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정 심판장(특허청 특허심판원)

지난 2015년 제약업계에 의약품 허가와 특허권을 둘러싼 논쟁이 이슈화가 됐다.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가 도입되면서 그해 무려 이천여건에 달하는 특허심판이 청구됐다. 우선심판권을 선점하기 위한 ‘따라하기식’ 심판청구에 특허청이 심판관 5명을 증원하는 등 심판관을 특별 조달하기도 했다. 그만큼 제약업계에서 ‘특허’는 그 자체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물론 생존권과도 직결된다. 지난 20여년 간 특허청에 몸을 담고 의약품특허심사는 물론 허가특허연계제도의 탄생부터 미래까지 그 중심에 있는 특허심판원 이미정 심판장(서울대 약대 출신)을 만나 의약품 허가 특허를 둘러싼 이슈를 조명해봤다.

 

지난 8월 약업계에 희소식이 들려왔다. 특허청 역사상 처음으로 박사특채 출신 이미정 약사가 특허심판장으로 임용된 것이다. 특허청 내에서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인사계장을 역임한 바 있는 그가 명맥이 끊길뻔한 여성 심판장직의 바통을 이었다. 이미정 신임 심판장은 20년 전인 1999년 첫 여성 심판장인 김혜원 약사(서울대 약대)를 보필했던 바로 그 심판보좌관이다.

이미정 심판장은 “특허청 입사 3년 차에 김혜원 심판장을 보좌하게 됐는데, 그때 제 눈에는 고위공무원인 그가 한없이 높아 보였다”면서 “열심히 그를 쫓아다니면서 음으로 양으로 여성간부로써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몸으로 흡수하게 됐다. 그때의 경험이 20여년 간 공직을 수행하는데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서울대 약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포스닥을 거쳐 국내 제약업체 연구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혁신신약 개발에 직접 참여하며 승승장구했던 그가 공직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97년이다. 특허청 박사특채 3기로 발을 디디게 된 것은 사익을 떠나서, 공정하게 자신의 지식과 양심에 따라 특허 무효 여부나 침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질 만큼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쉬임없이 열심히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거 같다”고 말했다.

특허심판장이 된 그는 특허권의 침해부터 등록된 특허의 무효 여부 등을 심리·결정하는 특허심판 결론을 정하는 3인의 심판관 중 한명으로서 심판장 역할을 맡게 됐다. 심판의 절차를 지휘하고 심결문 작성을 지도하는 역할도 한다.

과거에는 의약품 분야의 심사관, 파트장, 소송수행관 업무, 바이오심사과장, 수석 심판관, 특허법원 기술심리관 파견 등의 업무를 거쳤던 만큼 그의 경험과 능력을 특허청 내에서 인정받은 것. 특허청 내에 총 11개 심판부 중에서 이미정 심판장이 꾸리는 제7부는 바이오, 의약품 이외에도 의료기술, 고분자 등의 심판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그의 활동 범위가 넓어진다.

그럼에도 그는 특허의 ‘꽃’은 ‘제약 산업’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개발 성공확률이 낮으면서도 기술집약적인 산업 특성상, 부가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

이미 의약품 산업에 대한 가치는 산업계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인정, 국가의 3대 중점사업으로 선정됐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특허청 역시 국내 특허출원이 늘고 특허를 둘러싼 분쟁이 늘어나는 만큼 심판절차의 합리화와 내실화를 통해 산업계의 분쟁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특허미생물기탁제도’의 정비는 이미정 심판장이 바이오심사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뤄낸 성과 중 하나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박사 연구실의 세포주 오염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특허청 차원에서 특허미생물기탁기관의 시설 및 인력기준을 마련했고, 남부지방에 국제특허미생물기탁기관을 추가 지정하는 등 관련 제도를 정비했다.

이 심판장은 “특히 세월호 사건 당시 안전관리 강화가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특허미생물 기탁기관에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특허미생물을 보존하고, 외부에 유전자변형미생물이 광범위하게 퍼져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도록 안전관리 메뉴얼을 개정했다”면서 “이제는 연 1회 민·관 합동 안전관리훈련이 정례화된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허가-특허연계제도’는 현재 진행 중인 그의 성과이자 과제이기도 하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2015년 한미 FDA의 결과물로, 제약사에서 신제품을 개발하기 전에 반드시 특허권에 대한 사전검토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특히 이 제도가 도입되고 특허청에서 이와 관련된 심판사건을 다른 사건보다 우선적으로 심판하기로 하면서 신청건수가 급증하기도 했다. 그해 심판청구건수가 1,957건으로 전년도 216건에 비해 폭증했다. 하지만 이중 778건이 취하되면서 심판행정 낭비라는 부작용도 낳았지만 이후 제도 안착화가 되고 있다.

이 심판장은 “지난해에 심판청구 건수는 207건(취하 12건)으로 제도가 안정화됐다”면서 “도입 당시에는 심판관 특별증원을 하는 등 특허청 내에서도 업무가 폭증했다. 하지만 이후 심판청구는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화학분야의 심판 건수에 비해 의약품분야의 심판 건수는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동일 특허에 수십개의 제약사가 동시 신청하면서 병합처리되는 건수를 감안한다면 실제 청구건수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허가-특허연계제도는 앞으로도 계속 개선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년간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 제도의 불합리한 부분을 약사법 개정을 통해 개선하려는 특허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킥오프 회의가 열린 것. 이미정 심판장은 우선심판제도로 인해 기존 심판을 청구한 업체 및 제품의 심판이 지연되거나, 우선심판에 대한 수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 만큼 제도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이 심판장은 “아직도 제도는 시행 초기다. 제도를 수행하면서 나타나는 쟁점과 법리적 검토사안에 대해서는 약사법 개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까지 어려웠지만 사명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를 수행하다보면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약사로서 특허청에 근무하면서 문제를 발견하고 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결국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유능한 약대생들이 특허청과 같은 공직에 더 많이 진출해 의약품 산업분야를 우리나라 중추산업으로 일구어 가는데 일조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그는 “특허청 박사특채 중에서 최초의 여성 고위공무원이 된 것은 특허청장이 유능한 여성 인력 발굴에 관심을 가져준 덕분”이라면서 “약무직은 이공계 전공자와 달리 기술고시가 없어 특채로 공직에 입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사로서 특허청 업무를 수행하면 많은 보람이 있는 만큼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특히 제약산업계에서도 의약품 특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장기적으로 신약개발에 주력해 나가야함을 강조했다.

제약산업은 여타 산업에 비해 변화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특허권에 의한 권리보호가 중요한 기술분야인만큼 산업의 발전 방향도 바뀌어야한다는 것.

일례로 과거에는 신약특허의 대부분이 저분자 화합물이었던데 비해 이제는 바이오의약품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특허심판의 기준 또한 시대에 따라 변화를 앞두고 있다. 때문에 더 이상은 기존 신약을 복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제형 개발 등을 통한 발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심판장은 “단기적으로 특허를 회피해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제네릭을 판매하려는 전략보다 신약개발과 제형 개발로 눈을 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아스피린이 수백년간 명맥을 이어가는 만큼 신약이 개발되면 십여년간 특허 분쟁을 거친다고 해도 일단 특허등록이 되면 그 가치는 매우 큰 만큼,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의약품 개발에 집중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허청도 특허심판의 결과가 업계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서 결정하고 있으며, 변화하는 의약품 개발 트렌드에 맞는 심판 기준 및 제도 마련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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