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난소암 치료제 ‘제줄라’에 대한 급여범위를 확대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간절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급여 혜택을 줄 만큼의 근거가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줄라에 ‘숨은 1인치’가 존재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2017년 다케다제약의 난소암 치료제 ‘제줄라(니라파닙)’를 BRCA(BReast CAncer susceptibility) 유전자 변이 여부와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PARP 억제제로 시판을 허가했다. 난소암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게 승인의 이유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제줄라를 최근 2차 이상의 백금기반 항암화학요법에 완전·부분 반응한 백금민감성 재발성 고도장액성 난소암(난관암 또는 일차 복막암 포함) 성인 환자의 단독 유지요법으로 허가했다. 제줄라는 12월 1일자로 발빠르게 급여 문턱을 통과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 게시판에는 제줄라의 급여범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 A 씨는 “BRCA 유전자가 없는 난소암 환자들에게도 보험급여가 적용될 줄 알았다”며 “제줄라는 BRCA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환자들의 재발 위험을 낮춰주는 것으로 임상 시험도 성공한 유일한 약이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보건 당국은 제줄라를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만 건강보험 급여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며 “난소암 환자 중 BRCA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는 약 9% 정도밖에 되지 않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줄라는 FDA 승인 당시 553명의 난소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3상 임상에서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의 무진행생존기간(PFS)이 21개월로 위약군과 대비해 병의 진행 및 사망 위험을 74%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변이가 없는 환자의 경우 제줄라는 9.3개월로 위약군의 3.9개월과 비교해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55% 감소시킨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보건 당국은 제줄라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대상을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난소암 환자로 제한하면서 정작 다수의 난소암 환자들이 급여 혜택을 받았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게 청원인의 의견이다. 이 청원은 12월 11일 현재 추천수 3만 건에 육박할 정도로 이목을 끌고 있다.

대부분의 난소암은 후천적으로 발생하지만 5~10% 가량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BRCA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이것이 배선 돌연변이(germline mutation), 즉 자식에게 유전되는 돌연변이로 인한 발병이다.

후천성 난소암은 출생 후 살아가면서 생길 수 있는 체세포 돌연변이(Somatic mutation)와 관련이 있다.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제줄라를 생식세포(germline) BRCA 변이에 한정해 급여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심평원의 결정은 타당한 걸까. 앞서의 3상 연구에는 ‘숨은 1인치’가 존재한다.

심평원이 급여 결정 자료로 제시한 3상 연구에 참여한 환자 553명 중 203명은 생식세포(germline) BRCA 돌연변이(gBRCAm)를 가진 환자였다. 나머지 350명은 생식세포(germline) BRCA 돌연변이가 없는 환자였다. 연구진은 350명을 상동 재조합 결핍(HRD) 여부에 따라 분류해 임상을 탐색적으로 진행했다.

즉 HRD 양성이면서 somatic BRCA 변이가 있는 군, HRD 양성이면서 somatic BRCA 변이가 없는 군, HRD 자체가 없는 군으로 나누었다.

제줄라와 같은 PARP 저해제는 상동재조합 복구과정을 통해 세포 내 DNA 손상을 유도하고 증가시킨다. 이미 상동재조합결핍을 갖고 있던 암세포는 DNA를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스스로 DNA에 과다한 손상을 입혀 사멸한다. 고도장액성 난소암 환자에서는 gBRCAmut ~17%를 포함해 50% 가까이 HRD를 보이는데 이같은 환자군이 PARP 저해제 적용대상이다.

BRCA는 반복적인 DNA 요소가 많다는 점 때문에 체세포에서도 변이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체세포 돌연변이로 난소암이 발병한 환자의 경우 후천적으로도 BRCA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이 나머지 생식세포 BRCA 돌연변이가 없는 350명의 환자에 대해 HRD 양성과 음성 여부에 따라 연구를 진행한 이유다.

문제는 나머지 350명에 대한 하위분석이 ‘탐색적인’ 접근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엄밀히 말해 탐색적 접근은 탐구요소다”며 “효과성을 인정할 수 있어도 과학적 근거 수준이 약할 수밖에 없다. BRCA 유전자 변이 여부와 상관없이 광범위한 환자군에 급여 혜택을 주려면 HRD 음성군에 참여한 환자 숫자가 중요한데 3상 논문에는 환자 수가 적다. 하위분석이 통계적 유의성을 입증할 만큼의 근거가 적다는 뜻이다”고 지적했다.

즉 생식세포 BRCA 변이로 난소암이 발병한 환자들이 아닌 경우까지 급여 혜택을 줄 만큼, ‘비용효과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

실제로 심평원은 germline BRCA 변이가 없는 환자군에 대해 탐색적 분석결과(exploratory analysis)만으로 급여범위를 설정하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해 추후 추가적인 자료가 제출되면 재논의하기로 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단순히 브라카 변이 유무에 따라 급여기준을 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즉 설계 기준 단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브라카 변이가 없는 부분에 대해 급여 혜택을 줄 만큼 약효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케다 역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다케다 관계자는 “국민청원 내용은 물론 많은 환자분과 가족, 임상의들이 생식세포 BRCA 변이가 없는 환자들에게도 급여가 적용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며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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