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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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 향상을 위해 희귀질환 치료 약제는 별도의 기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기금화보다는 기존 약제에 소요된 건강보험 재정을 재정비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장성 강화에, 건강보험 재정 적자 우려까지 더해지고 있는 만큼 결국 재원 마련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2019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통해 의약품 접근성 완화를 위한 희귀의약품 기금 운영 방안을 고려하라고 보건복지부에 주문했다.

지난 2015년에도 국회예산정책처가 ‘공공기관 결산평가 보고서’를 통해 이와 유사한 기금화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기금화가 또다시 국회를 통해 수면으로 나오게 된 것은 근위축성 측상경화증 치료제(ALS) ‘라디컷(에다라본)’의 약가협상 철회 때문이다. 위험분담계약 대상 약제인 라디컷은 지난 6월 사실상 협상 완료 단계에서 회사측의 사정으로 돌연 협상이 철회됐고, 급여 역시 적용받지 못했다.

지난해 말에는 알레르기성 천식치료제 ‘졸레어’(오말리주맙)까지 제약사가 약가협상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급여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예산처는 이같은 루게릭병 치료제, 알레르기성 천식치료제 등의 급여신청 포기로 환자가 약가를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치료제 공급, 치료기회 제공 등 원활한 치료 혜택을 받는 것이 어려운 만큼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중국, 캐나다 등에서 우리나라를 약가 참조국으로 포함하면서 일부 제약기업이 국내 급여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도 명시하면서 의약품 공급 중단 가능성을 우려했다.

때문에 국회예산처는 현재의 위험분담제도 대상이 아닌 희귀 의약품에 대해 기금운영제도 도입을 고려해볼 것과 공급관리체계 개선을 주문했다.

≫기금화, 결국 재원 마련이 관건...해외서 정부조달 대부분

하지만 복지부는 재원마련 등을 이유로 당장 별도 기금화보다는 기존 약제에 대한 재평가를 통한 보장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희귀질환치료의약품에 대한 기금화 방안에 대한 연구 등을 시행했지만 아직까지는 기금화의 필요성에 대한 전문가 및 업계 의견이 엇갈리는데다 수천억원대의 예산이 별도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 것도 결정에 영향을 줬다.

실제 심평원은 2015년 국회 지적 이후 ‘4대 중증질환 약제 접근성 향상방안(연구책임자 김동숙 부연구위원)’ 연구를 통해 희귀질환 치료제와 항암제 재원마련 방안을 검토했다.

이 기금제도는 이미 영국의 New Cancer Drug Fund(NEW CDF)과 호주의 Life Saving Drug Fund(LSDP)를 비롯해 벨기에, 케나다, 이탈리아, 뉴질랜드 등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국가별 대상 의약품의 범위나 적용 환자군 등이 다르지만 주로 정부의 별도 재원을 지원받고 있으며 이탈리아나 영국 스코트랜드에서는 제약사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4대 중증질환 약제 접근성 향상 방안' 보고서 발췌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가이긴 해도 항암제를 제외한 희귀질환 약제에 대해서 별도 기금을 마련하는 수준으로 대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연구에서도 건강보험 재정 내에서 의약품 급여기준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았던 만큼 기금화 자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이후로도 정부차원에서 구체적인 기금화 추진 검토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금화를 한다면 대상 약제군의 정의와 범위, 수요조사 및 재원조달 방안, 관련 법 개정 등의 다양한 검토가 이뤄져야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재정조달의 어려움을 직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구에서는 희귀질환약제에 대해서 기금화를 할 경우 최소 1천억원의 재원이 소요되고, 사용량 증가를 고려하면 약 3천억원 정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추산된 것. 여기에 항암제까지 포함한다면 1천억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기금화 요구의 취지가 의약품을 환자가 쉽게 접근하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하지만 보고서를 보면 재원 마련이 안되면 사실상 실현이 어렵다. 수십억원대의 고가 약제를 지속적으로 조달하려면 재원 단위도 높다. 대상 질환 및 단위당 가격 등을 고려할 때 보다 현실성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등재약 재평가로 불필요한 재정 아껴 희귀질환에 투입

이에 정부는 기존의 보장성강화정책 하에서 의약품 지출 규모를 통제하면서도 신규 약제는 지원하는 투트랙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5개년)’을 확정하고 희귀질환 약제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재원 확충 작업이 진행 중이다. 기존 등재 약제에 대한 종합적인 재평가를 추진하고 있는 것.

복지부는 모든 급여 약제에 대해 재평가를 한다는 계획하에 구체적인 재평가 방법, 단계별 대상 약제 및 시행시기 등을 검토하고 있다. 큰 틀에서는 임상 효능, 재정 영향, 계약 이행사항 등을 기본으로 다 포함하고 있어, 급여 등재 이후 달라진 약제의 특성을 재평가 해 약가나 급여기준을 조정할 수 있고 필요시 급여에서 제외할 수도 있다.

현재 급여약은 선별급여, 조건부 허가, 평가면제 등 다양한 약가 정책으로 유입된 약제도 있는 만큼, 등재할 때뿐만 아니라 사후관리를 통해 꼭 필요한 약제 및 타당성이 인정된 약제에 한해 건보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전체 급여 약제의 규모를 고려해 약제 평가는 단계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며, 약제별 특성을 고려해 평가방식도 다양화될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평가방법 및 시기 등은 올해 안에 도출될 예정이며 내년부터 평가방식별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다만, 이럴 경우 국회에서 지적하고 있는 희귀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도 남아있다.

정부가 향후 재평가를 통한 보장성을 확대할 대상 품목은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중증-희귀질환 의약품’으로 이 경우 위험분담계약제 등을 통해 일부 충족이 되고 있지만, 환자수가 적어 공급이 불안한 말 그대로 희귀 의약품은 상대적으로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는 것.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4년부터 약가협상 방식 중 하나로 시행 중인 위험분담계약제를 통해 급여권으로 진입한 약제는 현재 기준 총 51개 품목에 달한다. 공단이 구체적인 협상타결률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라디컷이나 졸레어처럼 협상을 철회해 결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공단측의 입장이다.

다시 말해 약제 재평가를 통해 확보된 재정절감분은 위험분담계약제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약제에 대한 원활한 제도권 진입에 투입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복지부측은 “내부적으로 기금화를 검토했지만 재원 문제가 명확하지 않았고 비용배분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선결돼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향후에 검토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이며 현재는 기금화가 필요하다는 그 취지를 달성하기 위한 다른 대안을 고민해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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