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망신의 대명사가 돼 버린 ‘인보사’로 인해 바이오산업 전체를 뒤덮은 안개는 더욱 짙어져 간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 그토록 바라던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단재생의료법)’을 둘러싸고 오해와 불신만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국회에서는 첨단재생의료법이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업계에서는 즉각 환호했지만,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규탄의 목소리만 높였다. 이 법은 아직까지 전체회의 파행으로 본회의 상정이라는 관문을 뚫지는 못했지만, 논란이 계속된다면 향후 법안의 의결 또한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본,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6일 국회 앞에서 첨단재생의료법이 의료민영화법이라며 폐기할 것을 주문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약사법·의료법 뛰어넘는 법, 만들어진 이유

논란 속 첨단재생의료법은 지난해 8월 16일 이명수 의원이 대표발의 할 당시 “재생의료분야의 안전성과 혁신성을 도모하고 국민 보건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제는 의약품 개발이 기존의 케미칼에 국한되지 않고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 첨단재생의료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이들만을 위한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법안을 만든 이명수 의원은 “첨단재생의료 기술이 보존적 치료에 머물렀던 의료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미래 산업으로써 국가경제를 견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재생의료분야를 효율적으로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행 의료법·약사법이 아닌 첨단재생의료법이라는 이름 하에 재생의료의 특수성에 걸맞는 평가방식을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법안에는 첨단재생의료의 정의부터, 정부의 지원 및 관리 계획 수립 기준, 연구를 시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자격 및 기준, 첨단재생의료를 시행하기 전 심의 절차, 인체세포 처리시설 기준, 안전관리 등의 항목을 담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첨단재생의료안전관리기관의 설치와 기관의 역할, 장기추적조사 기준에 대한 항목도 있고,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제조업체 허가 기준 및 평가 절차, 임상승인 요건, 취급 기준도 있다. 첨단바이오의약품을 위한 규제과학센터도 만들어 장기추적조사와 정보 및 기술 지원, 관리 감독도 시키고, 해당 의약품의 품질분류 및 관리 기준 등도 법에 명시했다.

다시 말해 첨단재생의료에 대한 A부터 Z까지의 기준을 법으로 명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의·약사 포함된 시민단체, 그들은 왜 반대하나

하지만 이 법을 두고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는 법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법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법의 기본 취지 자체가 문제가 있고 손댈 데가 너무 많아서 아예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법사위 하루 전날 국회 앞 시위에, 법 통과 규탄 보도자료까지 낸 이들은 다름이 아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및 치과의사회 등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노동조합,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 의료인부터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과 무상의료운동본부’다.

이들은 무려 A4 8페이지에 걸쳐 이 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핵심은 이 법이 ‘인보사를 양산하는 법’이라는 시각에 있다.

이들은 법안의 ‘첨단바이오의약품 허가심사의 신속처리’라는 구절에 주목했다. 분명 법에는 ‘발병 후 수개월 내 사망이 예견되는 질병 등에 대해 안전성·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된’ 첨단바이오의약품을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돼 있다. 이 경우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맞춤형 심사, 우선 심사, 조건부 허가 등 신속처리를 하도록 명시했다.

그런데 이 ‘신속처리’, ‘조건부 허가’는 인보사도 적용을 받았던 만큼 이 법은 또 다른 인보사가 탄생하게 만든다고 판단한 것. 조건부 허가를 ‘임상 3상 면제’로 볼 때 시장 출시를 손쉽게 만들고, 환자는 확인되지 않은 약으로 치료를 받고, 많은 비용을 부담시켜 결국에는 제약회사만 이득을 취하게 만든다는 논리다.

이들은 “의약품 허가제도를 더 부실하게 해 가짜약을 부추기는 인보사 양산법”이라며 “정부와 입법기관이 인보사같은 재난을 반복시킬 규제완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법에서 명시한 ‘재생의료심의위원회’라는 위원회가 의약품의 안전성을 판단하는 등의 역할이 아닌 이해관계에 의한 허가 남발을 초래할 것으로 봤다.

이 모든 주장의 배경에는 인보사와 과거 패스트트랙 수혜 약의 부작용에 있었다.

신속심사 대상이었던 한미약품의 ‘올리타정’의 부작용, 인보사 심의 결과를 번복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이 모든 과정을 최종 결정지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때문에 패스트트랙은 환자의 치료 접근성 향상이 아닌 검증되지 않은 약의 시장화로 판단돼 버린 것.

그래서 이들은 “첨단재생의료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끝까지 막을 것이며, 파렴치한 악법 제정에 나선 정부 당국과 국회의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내놓았다.

≫ 법 없이 안전한 약도 없다...“제도권 내 신약개발해야”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러한 시민단체의 반응을 두고 법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제2의 인보사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첨단재생의료의 맞춤형 법이 필요하고 그 제도 안에서 안전하고 효과있는 혁신 의약품과 기술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의 취지는 물론, 세부 항목을 들여다 보면 첨단재생의료,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재료부터 개발 과정, 심사 및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관리 기전을 담았고, 이를 수행할 기구 및 기관, 역할을 명시해 말 그대로 ‘첨단재생의료’로서의 가치화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의미다.

현재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이 지속적으로 개발되는 이유는 현재 합성의약품으로는 희귀·난치성질환과 암종을 치료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 의료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을 기술과 의약품의 개발이 필요함은 다들 공감하면서도 이를 위한 제도적인 틀이 전무한 아이러니한 현실을 이제야 바로 잡을 수 있는데 왜 막으려 하냐고 우려한다.

한국바이오협회 이승규 부회장은 “첨단재생의료법은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산업계가 그 안에서 데이터를 쌓고 연구해 신약을 개발하자는 것”이라며 “아직 불확실한 첨단재생의료를 제도권 내에서 양성해 희귀·난치질환등의 치료 가능성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승규 부회장은 “인보사로 인한 우려가 있지만 이는 업계가 일차적으로 잘못한 것은 분명하다”면서 “기술에 대한 검증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이 문제 역시 법으로 풀어야 할 일이다. 프로토콜이 만들어져서 이를 토대로 한 신약 및 기술 개발이 이뤄져 안전성과 산업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늘고, 산업계의 발빠른 도전도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 인보사 경험이 낳은 엇갈린 시각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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