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 사태’로 불거진 정부의 의약품 안전성 관리 문제를 두고 말이 많다. 인보사가 국회 업무보고에서까지 올라오며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식약처의 재발방지 대책을 보면 여전히 믿음이 안간다는 이유에서다. 정작 환자들이 바라는 내용은 실제로 찾아볼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인보사케이주 사건 진행경과 및 대책’을 발표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날 식약처가 내놓은 업무보고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보사 사태에 대한 식약처의 ‘소극적인 대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상당하다. 올 하반기에도 식약처의 인보사 리스크 관리에 먹구름 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식약처는 “올해 10월까지 인보사 투여환자에 대한 등록을 조속히 완료할 예정이다”며 “인보사를 환자에게 투여한 병·의원의 협조를 통해 ‘약물역학 웹기반 조사시스템(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등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속한 환자 등록’은 식약처의 ‘희망사항’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6일 팜뉴스 취재 결과, 최근 식약처가 인보사를 처방한 병·의원의 협조를 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자, ‘환자 등록 절차’가 상당히 지지부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처는 지난 5월 27일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등록한 환자수를 약 100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업무보고 당일엔 약 180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800명의 환자가 추가로 등록 절차를 거친 것이다. 45일이 지났는데도 전체 환자 약 3700여명 중 절반도 되지 않는 등록률을 보인 것. 식약처의 부실 대응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팜뉴스가 최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식약처는 ‘인보사케이주 처방 의료인을 위한 안내문’이라는 공문을 병·의원에 보내면서 “환자 등록 및 장기 추적조사는 의료인의 협조 없이는 원할한 조사가 불가능하다. 환자의 내원 시 검진 등 의료인의 많은 협조를 당부드린다”라고 밝혔다.

 

그야말로 식약처 차원의 ‘협조와 당부’만을 의사들에게 부탁한 공문이었다. 인보사를 처방한 병·의원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식약처 차원의 ‘강제력’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의경 처장의 업무보고 직후, 환자들 사이에서는 성토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인보사 환자 A 씨는 “식약처의 업무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인보사 주사를 맞은 명단을 미리 파악하고 병원마다 공문을 보내서 달라고 해야 하는데 식약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등록 절차에 관한 통지를 받지도 못한 환자들이 널려 있다. 정부가 힘없는 환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기관들이 협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화를 걸고 방문을 하면서 노력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협조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식약처는 이날 업무보고를 통해 “인보사 투여환자 전체에 대해 15년간 유전자 검사 등을 실시해 종양발생과 같은 이상반응에 대한 추적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라면서 병·의원 방문검사를 통한 1차 조사 실시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재활의학과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식약처의 장기추적 조사의 ‘방향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들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활의학과 의사는 “인보사의 다른 부작용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주사를 맞고 오히려 무릎 상태가 나빠진 환자들이 부지기수다. 바뀐 신장세포주가 정체불명이다. 종양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악화 중인 퇴행성 관절염에 대한 별도의 장기 추적 조사가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보사 관련 임상 논문을 살펴보면, 통증 등 부작용이 1년 동안 주기적으로 발생한 데이터가 있다”며 “인보사 주사를 맞기 전 찍었던 MRI 판독 결과와 지금의 상태를 빨리 비교해야 한다. 환자들의 상태가 점점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업무보고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식약처가 15년간 장기추적 조사 계획을 발표하면서 뒤바뀐 신장유래세포의 ‘종양원성’에 초점을 둔 나머지, 대다수 환자들이 겪고 있는 질환인 퇴행성 관절염 악화에 관련된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이번 업무보고에서 누락됐다는 지적인 것이다.

실제로 환자들은 인보사 주사를 투여한 이후, 부종 등 인보사의 갖가지 부작용으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앞서의 환자 A 씨는 “인보사를 올해 초에 맞았는데 한 달 전에 또 무릎 연골 재생 주사를 맞았다”며 “무릎이 시큰거리고 아파서 그랬다. 단순히 종양 발생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른 환자 B 씨 역시 “주사를 맞은 이후 매일 밤 무릎 통증을 느끼고 있다. 식약처가 자꾸 종양 발생 방지 대책만 하는 점이 아쉽다. 당장 통증은 계속되는데 15년 동안 종양 발생 여부만 얘기하고 다른 통증에 대해서는 무시를 하는 느낌이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환자들은 절박한 호소를 이어가고 있지만 식약처는 느긋한 모양새다. 향후 장기추적조사와 별도로 건보공단 보험청구자료 등을 통해 환자의 부작용 이력 조사, 약물과의 인과성 분석을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부작용에 대한 대책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인 것.

식약처 관계자는 “부작용에 대해 사후관리는 하겠지만 인과관계가 없는 질병의 악화에 대해서는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 의약품안전관리원이 인보사 투여 환자와 일반 환자를 비교해, 인과관계를 입증할 경우 다른 부작용도 함께 검토할 예정이다. 개별 환자에 대한 MRI 등의 검사를 시급히 진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식약처는 국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보상대책에 대해서도 “인보사와 부작용 간 인과관계가 입증될 경우 보상책임이 있는 업체와 구체적인 보상방식을 협의해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식약처의 ‘인과관계’ 입증을 전제로 하는 태도는 환자들의 원성만 자아내고 있다.

앞서의 B 씨는 “업무보고를 접하고 화가 났다. 15년 동안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으면 그동안 들어간 비용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뜻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인보사 사태가 터진 후부터 부작용은 물론, 두려움 때문에 MRI나 다른 주사 비용이 계속 들어가고 있다. 700만원 짜리 ‘사기’ 주사를 맞은 것도 모자라, 인과관계가 입증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심지어 의사단체에서는 의약품안전관리원이 인보사와 부작용 간의 ‘인과관계 입증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의약품안전관리원은 의료기관이 아니다”며 “전문가 집단이나 학회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인보사와 부작용 간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과관계 규명은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누적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다. 질병관리본부 등 정부기관이나 서울대병원 같은 대형 의료기관에 일을 맡겨야 하는 이유다. 환자에게 굉장히 불리한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의약품안전관리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안전관리원에서 관련 자료를 받으면 역학조사관이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다”며 “약물역학 조사관은 법에 따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조사관이 향후 외부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밝히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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