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위장약을 만드는데 쓰이는 ‘라니티딘’에 이어 ‘니자티딘’ 성분까지 발암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약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해소 방안으로 최근 국제일반명(INN) 도입에 주목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논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건강을 두고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 돼서는 안되는 사안인 만큼 국제일반명 도입을 공론화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식약처는 니자티딘 원료의약품 및 완제의약품을 검사한 결과 일부 제품에서 발암 우려 물질(NDMA)이 잠정 관리기준인 0.33ppm을 미량 초과 검출됐다고 발표하고, 13품목에 대한 제조·판매 중지 및 회수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미국·유럽 등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조사+성분명’ 표기 방식인 국제일반명을 도입해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과 위기관리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대한약사회의 주장에도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문제는 약사회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의료계가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 국제일반명 도입을 성분명처방으로 가는 디딤돌로 삼으려고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제네릭은 오리지널 의약품 약효 대비 80~125% 생물학적동등성(생동)을 인정한 것인 만큼 효능이 같을 수 없다는 부분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료계의 우려대로 INN이 도입되면 의사의 처방권에 영향을 미칠까.

일단 국제일반명의 목적 자체가 처방된 약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인 만큼 의사의 처방 권한이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따라서 국제일반명 도입 반대 논리로 생동을 언급하는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

약사회 관계자는 “성분마다 제네릭이 수십에서 수백개에 달하는 우리나라만의 비정상적인 구조로 인해 국민건강이 위협받고 있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제일반명 도입을 무조건 반대만 하는 의료계는 현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며 “동문서답도 힘 있는 사람이 하면 달라지는 것처럼, 지금이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의료계가 지금처럼 국제일반명과 성분명처방을 동일시 한다면 어떠한 논의도 불가능 할 것”이라며 “생동 인정 기준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만든 잣대인데 의사 개개인의 처방 경험을 이유로 그 자체를 부정한다면 사실상 모든 제네릭을 다른 약으로 보라는 얘기밖에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모 약대 교수는 “의료계의 논리대로라면 식약처의 생동 인정 기준이 편차가 커 제네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오리지널만 처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의료진의 경험에 따른 제네릭 처방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인지 입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러한 논리는 향후 동료 의사의 결정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의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료계가 그토록 경계하는 성분명처방이 시행되더라도 의사의 처방권이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게 약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제일반명과 성분명처방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 대부분이 의·약사간의 처방권 이동 보다는 의약품의 효율적 관리와 건보재정 절감에 방점을 두고 있고 약사의 제품 선택권은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것.

약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일반명과 성분명처방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조차 실제 약사들에게 의사와 대등한 제품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의사의 처방 권한을 지켜주되,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제품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료계가 걱정하는 부분은 지나친 확대해석 일 뿐”이라며 “의료서비스가 환자 중심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는 만큼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직능의 이익은 잠시 내려놔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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