기념품 접대비용을 1인당 5만원 내외로 제한했다.
그러나 현재 제약사들이 의사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식대비 기본이 5만원을 초과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영업사원이 의사를 일식집이나 호텔 중식당 등에서 코스로 접대하는 것이 일반화 됐는데 이들 비용이 과연 5만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한 의사들에게 제공하는 기념품이 순금 1돈 짜리 핸드폰 액세서리를 비롯해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식음료비용과 기념품비용을 5만원만 인정한다는 것은 모든 제약사의 판촉행위를 처벌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세부조항을 만들어 놓고 단속하지 않겠다는 의지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샘플제공과 관련, 제약사들은 의사들이 요구할 경우 신제품 샘플을 수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씩 제공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1회에 한해 최소단위로 제공만 허용한다고 규정했다. 최소단위가 한 개를 의미하는 것인지 수십개까지 의미하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더욱이 학술목적으로 제공되는 학술용 의약관련 서적이나 소액의 물품, 기계 및 기구를 30만원만 허용한다고 밝혔다. 세부규정 작성자들은 외국에서 발행하는 유명 서적이나 저널 등의 구독료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 같은 규정을 마련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실무위원들은 일본이나 미국 등 각국의 규정을 참고해 고심 끝에 세부지침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규정을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우리의 현실에 접근해야 한다.
제약협회 설명회에 참석한 업계관계자들은 현실성이 결여된 세부규정이라며 이 같은 잣대로 단속하면 걸리지 않을 메이커가 한 곳도 없다고 한탄했다.
주말이면 의사를 대상으로 한 제약사들의 골프접대가 줄을 잇고 동남아 여행에는 코방귀도 끼지 않으면서 유럽이나 미주 행을 요구하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 제약협회가 마련한 공정경쟁규약 세부규정은 한마디로 졸속이다.
제약사들이 마치 불법거래의 온상인양 사회적인 불신이 팽배했음은 물론 현재 모 제약사가 의료기관에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등 그야말로 약업계는 위기 그 자체이다. 의약분업이 전면 실시되면서 의약품 처방을 둘러싼 제약사와 의료기관간의 밀착이 더욱 심화돼 분업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쟁에서 다소의 불공정거래행위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라도 약업계에 만연된 부당 거래 청산을 위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지 않으면 약장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한 우리의 현실을 반성하고 공정경쟁규약을 철저히 준수해야하는데 그 단속의 기준이 되는 세부규정이 이래서야 어떻게 공정경쟁 풍토를 조성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