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모으던 신약들이 올해 잇따라 좋지 못한 임상 결과를 내놓으면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위축된 상태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악재 뒤에는 호재도 뒤따르는 법. 국내 신약 R&D 역량에 대한 부정적인 물음표가 유독 커 보이는 현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기대를 품게 만드는 신약들이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과연 이 신약들이 현재 업계 전반에 퍼져있는 비관론을 떨쳐내고 반등의 발판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본지는 2020년에 있을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품목허가나 임상 3상에 진입 또는 완료가 예상되는 주요 R&D 이벤트 가능성을 따져봤다. 이 중 일부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신약 파이프라인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 韓 신약의 ‘자존심’ 한미, 내년 신뢰 회복 선봉장

한미약품의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Rolontis)’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지난해 말 한미약품의 미국 파트너사인 스펙트럼이 롤론티스의 시판허가(BLA) 신청 서류를 FDA에 제출했지만 이를 자진 취하했다. FDA가 추가자료(CMC)의 보완을 요구했기 때문. 하지만 최근 회사가 FDA에 시판허가 서류를 다시 제출하며 주목받고 있다.

만약 롤론티스가 품목 허가를 받는다면 체내 바이오의약품의 약효 지속시간을 늘려주는 한미약품의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된 첫 바이오신약이 되는 것은 물론 기술수출 품목 가운데 최초로 매출 로열티를 받는 품목이 돼 그 의미가 클 것으로 보인다. 또 롤론티스 품목 허가에 따라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된 다른 파이프라인의 가치도 재평가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

현재 롤론티스의 강력한 경쟁 상대는 암젠의 ‘뉴라스타’다. 지난해만 45억3,000만달러(약 5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글로벌 블록버스터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따라서 롤론티스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본격 시판에 나선다면 한미약품의 매출 확대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또 지난 2011년 미국 아테넥스에 기술수출한 경구용 유방암 치료제 ‘오락솔(Oraxol)’도 내년 1분기 FDA에 품목허가 신청서 접수가 유력할 것이란 관측이다.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당뇨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의 글로벌 임상 3상은 내년 하반기에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기사회생’ 에이치엘비, 단일 파이프라인 취약성 보완 ‘총력’

에이치엘비는 지난 6월 미국 임상 3상에서 ‘리보세라닙(Rivoceranib)’의 전체생존기간이 기존 허가 받은 약물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전해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 10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에서 ‘Best of ESMO 2019’에 선정되며 기사회생, 다시금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회사측은 이를 바탕으로 내년 4월 중으로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10~12월에 시판 승인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이치엘비는 리보세라닙의 적응증을 지금의 위암 3, 4차 치료제에서 향후 대장암, 폐암 등 5개 암종으로 확대하고 항암 분야의 후보물질을 적극 도입해 지금의 단일 파이프라인 구조의 취약성을 보완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위암이 아시아권과 달리 미국에서 희귀암종으로 분류돼 있고 연간 신규 발생 환자가 2만5,000명에 불과해 리보세라닙이 3, 4차 치료제로 승인을 받아도 연매출이 당초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란 부정적 전망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혈액제제 명가 녹십자, 중국 희귀약시장 공략 ‘청신호’

녹십자는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Hunterase)’가 지난 9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으로부터 우선 심사 대상으로 지정, 중국 시장 출시에 한 발 더 다가갔다. 중국 내 허가와 상업화는 지난 1월 수출 계약을 맺은 캔브리지가 맡고 있다. 또 지난 5월 품목 허가를 신청한 혈우병치료제 ‘그린진에프(GreenGene F)’ 역시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헌터증후군이 남아 15만여 명 중 1명 비율로 발생하는 선천성 희귀질환으로 현재 치료옵션이 마땅치 않은 만큼 내년 중국 최초 헌터증후군 치료제로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국 인구를 감안한 전체 시장 규모가 대략 840억원~1,12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본격 시판될 경우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회사의 해외 핵심 캐시카우로 자리 잡을 것이란 평가다.

