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품의약국(FDA)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희귀암 발병과 관련된 엘러간의 유방 보형물을 철수 요청한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게다가 식약처는 해명 과정에서 관련 업체를 옹호하는 것은 물론 국내 희귀암 환자 파악과 관련해 ‘오락가락’ 해명을 하는 태도마저 보였다. 식약처의 늑장·부실 대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팜뉴스는 식약처의 ‘민낯’을 고발한다.

FDA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림프종 발생 가능성이 있는 미국 엘러간의 BIOCELL 거친 표면(텍스쳐 처리 제품) 인공유방 및 유방확장기 제품 자진 회수를 회사 측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엘러간 측은 현재 림프종 예방 차원에서 관련 제품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자진 회수에 나선 상황이다.

한국엘러간 관계자는 “7월 24일 BIOCELL 텍스쳐드 타입 인공유방 보형물과 유방 확장기(Tissue Expander)에 대해 글로벌 차원에서 자발적 회수를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엘러간도 회수대상 제품에 대해 병원이나 의원 등 임상현장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보형물과 유방 확장기를 사용한 시술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식약처의 안전성 서한에 의하면, FDA는 의료진에게 “엘러간의 BIOCELL 보형물 이식을 중단하고 재고를 수입업체에 반품하라”며 “보형물 주변 변화가 발생한 환자 치료 시 가슴보형물 이식 후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BAI-ALCL) 가능성을 고려하라. 의심이 있는 환자는 장액과 피막 표본을 채취하는 병리학 검사 시행을 하라”고 전했다.

문제는 식약처가 그동안 엘러간의 유방 보형물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대응을 해왔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는 “식약처는 또 한 발 늦었다”며 “FDA는 2011년에 텍스쳐드 가슴보형물 안전성 이슈가 터졌을 때 바로 환자등록연구에 들어갔다. 올해 3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ALCL과 가슴보형물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지난주에 회수 조치를 내린 근거였다. 하지만 식약처는 환자를 위한 조치를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FDA는 2011년 1월부터 2018년까지 7년간 미국성형외과학회와 장기환자등록연구를 진행했다. FDA는 올해 3월 성형외과 학회지 ‘Plast Reconstr Surg’을 통해 유방 보형물과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ALCL) 사이의 잠재적 연관성에 관한 안전성 이슈를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186명의 환자 중에 89건에 대한 보고서가 취합됐고 BIA-ALCL 진단에 걸린 평균 시간은 11년이었다. FDA가 ALCL과 가슴보형물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데이터를 공개한 것.

앞서의 의사는 “FDA의 철수 권고는 앞서 연구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며 “미국은 7년 전부터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환자 등록 연구를 수행했다. 중간 분석결과가 나왔고 즉각 회수 조치했다. 캐나다와 프랑스 정부는 이미 판매 중단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식약처는 환자를 위한 연구도, 선제적인 조치도 하지 않았다. FDA의 결정에 대해 그야말로 ‘받아쓰기’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식약처도 최근 엘러간의 유방 보형물에 대해 추가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식약처는 지난달 20일 거친 표면 유방보형물에 대한 ‘부작용 예방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엘러간의 ‘네트렐’ 제품 등 텍스쳐 처리된 유방보형물의 시술 이후,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 발병 위험이 우려되기 때문에 허가사항을 변경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식약처는 BIA-ALCL 발생 인과관계와 기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판매 중단’이 아닌 ‘주의 사항 변경 조치’를 내렸다. 지난 4월부터 성형외과 전문의와 인공유방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의료기기위원회와 식약처가 함께 내린 결정이었다.

이마저도 ‘때늦은’ 결정이었다. FDA가 지난 2월 유방 보형물 이식 후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 발병 위험에 대해 권고한 이후, 나온 정책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식약처의 늑장대응이 더욱 구설에 오른 배경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적절한 대응’을 했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늑장 대응은 아니다. 지난 4월 우리가 주의사항 변경 조치를 내릴 때는 프랑스 정부만 판매중단 조치를 내린 상태였다”며 “더구나 국내 환자 중엔 BIA-ALCL 사례가 없었다. 전문가 자문을 수차례 거친 결과, 엘러간 제품에 대해 판매 중단 조치를 하는 것보다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편이 낫다고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식약처는 해명 과정에서 엘러간 측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텍스쳐드 가슴보형물이 장점이 많다고 한다”며 “파열이 적고 위치도 안정적이다. 가슴재건을 위한 환자들에게도 성능이 훨씬 좋다. 강제적으로 판매 중단을 하기보다, 환자에게 BIA-ALCL 위험에 대해 설명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한 이유다. 최선의 조치였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식약처가 국내 BIA-ALCL 환자 현황 파악에 대해 ‘오락가락’ 해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부작용 예방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내에 단 한 건의 BIA-ALCL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결론을 얻은 자료의 근거에 대해 식약처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 대변인실 관계자는 지난 24일 “국내 학회 자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의 자료를 토대로 국내에서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심평원에서도 확인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9일 식약처 의료기기안전평가과 관계자는 “학회 자료와 심평원 데이터는 참고하지 않았다.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에 업체가 보고한 부작용 관련 내용을 참고했다”고 답변했다. 식약처 내부에서도 ‘심평원 데이터’에 대해 서로의 입장에 차이가 있는 것.

더욱이 심각한 사실은 당시 의료기기위원회에 참여했던 전문가(성형외과 전문의)는 또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기위원회 관계자는 “분명 학회 자료를 토대로 결론을 내렸다”며 “심평원 데이터는 참고를 할 수가 없다. 가슴 보형물이 암으로 발전하면 심평원 데이터로 잡히겠지만 이번에 회수된 제품은 비급여 의료기기다. 그런 데이터가 아니더라도 BIA-ALCL 발생 자체는 굉장히 큰 사건이기 때문에 학회 자료를 보면 전부 나온다”고 밝혔다. 심평원 관계자도 “비급여 제품은 심평원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식약처를 향해 질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의 의사는 “식약처 대응이 한심한 수준이다. 자료 출처조차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데 국내 환자가 없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식약처가 내놓은 환자 안전 대책도 믿을 수 없다. FDA는 환자등록연구를 통해 BIA-ALCL의 평균 발생 기간을 11년으로 결론내렸다. 식약처가 가슴보형물 삽입을 받은 환자를 10년 이상 장기 추적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식약처 대책 속에는 관련 내용이 빠져있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최근 BIA-ALCL 위험에 대해, 중장기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서 환자등록 연구을 추진할 계획을 전했다.

하지만 팜뉴스 취재 결과, 식약처는 환자장기추적조사 ‘기간’조차 특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처 관계자는 “환자등록연구를 위한 예산은 편성했고 8월 초에 공문을 뿌릴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 환자들을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라면서도 “하지만 장기추적조사 기간은 정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식약처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까닭이다. 식약처 내부 관계자는 “기간을 정해놓지 않은 것은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라며 “우리 처는 안전성에 관심이 별로 없다. FDA가 환자등록연구를 7년간 진행하는 동안 식약처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뒤늦게 문제가 터져서 조사를 시작하면 인보사처럼 수백억의 비용이 들 수 있다.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환자등록연구와 장기추적조사를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식약처의 의지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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