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데스밸리(Death Valley)’는 창업이후 시장진입에 성공하지 못하고 퇴출되는 ‘죽음의 계곡’에 해당하는 기간을 말한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전임상 시험 통과는 ‘죽음의 계곡’으로 비유될 정도로 혹독한 관문으로 통한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전임상 단계의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신약 개발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전임상과 1상을 중개할 수 있는 의과학자 육성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약 개발 과정은 ‘기초탐색 및 원천기술연구 과정 → 개발후보물질 선정 단계 → 전임상(비임상)시험 단계 → 임상시험(Clinical Trial)과정 → 신약 허가 및 시판 순’으로 진행된다. 길고 험난한 여정을 거치기 때문에 신약개발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대명사로 불린다.

신약 개발기간은 일반적으로 약 7~15년 내외(평균 13.7년)다. 신약 개발 성공률(최종 품목허가까지 성공비율)은 임상 1상 5%, 2상 12%, 3상 54%다. 이마저도 전임상 성공 확률은 3%에 불과하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전임상 단계를 ‘데스밸리’로 일컫는 이유다.

전임상은 사람을 대상으로 후보물질을 투여하기 전에 세포나 동물 모델 실험을 통해 독성,부작용 등을 확인하는 단계다. 신약개발의 성공률은 1만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물질이 전임상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면 성공률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데스밸리’을 뚫을 수 있는 국내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 업계의 주된 평가다. 전임상 단계에서의 독성과 부작용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는 ‘중개연구(Translational R&D)’ 전문가, 즉 의과학자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약업계 관계자는 “동물실험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특히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동물실험을 한 뒤 사람에 대한 가능성을 추정하는 영역에서 의과학자가 굉장히 부족하다. 대형 제약사들은 물론 바이오기업들의 신약개발이 초기부터 난관에 부딪히는 까닭”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그동안 정부의 의과학자 육성이 미비한 지원으로 인해 ‘생색내기용’ 사업에 그친 결과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는 고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의과대에 몰리는 현실을 감안해 바이오산업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초의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의과학자 육성 지원 사업’을 벌였다.

조정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5년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의과학자 육성 지원 사업현황’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지원 대상자 142명에게 79억원의 국가예산이 지원됐다. 하지만 국가 지원을 받고 졸업한 61명 가운데 44.3%인 27명이 졸업 후 진로를 이탈했다. 의사 개업을 하거나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나타난 것.

하지만 학계에서는 ‘중개연구’를 위한 의과학자 육성이 신약 개발의 최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키’를 쥐고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들리고 있다.

신약 개발 컨설팅 업체인 인츠바이오의 남수연 대표(현 지아이이노베이션 대표)는 2017년 8월, 대한의학회에 게재한 ‘중개연구 실현 위한 의과학자(Physician Scientist)의 역할’ 제목의 기고에서 “제한적인 임상 환경에서 Go/No-Go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인 허가요건인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적절한 질환동물모델에서 잘 검증된 생체 인자들의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이러한 생체 지표인자들의 탐색과 검증은 신약 개발 초기 단계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초기 임상시험(1상및2상)에서 관찰한 PK-PD(약동학-약력학) 관계를 통해 3상 임상에서 평가할 치료용량을 설정하는 데도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임상과 1상을 중개할 수 있는 의과학자가 전체 신약 강국을 위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지적이 들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동물실험을 해석하고 초기임상에 적용하는 과정은 의사의 영역이지만 국내 의사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며 “의대는 의사들에게 동물실험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반대로 수의과대학은 동물에서의 결과를 환자에게 어떻게 적용할지를 배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과학자이면서 의사, 즉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전임상, 사람에게 투여하는 초기임상에 대한 전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의과학자를 육성해야 한다”며 “의과학자들이 제약사에 들어가서 신약 개발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약 강국은 요원한 미래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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