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단체들이 앞다퉈 총선 준비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는 총선기획단을 구성했고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역시 총선대책본부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단체들은 정당에 다양한 보건의료정책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약단체 내부와 국회 등 곳곳에서 공격적인 총선 준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평론가들 역시 ‘밥그릇 챙기기’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행사장에 연예인이 등장하면 시민들의 시선이 꽂히기 마련. 정치인이 도착해도 국민들의 눈길이 쏠린다. 연예인과 정치인의 공통점은 압도적인 ‘세몰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 행사의 드라마틱한 홍보를 위해 스타급 연예인과 거물급 정치인의 등장이 필수요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지난 13일 열린 ‘2019 대한약사회 전국 주요 임원 정책대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13일 대한약사회가 천안상록리조트에서 개최한 전국 주요임원 정책대회에서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 정치권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지난 13일 대한약사회가 천안상록리조트에서 개최한 전국 주요임원 정책대회에서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 정치권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이날 행사가 열린 천안상록리조트에 ‘거물급 정치인’들이 도착한 순간, 약사회는 ‘역대급’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약사회의 6대 중점과제에 대해 관심을 보인 순간, 제21대 총선이 이번 행사의 화두가 됐다.

약사회는 이날 아예 ‘2020 총선 정책기획단(단장 김대업)’을 출범시켰고 약사회는 “양당 대표가 참석해 약사회의 존재감에 대해 재인식이 이뤄졌다”며 “향후 총선 기획단을 중심으로 국회와 정부에 보건의료제도의 발전적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비단 약사회뿐만이 아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6월 총선기획단(단장 김필수)을 출범시켰다. 의협 총선 기획단의 목적은 ▲보건의료 정책제안서 각 정당 전달 ▲정당별 보건의료공약 장·단점 분석 등이다.

의협 측은 “다양한 보건의료정책을 각 정당에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의사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간호조무사협회도 창립 기념대회의 키워드로 ‘총선’을 내걸었다. 지난 14일 간무협은 창립기념식에서 2020년 국회의원 총선 슬로건을 ‘간호조무사, 우리도 정치하자’로 정했다. 그들은 “부당한 차별에 굴하지 않고 간호조무사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정치세력화에 나설 것”을 선포했고, 동시에 75만 간호조무사의 1인1정당 가입운동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문제는 이들 단체가 ‘보건의료단체’란 점이다. 일선의 현장의 의사와 약사들 역시 ‘총선기획단’을 두고 ‘밥그릇 챙기기’로 해석하고, 이들 단체가 오히려 국민건강을 ‘패싱’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사는 “현행 약사법은 국민들의 보건건강을 지키라는 이유로 대한약사회라는 단체 구성을 허락했다”며 “총선기획단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전문가 입장에서 조언하는 방향으로 정치권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총선 공약을 내세워 이익집단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또다른 의사 역시 “의사 전문가 단체는 ‘의료 전문성’으로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런 일은 하지 않으면서 총선기획단을 만드는 것은 결국 정치권에 로비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의협은 그동안 밥그릇 싸움을 해서 국민들의 눈밖에 났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미 비합리적인 투쟁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잃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민건강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권위를 쌓았다면 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킬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총선을 둘러싼 일련의 행보에서 직능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간호조무사협회 행사에서는 민주당 김부겸 의원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여야의 국회의원들이 행사에 동석하면서 관련 직능에 대한 비판도 여과없이 나왔다.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 앞에서 간호조무사의 권익 향상을 위한 법들이 대한간호협회에 가로막히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오로지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간무협의 정치 행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아예 간무협과 간협측은 직능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각을 총선으로 표출하고 있다. 간무협은 자신들의 총선 대책본부 출범이 간협 때문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간무협 전동환 기획실장은 “대한간호협회가 간호조무사들의 권리를 보호했다면 정치활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간호조무사가 직업인데도 ‘신분’이라는 게 간협의 사고방식이다. 간협이 간호사들의 처우나 지위를 정당하게 보장하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 의원들을 배출해 간호조무사를 대변하기로 결심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간협 측은 “간무협이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명분을 만든 것”이라고 반박했다.

간협 관계자는 “간호학과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간호사들과 학원을 다녀서 자격을 얻은 간호조무사들 중 누가 더욱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는 국민들이 알 것”이라며 “그런데도 그동안 간호사들은 간호조무사들에게 권익을 빼앗겨왔다. 총선에 뛰어들겠다는 간무협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모습에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는 경쟁적인 총선 준비 활동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복지위 관계자는 “이들의 정치세력화가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며 “결국 비례대표를 달라는 뜻인데 자신들의 권익을 비례대표 의원을 통해 반영하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 활동이다. 하지만 일부 단체는 국민건강을 핑계로 정치활동에 나서고 있다. 국회 소위가 열릴 때면 이런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몰려와 누굴 만나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의약단체들의 총선 준비 활동이 현행법이 정해놓은 ‘선’을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 가톨릭대 차재원 초빙교수는 “의약단체들이 국민건강이란 큰 명분보다는 자신의 밥그릇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법적 테두리 내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특정후보나 정당을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후원금을 몰아주거나 쪼개기 후원을 하는 방법 역시 총선 이후 의약단체들을 옭아매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대한약사회와 의협 등은 이를 즉각 부인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 정책이 수립되기 위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약사회 이광민 홍보이사는 “국민들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정책은 정치권에서도 수용할 수 없다. 총선 공약을 통해 약사 직역의 질이 높아진다면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건강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협 김필수 단장도 “정치세력화나 세몰이를 위해 총선기획단을 구성한 것이 아니다”며 “직능단체로서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다양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정치권에 제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