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당국이 발표한 코스닥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한 공시가이드라인을 접한 제약·바이오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시 투명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의 취지는 공감하고 환영할 만한 사안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시 규제강화라는 이유에서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지난 10일, 코스닥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해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포괄공시는 기업이 규정상 의무 외 모든 ‘중요한’ 정보에 대해 자율적 판단에 따라 공시해야 하는 사안이다. 기본적으로 공시의무비율기준은 영업과 생산 및 재무와 관련해 매출액 또는 자기자본의 10% 이상이면 중요한 거래로 보고 공시를 해야 한다.

거래소는 앞서 지난 2016년 포괄조항 공시가이드라인을 제공했지만, 지난해 코오롱생명과학, 헬릭스미스 등 코스닥 바이오 기업들의 잇따른 임상 실패 논란이 불거지면서 제약·바이오와 같이 특화된 업종에 제공하는 공시가이드라인 안내로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거래소와 금융당국으로 하여금 제약·바이오 기업에 맞춤형 가이드라인이라는 일종의 ‘칼’을 들게 된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약·바이오에 대한 통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실제로 거래소는 지난해 식품의약안전처와 제약·바이오 공시 등에 대한 정보교환(임상정보 등) 협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계기관의 제재 조치를 병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금융위는 제약·바이오주 관련 불공정거래도 감시를 강화한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금융위와 식약처는 2018년 9월 상호정보교환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출처 : 한국거래소 코스닥 제약바이오 포괄공시 가이드라인 요약표

새로 공개된 가이드라인은 크게 임상시험, 품목허가, 기술도입(이전), 국책과제와 특허권 계약에 관한 구체적 사례와 지침으로 기업이 향후 공시해야 할 기준 잣대로 작용하게 될 전망이다.

부각된 핵심 논점은 투자자가 공시를 보고 오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례로 임상시험 결과를 공시할 때는 ‘임상시험 성공’이란 표현이 금지된다. 대신에 통계적 유의성 확보 등 개관적 정보를 기술해야 한다. 또 규제기관의 임상시험계획(IND)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사용한던 ‘임상시험 승인’ 대신에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표기해야 한다. 그런데, 알려진 내용과는 다르게 가이드라인을 면밀히 뜯어다 보면 실제 기업이 적용하기에는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공시에 관한 개선 연구가 많이 이뤄진 것 같다. 포괄적 공시 가이드라인이 기업을 투명하게 만드는데 일조할 것 같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반면, 코스닥 바이오사 한 관계자는 “바뀌는 가이드라인은 예전 지침과 비교하면 훨씬 강화된 측면이 있다. 또한 사례가 너무 세분화되어 있고 복잡하다. 다른 공시 규정도 많은 상황에서 회사 내부 인력상 이를 정확하게 수용하면서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혹 실수라도 해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낙인찍힐까 두렵다”라고 우려했다. 규제강화가 소규모 바이오텍 기업들의 목줄을 옭맨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 까닭이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공개된 제약바이오 카테고리에 나와 있는 공시항목은 투명성에 있어서는 환영할 부분이지만, 구체적 내용을 보면 기업의 사업수행 세세한 부분까지 꼭 공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이를 적용할 경우 기업의 영업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의 분위기다. 공시의 폭을 좀 더 완화시켰으면 한다“라고 제언했다.

실제로 공개된 가이드라인 초안은 35페이지 분량[기사하단 별첨 참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코스닥 제약바이오사가 포괄조항에 의한 공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예고하고 있다.

코스닥은 공시를 기한 내 미신고하거나 변경 또는 공시번복을 하는 경우 거래소로부터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되고 더하여 벌점을 받고 있다. 벌점이 쌓이면 코스닥 기업은 코스피 기업과는 달리 공시 벌점으로도 상장폐지까지 당할 수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임상시험이나 품목허가, 기술이전 등 R&D 파이프라인과 관련한 리스크에 대해 시장 참여자들을 위한 ‘주의 문구’를 삽입하도록 한 지침은 공감이 간다. 다만,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판단여부를 진행과정에서 시시각각 전달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신약개발 진행정보 중 일부는 시장 점유를 위한 촌각을 다투는 내용으로 경쟁사에게 알릴 수 없는 기업의 기밀이지만 이를 공개해야 하는 상황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회사의 파이프라인 또는 기술이전 계약상 기밀유지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시를 세부적으로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현재도 사전에 거래소와 협의하고 있으며 공시유보를 기업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다만 거래소는 회사의 말만을 듣지 않고 계약서 내용에 기밀유지에 대한 내용을 확인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업계가 볼멘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선진국 거래소에서는 공시부담을 낮추는 규제 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해보면 국내 시장은 규제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중요한 임상시험 정보 등이 해외 경쟁사보다 빠른 정보누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시장침투 속도가 중요한 신약 경쟁력에서 경쟁악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관계자는 “글로벌 거래소들은 혁신 기업이나 중소기업들에 대해 공시 부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과 비슷한 미국 나스닥은 규제 완화를 목적으로 한 개선 법안이 작년에만 수차례 미국 의회를 통과했고 공시 부담도 줄어들고 있다. 또 실리콘밸리거래소(LTSE)의 경우도 실적공시를 1년에 한 번만 하는 등 상장 공시부담을 낮춰, 기업 성장에 걸림돌을 제거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2012년 잡스법(JOBS Act)을 발표하고 증권거래법에 의한 공시 규제를 완화시키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특허권이나 국책과제 공시와 관련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특허권이나 국책과제는 공시가 불필요하다고 봤다. 여기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앞서 말한 자기자본 10%이상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는 중요하지 않으면 투자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시하지 말라는 의미다. 다만, 공시비율 요건을 떠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면 자율 공시는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업계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미 사업보고서와 분기보고서 등에 정리돼 공시 되고 있는 만큼 중복 공시의 번거로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규허가 대상 품목에 관한 범위도 ‘신약’만으로 한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거래소 관계자는 “품목허가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약이 중요한 만큼 바탕이 되겠지만 꼭 신약으로만 한정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만약 신약으로만 한정되지 않으면 다수 품목 신청에 대한 공시 남발의 문제가 발생한다. 신규 품목허가이기 때문에 중요성(자기자본 10%지표)이 부여될 수 없고 회사가 자체 판단에 따라 품목 가치의 중요성을 판단해 공시해야 한다.

향후 가이드라인에 대한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코스피 제약바이오 기업까지 확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코스닥 제약바이오 공시 가이드라인 범위가 코스피 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앞으로 코스닥 시장에서 가이드라인이 운영되는 것을 모니터링한 후 필요성에 대해 검토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시 가이드라인이 장기적으로 코스피를 포함한 제약·바이오 업계 전반에 걸쳐 확대 될 것으로 점쳐진다.

한편, 당초 거래소에서 2월내 열릴 예정이던 코스닥 제약·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가이드라인 설명회는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 사태가 발생한 상황에서 업계의 결산 시즌도 겹치는 만큼 담당자의 부담을 덜어 주고자 한다. 단체 설명회 개최는 일단 유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현재도 개별적 대응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언제라도 문의 해 달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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