≫ 한올 인수 ‘수혜’ 눈 앞둔 대웅, 내년 임상 3상 기대

한올바이오파마가 모회사 대웅제약과 공동개발 중인 안구건조증 치료제 ‘HL036’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고령화 시대, 스마트폰 사용의 급증 등으로 안구건조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FDA의 승인을 받은 안구건조증 치료제가 ‘레스타시스(엘러간)’와 ‘자이드라(노바티스)’ 등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HL036은 지난 3월 미국에서 630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첫 번째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작은 분자량으로 조직 내 침투율과 보존력을 높였으며 투여 시 작열감 등의 통증을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올바이오파마와 대웅제약은 내년 상반기 추가적인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한 두 번째 임상 3상을 개시한다는 구상이다.

중증근무력증 치료제 ‘HL161’의 임상 계획도 차질없이 순항 중이다. 한올바이오파마가 지난 2017년 말 로이반트에 기술이전을 했고, 이 회사의 자회사인 이뮤노반트 주도로 글로벌 임상 2상이 현재 진행 중이다. 연구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지면서 내년 상반기 임상 3상 개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문제의 ‘인보사’ 사라진 무릎관절염약 시장…‘독주체제’ 예고

메디포스트의 퇴행성관절염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CARTISTEM)’의 해외 진출 계획은 내년부터 본격화 될 가능성이 높다.

카티스템은 지난 2011년 FDA로부터 임상 1/2상 시험을 승인받고 2017년 7월 임상이 종료된 바 있다. 지난달 회사측이 FDA와의 사전 미팅을 신청한 만큼 특별한 변수가 발생되지 않는 한 내년 상반기 임상 3상 진입이 유력시 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일본 PMDA에 임상시험을 위한 최종 서류를 제출, 일본 내 임상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경골 근위부 절골술(HTO) 시술 병행이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2상에 대한 서류를 우선 제출했고 HTO 시술이 필요 없는 무릎골관절염환자에 대한 임상 3상은 제출 시기를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강력한 경쟁약이었던 인보사가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 만큼 유일한 무릎관절염 치료제로서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 2012년 식약처 허가 이후 1만3,000 바이알 이상 처방되면서 안전성과 유효성 데이터를 확보한 만큼 회사의 임상 일정도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헬릭스미스, 판매허가 ‘막바지’

임상 과정에서 발생한 약물 혼용 이슈로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은 헬릭스미스는 내년 2월 콜로라도주에서 열리는 분자세포 생물학 키스톤 심포지엄(Keystone Symposium on Molecular and Cellular Biology·Keystone Symposium)에서 ‘엔젠시스(VM202-DPN)’의 임상연구 결과 3건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를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회사측은 이번 발표에서 임상 1·2·3상 결과와 안전성, 유효성, 재생의약으로서의 잠재력을 부각시켜 향후 기술수출과 판매허가,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 3-2상을 진행하고 2021년 상반기 임상결과를 공개, 하반기에 FDA 판매허가 신청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바이오솔루션도 자가연골 세포치료제 ‘카티라이프(CartiLife)’에 대한 국내 임상 3상을 내년 상반기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 측은 지난 4월 식약처로부터 임상 3상 수행을 조건으로 카티라이프의 품목허가를 받아 판매 중으로, 내년 상반기 국내 10여개 대학병원에서 104명의 임상시험 대상자를 모집,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현재 췌장암, 알츠하이머, 전립선 비대증 등을 적응증으로 개발되고 있는 젬백스의 ‘GV1001’도 내년에 성과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GV1001은 지난 2014년 식약처로부터 췌장암 치료제(제품명 리아백스)로 조건부 품목허가를 받은 바 있다. 다만 GV1001의 임상 3상이 11월에 종료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품목허가 신청 일정이 다소 미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지난 9월 알츠하이머 적응증으로도 국내 임상 2상을 완료한 회사는 오는 4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알츠하이머학회에서 임상 결과를 공개될 예정으로, 국내 절와 별도로 내년 초 미국 임상 2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젬백스는 최근 임상 2상을 통해 전립선 증상 개선과 해당 부위의 용적 감소에 대한 개선혜택을 확인하면서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서의 가능성도 임상 3상을 통해 입증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신약 임상 결과 발표가 몰려 있어 당초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최악의 결과가 나오면서 시장 전반이 침체돼 있는 상황이다. 특히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점은 상당히 우려스럽다”면서도 “4분기 들어 반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만큼 내년 예정된 신약 R&D 이벤트가 긍정적인 소식으로 이어질 경우 투자심리 회복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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